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경이 만난 사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펴낸 유홍준 교수

2013.08.17 16:35 입력 2013.08.17 16:38 수정
글·유인경 경향신문 선임기자 사진·이상훈 선임기자

“우리 것에 대한 자신감 생기면 일본 보는 시각 달라져”

유홍준 교수(명지대 미술사학과)가 최근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을 펴냈다. 벌써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993년에 첫 발간된 그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국내편은 20년 동안 330만부가 팔릴 만큼 큰 호응을 얻었고, 그 책에 소개된 절을 지키는 개도 스타가 될 정도로 기행문학의 역사를 새로 썼다.

고은 시인이 “유홍준의 눈빛이 닿자마자 그 사물은 문화의 총체로 활짝 꽃피운다. 마침내 다른 사람과 유홍준은 하나가 되어 이 강산 방방곡곡을 축복의 미학으로 채우고 있다”고 칭송할 만큼 그는 우리가 보지 못한, 혹은 모르는 우리 문화유산에 새 생명을 불어넣었다.

그런데 왜 일본의 문화유산인가. 하필 아베 총리가 일본의 우경화를 이끌고, 잇단 정치인의 망언으로 반일감정이 들끓는 시기여서 그의 일본편은 더욱 눈길을 끈다. 8·15 광복절 하루 전날, 유홍준 교수의 명지대 연구실을 찾았다. 도서관이나 박물관 같은 그의 연구실에서 그는 “일본을 잘 알아야 한국이 발전한다”고 강조했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펴낸 유홍준 교수

왜 일본인가. 2005년에 가수 조영남씨가 나름 일본을 제대로 이해하자며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친일 선언>이란 책을 쓴 후 말 그대로 여론에 ‘맞아죽을’ 정도의 상처를 받았다. 그렇다고 전여옥씨의 <일본은 없다> 같은 비판적 책도 아니고….

“한·일 양국, 쌍방에서 날아오는 독화살을 장풍으로 날려버리는 심정으로 썼다. 동아시아의 공존·공생관계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누군가 당당히 맞서야 하지 않겠나. 일본은 고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역사를 왜곡하고, 한국은 근대사 콤플렉스 때문에 일본 문화를 무시한다. 우리 역사를 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이해하고 해석해야 한다. 한국도, 일본도 동아시아 문화사에서 당당한 지분율을 갖고 있는 문화적 주주 국가임을 알아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썼다. 또 지난해 일본 규슈에서 수학여행을 온 부산의 고등학생들을 만난 게 계기가 됐다. 나를 알아본 학생들이 ‘일본의 고대문화는 죄다 우리가 만들어준 것인 줄 알았는데 와서 보니 그렇지 않네요’라고 한 말에 평소 마음먹고 있던 일본편을 내자고 결심했다.”

20년 전부터 준비했다고 들었다.

“해마다 한두 번씩은 일본에 갔다. 내가 덜렁거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치밀한 성격이다. 갈 때마다 안 가본 곳을 가보고, 궁금해서 가본 곳을 다시 가보고, 여러 자료를 수집했다. 명작은 세월이 흘러도 매력적이고 사람을 계속 부르는 것이 특징이다. 문화유적지나 유물 역시 계속 끄는 힘이 있다. 특히 유적지는 보는 계절에 따라 느낌이 달라 자주 가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도 일본에 자주 갔는데 대체 그동안 뭘 보고 다닌 것인가 자괴감을 느꼈다.

“대부분이 그런 반응을 보인다. 그동안 우리가 일본, 특히 일본 역사에 대해 너무 몰랐다. 무조건 일본 문화는 우리가 전해준 것이라는 생각만 한 것이 좀 옹졸했다는 반응도 있고, 책에서 주장한, 3국시대가 아니라 가야와 왜를 포함한 5국시대를 알아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하는 이들이 많다.”

집필하며 가장 힘든 일은 무엇이었나.

“남의 나라 이야기, 특히 역사와 유물에 관해 쓰기는 쉽지 않다. 현재 살지도 않고, 유학한 적도 없고, 일본 친구도 없는데 혼자 보고 느낀 것을 글로 쓰려니 힘들었다. 일본에 관한 책만 1000권 정도, 다 내 돈 주고 사서 공부했다. 집필보다 강경 보수세력이나 골수 우익들이 일본 유물에 관해 썼다고 공격하면 어쩌나 솔직히 걱정스러웠다. 그런데 뜻밖에 찬사가 더 많다. 진작에 일본에 대해 더 잘 알았어야 했다는 반응이 많아 다행이다. 일본의 유물과 유적을 통해 그들의 속살을 보여주고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알려주고 싶다는 내 뜻이 제대로 전달되는 것 같다.”

한국 최초의 서양견문록인 유길준 선생의 <서유견문>은 1895년에 일본에서 출판됐다. 일본에 유학한 그가 ‘일본이 근래 갑자기 조선보다 부강하게 된 이유가 그 제도나 법규가 서양을 모방한 것이 십중팔구이며 그 장점을 취한 것’이란 생각에 서양의 부강요인을 탐구한 책을 썼다고 했다.

