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이, 게이 XX!” 어른들이 만약 ‘소수자의 삶’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었다면…

2017.12.01 20:58 입력 2017.12.04 14:45 수정

[최현희 교사의 학교에 페미니즘을]“야이, 게이 XX!” 어른들이 만약 ‘소수자의 삶’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었다면…

초등학교 6학년 수업시간 중 일이다. 무슨 사연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불쑥 “이 게이 새끼가!”라는 말이 날카롭게 꽂힌다. 뒤에 붙은 ‘새끼’라는 말에 더해 게이라는 말이 욕이나 비하로 쓰였다는 것을 누구라도 감지할 수 있다. 투닥거리던 아이들 중 한 명이었던 발화자는 자기 목소리가 생각보다 컸음을 뒤늦게 깨닫는다. 교실이 조용해진다. 나머지 아이들은 선생님이 저 말에 어떻게 반응할까 하는 호기심에 잠시 조용해진다.

이때 교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대한민국 교육부의 성교육표준안에 따르면, 그 어떤 대응도 해서는 안된다. 동성애에 대해 언급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저 ‘나쁜’ 말을 그냥 지나치는 것은 교육자로서 찜찜한 일이다.

이제 규범이 나선다. “바른 말을 써야지! 그런 말 하면 안돼!” 바른 말 고운 말 규범은 아이들의 행동 수정에 얼마큼의 영향력을 가질까. 교사로서의 현장경험으로 예상하여 요즘 쓰는 말로 답해보자면 1의 영향력도 없다.

교사의 이 규범적 지시를 받고 ‘아! 내가 나쁜 말을 했구나! 바른 말 고운 말을 써야 하는데!’ 하고 깨닫고 자신의 말을 성찰할 수 있다면 학교에서 교사로 살아가는 건 정말 쉬운 일일 거다. 올바른 규범을 일러주는 것만으로 학생이 바른 행동을 할 수 있다면 교사의 전문성과 자격증이라는 것이 왜 필요할까.

아이들은 교사의 입바른 말을 ‘듣고’ 배우지 않는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보고’ ‘경험하고’ ‘느낀’ 대로 배운다. 사실 아이들은 그 말이 정당하지도, 바르지 않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다. 피상적인 앎과 실천의 간극 속에 살고 있을 뿐이다. 많은 어른들이 그러하듯이. 결국 교육이란 그 간극을 좁혀 자신의 말과 행동을 돌아볼 만한 사유의 힘을 길러내도록, 그래서 지성이 삶을 이끌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해내야 한다.

그러나 학교는 ‘너 게이냐’라는 아이들의 잘못된 언행을 지도할 역량이 있을까? 이를 위해서는 이 아이들이 서로를 비하하는 언어로서 ‘게이’를 소환하는 현상의 본질을 이해해야 한다. 왜 아이들이 그런 말을 하는지, 그 말에 내재된 혐오와 차별의 메커니즘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교사가 그 말의 올바르지 않음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을까? 교사부터가 그 말의 원인과 결과를 깊이 사유하지 않고서 어떻게 아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언행을 비판적으로 사유할 수 있도록 이끌 수 있을까. 그저 바른 말을 써야지, 하고 넘어간다면 그건 교육이 아니다.

아이들의 교실 일상은 결국 아이들이 살아가는 사회의 반영이다. 학교는 사회와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 사회의 일부이자 아이들의 다양한 삶의 시공간 중 하나이다. ‘너 게이지’, ‘너 애자(장애인을 비하하는 말)냐?’, ‘느금마’(엄마를 비하하는 말), ‘앙기모띠’와 같은 말은 이미 교실에서 일상적인 언어로 자리 잡은 지 오래이다. 이러한 현실을 뒤늦게 알고 들은 사람들은 아이들이 이런 말을 쓰다니, 하고 깜짝 놀라며 혀를 찬다. 나는 아이들의 잘못된 말과 태도에 놀라는 어른들을 보며 오히려 깜짝 놀라곤 한다. 아이들이 살고 있는 사회와 아이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에 얼마나 무지하면 그렇게까지 놀랄까 싶어서다. 아니면, 아이들이란 무릇 순수한 동심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는 아동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한 인식이 그런 놀라움의 원인인 걸까.

십수년에서 수십년 먼저 태어나 어른이 되었지만 넓은 시야로 보면 아이들과 우리는 기실 동시대인이다. 아이들이 무엇을 보고 겪고 느끼며 자라길래 그런 말이 아이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는지에 대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 조금만 관심을 갖고 들여다보면 이해가 가고도 남을 일이다.

우리 사회가 성별, 성적 지향, 장애유무, 인종 등에 상관없이 다양한 소수자의 삶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아이들이 어떤 집단의 정체성을 이르는 말을 욕으로 사용할 수 있을까?

게이라는 말을 욕으로 사용하는 현상은 여성혐오와도 연결되어있다. ‘너 레즈냐’라는 말보다 ‘너 게이냐’라는 말이 더 큰 모욕을 주는 말로 남학생들 사이에서 빈번히 쓰이는 이유는, ‘게이’가 사회에서 요구되는 소위 ‘남성성’으로부터 탈락한 남성을 향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성별이분법적 시선으로 볼 때, ‘남성’이 되지 못한 존재는 무엇인가. ‘여성’이다. ‘여성됨’이 욕으로 쓰이는 현상이 ‘너 게이냐’라는 말 속에 담긴 여성혐오이다.

