유럽사법재판소 “저작권보다 인터넷 사용자 보호 우선”

2011.11.27 22:02
장은교 기자

한·미 FTA와 ‘반대의 길’

유럽의 최고사법기구인 유럽사법재판소(ECJ)가 지난 24일(현지시간) “인터넷 사업자가 불법다운로드를 막기 위해 별도의 조치를 취할 의무가 없다”며 저작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인터넷 사용자들의 개인정보를 침해할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지적재산권 보호를 한층 강화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다른 판단과 길을 제시한 것이다.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은 벨기에 음악저작권업체가 인터넷 사업자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비롯됐다. 저작권업체는 불법다운로드를 막기 위해 사이트가 별도의 필터링(검열)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소는 “별도의 필터링 장치를 설치할 경우 인터넷 이용자 개개인의 정보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EU 기본권 헌장이 보장하는 개인정보 보호 취지에 맞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한·미 FTA는 어떨까? 전문가들은 한·미 FTA 체결로 한국이 지적재산권에서는 세계 최고의 규제국이 됐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은 현재 특수한 유형의 웹하드업체의 경우 필터링하는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저작권 침해자의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형사소송 등 법원 판결을 거치도록 했다. 하지만 유럽 등 상당수 나라는 필터링을 의무화하지 않고, 저작권자가 불법게시물을 신고하면 그때 해당게시물을 삭제하도록 하고 있다. 미국은 필터링 의무는 없으나, 개인정보 제공은 판결이 아닌 문서제출장 청구명령 등으로 ‘신속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으로 한·미 FTA가 발효되면 한국은 기존의 필터링 의무는 그대로 갖고 있으면서, 미국처럼 침해자의 개인정보도 빨리 알아낼 수 있게 됐다. 한국의 법체계가 지적재산권 만능주의를 담은 ‘규제 종합판’이 된 것이다.

개인정보 보호만 느슨해진 것이 아니다. 한·미 FTA 제18장 부속서한은 “대한민국은 소위 웹하드 서비스를 포함해 저작물의 무단 다운로드를 허용하는 인터넷 사이트를 폐쇄하는 목적에 동의한다”고 명시했다. 불법 게시물을 삭제하는 데서 더 나아가 사이트 폐쇄까지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병일 진보네트워크 대표는 “정부는 FTA 이전에도 저작권 규제를 강하게 해왔다고 주장하지만 국내 판결 중에서도 사이트 폐쇄라는 극단적인 조치까지 내린 적은 없었다”고 말했다.

남희섭 변리사는 “다섯 문장으로 된 부속서한에서 사이트 폐쇄 목적에 동의한다는 첫 문장만 주어가 ‘양 당국’이고 나머지 네 문장은 모두 주어에 대한민국만 명시돼 있다”면서 “미국 변호사들에게 같이 문제제기를 하자고 보여줬더니 한국만 지키라는 뜻인데 우리가 왜 문제를 삼느냐’며 웃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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