“유길준 선생은 나와 같은 기계 유씨이고 항렬도 같다. 내가 100년 후배인 셈이고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역시 <서유견문>보다 100년 후쯤 나왔다. 그분은 외국 견문록을 써서 기행문학의 백미를 집필했다. 그 책은 시대상황이나 그분의 역할상 서양의 부강요인을 배우겠다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 기행문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중국이나 일본 통신사들의 보고서 형식을 비롯, 다양하지만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본격적인 기행문학이라 할 수 있다. 1927년에 육당 최남선이 남도를 답사하고 쓴 <심춘순례>, 30년 후인 1960년대에 <김찬삼의 세계여행>이 나왔다. 다시 30년 후에 내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펴냈고, 20년이 지난 지금 일본에 관해 썼다.”

다시 원초적인 질문을 하자. 왜 일본 문화유산인가.

“우리 문화와 유산에 대한 자신감이 생겨서다. 우리 문화유산을 공부하며 자신감을 얻고난 후 일본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이제는 우리가 일본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고 인정할 것은 인정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다. 역사나 문화에서 일본에 꿀릴 게 없으니 말이다.”

그래도 지금 아베 정권의 태도나 각종 망언을 보면 일본에 대한 미움만 커지는데.

“아베가 일본인 전체를 상징하는 인물은 아니다. 일본인들은 아베 정권의 이념과 철학에 동조하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20년, 경제불황에 대한 공포와 기대감으로 아베노믹스를 인정할 뿐이다. 아베의 언행을 보면 절대 일본이 대국이 아니고, 아베 역시 그릇이 작다란 생각이 든다. 그의 언행은 부장이나 국장의 사견이지 CEO가 할 말은 아니다. 일본인들은 섬나라에 갇혀 살아 남들과 함께 사는 데 미숙한 것 같다. 그저 ‘덕을 길러라’라고 어른스럽게 나무라면 된다.”

유 교수가 생각하는 한·일관계의 해법은 무엇인가.

“일본은 두 차례의 역사 왜곡, 즉 <일본서기>와 근대 황국사관의 역사 왜곡을 인정해야 한다. 임진왜란과 식민지 지배를 사과해야 하고, 또 한반도로부터 문명을 전수받았음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도 일본에 문명과 문화를 전달한 것은 선물한 것이 아니라 문화사적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흘러갔다고 봐야 한다. 당시 한국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던 낮은 신분의 도공이 일본에 가서는 귀족 대우를 받아 한국의 도자기 문화를 퍼뜨렸다. 피를 나눈 형제, 절친한 친구와도 갈등이 있지 않은가. 영국과 프랑스는 100년 전쟁을 했고, 나폴레옹이나 히틀러는 얼마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나. 임진왜란은 겨우 7년 전쟁이고 진정한 승리는 우리나라였다. 일본이 금방 반성하고 통신사를 보내달라고 하지 않았나. 최근 100년 동안 뒤틀린 역사와 갈등을 이제는 바로잡아 미래에는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이뤄야 한다. 그것이 우리나라와 국민의 행복도 좌우한다.”

그런데 왜 서양에서는 일본 문화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영향을 받을까. 지식인도 그렇고, 고흐 등 화가의 작품도 그렇고.

“19세기에 서양인들이 동양을 이해하는 창구가 일본이었다. 100년 전에 이미 <일본은 누구인가> <일본의 미학은 무엇인가>란 책이 영어로 쓰여져 서양인들에게 읽혔다. 중국은 임어당이 영어로 중국 문화와 생활을 알리는 책을 많이 저술했다. 영어로 쓰여진 <내 나라 내 민족>의 경우 중국을 이해하는 교과서 역할을 했다. 우리는 우리 문화를 서양에 알릴 국제적 문헌이 없다. 그런 책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그 나라 문화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고, 직접 찾아가 유적지를 보는 등 관광을 하고 싶어진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에 가봐도 대형 박물관이나 미술관에 한국 자료는 거의 없다. <한국미술 5000년전>이 해외 순방을 하고서야 서양에서 한국 문화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다. 한국 미술이 중국과 일본이 갖지 못한 편안함, 질서가 없어 보이는데도 미학과 윤리가 있음에 찬사를 보냈다. 세계적 감각을 갖춘 학자들과 전문가들이 외국어로 된 책을 내고 행사를 기획하는 등 한국 문화를 알려야 한다.”

좀 쉽게 알릴 방법은 없나.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일본을 물고 들어가는 것이다. 일본은 2000년간 우리 문화에 빨대를 꽂아 빨아먹어 성공했다. 그럼 우리는 이미 세계에 알려진 일본 문화를 보여주며 ‘우리에게서 가져가거나 배워간 것’을 강조하고 우리가 더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면 된다. 문화외교정책도 마찬가지다. 내가 문화재청장 시절에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계기로 중국에 제안을 했다. 중국을 널리 알리려면 중국 국가박물관에서 ‘한·중·일 국보 300점 전시회’를 열자고 했다. 중국이 문화 종주국이니 당신들이 200점, 그리고 우리가 100점을 내도 좋다, 유럽 국가들이 EU로 결속하듯 우리도 힘을 합치자고 강조했다. 그런데 일본측 반대로 무산됐다. 내 생전에 서울·베이징·도쿄에서 전시회를 갖고 런던·파리·뉴욕으로 이어지는 순회전을 열고 싶다. 그러면 그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한국 문화를 제대로 알릴 수 있을 것이다.”

한류 열풍이 세계적으로 뜨겁지 않은가.

“한류는 말 그대로 흘러가는 것이다. 절대 정부에서 한류 촉진 기관을 만드는 등 행정이 개입해 돈과 힘을 쓸 이유가 없다. 소녀시대나 싸이가 다 알아서 한다. 싸이만 해도 어떤 이들은 ‘미친 놈이 말탄다’고 비아냥거렸지만 세계인이 말춤을 추게 만들어 기마민족의 힘을 보여줬다.”

백낙청 선생은 ‘유홍준처럼 입심 좋고, 글 솜씨 좋고, 먹성 좋고, 눈썰미 사납고, 꽤나 극성맞기도 한 연구자 겸 평론가를 만난 것은 여간한 복이 아니다’라며 ‘독자를 붙잡는 귀신 같은 이야기꾼’이라고 칭송했다. 황석영씨와 더불어 ‘대한민국 3대 구라’로 불리기도 하고, 글 역시 ‘수다체’라고 명명되었다. 이건 타고난 것인가, 노력의 결과인가.

“타고난 것 같다(웃음). 대학시절, 1시간 반짜리 영화를 보고 학림다방에서 친구들을 모아놓고 3시간 동안 영화 이야기를 떠들었다. 줄거리, 주인공 대사, 관객의 반응까지…. 문체의 경우엔 내 글은 어떤 때는 센티멘탈하고, 또 어느 부분은 논문처럼 정확하고, 풍광 묘사를 할 때는 낭만적이어서 결국 ‘수다체’라고 이름 붙여졌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같은 여행 이야기여도 유물 앞에서 ‘너희들은 이건 몰랐지?’라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사적 지식과 미학적 개념들을 편히 풀어놓는다. 구성도 독특하다. 1꼭지에 원고지 100장으로 단편소설적 구성을 한다. 내가 혼자 말할 수 있는 이야기도 같이 동행한 전문가 윤용이 교수가 말하게 하는 등의 다양한 화자를 등장시키고, 기승전결의 구성으로 문학적 힘을 갖고 있어 사랑을 받는 것 같다. 무엇보다 난 문필가가 아니어서 가능했다. 난 학자이니 탁월한 글솜씨가 아니어도 부끄러울 이유가 없어 쓰고 싶은 대로 거침없이 썼다.”

<문화유산답사기>에 나온 ‘아는 만큼 느끼고 느끼는 것만큼 보인다’는 말은 명언 수준이 됐다. 하지만 너무 알고 가면 고정관념을 갖게 될 위험도 있지 않나.

“박완서 선생이 제주편의 추천사에서 ‘나는 한때 유홍준의 신도였다. 유홍준이 보라는 대로 보고, 유홍준이 아름답다는 대로 아름다움을 느끼려 했다. 그러나 나는 지금은 유홍준의 신도가 아니다. 이제는 내 시각대로 본다. 그러나 그것은 유홍준이 시키는 대로 해봤기 때문에 내 시각을 갖게 된 것이다’라고 했다. 그게 핵심이다. 사전 지식이 있으면 더 깊이 볼 수 있다. 보고 난 후에는 나만의 시각과 새로운 호기심이 생겨나게 한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300만부를 돌파했을 때 인터뷰에서 ‘내 책이 그만 팔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이제 디지털시대이니 시대에 맞는 형식의 새로운 책이 나와야 할 때임을 강조한 것이다. 지금 누가 해외여행 가는 데 김찬삼 여행기를 참고하나. 난 스마트폰도 없고, 카톡도 못 한다. 감각이 디지털화가 안 됐다. 젊은 학자 가운데 누군가가 새로운 형식과 새로운 장르의 답사기를 만들기 바란다.”

유홍준 교수는 전작에서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고 했다. 알면 보이는 게 어디 문화유산뿐일까. 한·일관계도 그렇고, 삼복더위에 국회와 장외에서 싸우는 정치인도 그렇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서로를 잘 아는 일인 것 같다.

“일본은 2000년간 우리 문화에 빨대를 꽂아 빨아먹어 성공했다. 그럼 우리는 이미 세계에 알려진 일본 문화를 보여주며 ‘우리에게서 가져가거나 배워간 것’을 강조하고 우리가 더 우위에 있음을 강조하면 된다.”

[유인경이 만난 사람]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일본편’ 펴낸 유홍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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