한국 사회의 여성이라면 칭찬으로든 비난으로든 여성됨(?)의 평가를 누구나 받은 경험이 있다. ‘여자인데도 운전을 잘하시네요.’ ‘여자인데도 운동신경이 좋으시네요.’ 아이들이라고 이런 인식에서 자유롭게 클 수 있을까? 학교에서 성평등수업을 할 때마다 남학생들의 울분과 억울함을 먼저 들어줘야 하는데, 다름 아닌 울지 못한 한이다. 슬픔이나 속상함을 눈물로 표현했을 때 ‘남자애가 여자애처럼 우냐’는 말을 한번도 듣지 않고 자란 남학생을 찾기가 어려울 지경이다. 마음껏 울 수 없었던 억울함과 답답함을 공감해주고 인정해주는 동시에, 나는 그 말에 담긴 여성에 대한 비하 또한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그 말에 숨어있는 메시지는 없을까?”라고 질문하고 잠시만 기다리면 이내 아이들이 찾아낸다. 우는 건 약한 여자아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편견에 담긴 ‘여성됨’에 대한 멸시를.

수업시간에 불쑥불쑥 아이들 사이에서 나오는 혐오와 차별의 언어를 교사가 먼저 이해하고 알고 있어야 한다. 어떤 관점과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지도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아이들을 규범적으로 판단하고 비난하며 미워해서는 안된다. 가장 기초적인 교사의 자질이다. 아이들의 잘못된 언행을 판단하기 이전에 그 말이 나오게 된 사회적 토양에 대해 이해하고 비난하고 꾸짖기보다는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는 능력. 그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교사의 젠더 감수성이다.

페미니즘의 렌즈 없이는 아이들의 일상언어에 스민 여성혐오와 소수자 배제의 정서를 간파할 수도, 올바른 방향으로 교육할 수도 없다. 교사가 먼저 배우고 교사가 먼저 각성해야 하는 이유이다. 교육은 비단 수업시간에 교과서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30여명의 아이들과 교사가 수업 안팎에서 만나는 모든 순간순간이 교육이 일어나는 시간이다. 아이들의 한마디 말이나 작은 행동 속에, 약자를 괴롭히고 소수자를 혐오하는 학급의 문화가 감지된다면 잠시 멈춰서 함께 생각해볼 시간을 주어야 한다.

교사는 학교에서 아침에 아이들과 반갑게 인사하며 하루를 시작함과 동시에 하교할때까지 수많은 대화를 나눈다. 점심을 먹으며, 쉬는 시간에 함께 놀며, 책을 함께 읽으며 평등하고 안전한 학급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일궈나간다. 평화롭고 자유로운 공동체 안에서 비로소 국어든, 수학이든 교과서 속의 배움도 의미있게 피어날 수 있다.

페미니즘이 사상교육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초등학교 아이들이 알기엔 너무 이르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을 교실에 데려다 놓고 아이들의 일상을 관찰하게 하고 싶다. 아이들의 삶은 이미 저만치 가있는데 교육은 제자리에 있어야 한다고, 아이들이 학교 밖에서 경험하는 우리 사회의 온갖 혐오와 차별을 체화하더라도 교육은 교과서에 나와있는 정해진 내용을 전달하는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의 주장이 나는 교사로서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이들은 이미 유튜브 BJ들의 혐오 콘텐츠를 통해 성소수자를 타자화하고 비하하는 말을 놀이처럼 일상에서 사용하는데 성소수자의 존재 자체를 언급하지 못하게 하는 우리나라 정부의 성교육표준안도 이해할 수 없다.

‘너 게이냐’라는 말을 욕으로 사용하는 잘못된 학교문화를 바꾸어나가려면 교사는 물론 학교 밖 어른들이 더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말을 입에 담는 아이들을 꾸짖기 전에, 그런 말을 듣고 배우게 한 현실을 만든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미안해해야 한다.

나 역시 학교에서 아이들의 잘못된 말과 행동을 교육의 계기로 삼는 순간들이 많지만 밑바탕에 깔린 건 언제나 미안함이었다. 그 미안함으로 퀴어축제에 참가했고 성소수자의 인권을 위해 목소리를 내었다. 당연하다. 말로만 가르칠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차별과 혐오에 맞서 도심의 거리를 당당히 행진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담긴 축제의 한 부분을 함께 보며 아이들이 유튜브로 경험하는 폭력과 차별이 우리 사회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가르쳤다. 그걸 보고 동성애 조장(?)교육을 했다며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묻고 싶다.

‘여성적’으로 행동하는 남학생에게 ‘너 게이냐’라고 욕하고 조롱하는 아이들의 문제적인 말과 행동에 당신은 정말로 책임이 없습니까?

▶필자 최현희

[최현희 교사의 학교에 페미니즘을]“야이, 게이 XX!” 어른들이 만약 ‘소수자의 삶’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었다면…


13년차 초등교사. 좋은 교사가 되려고 노력하던 중에 페미니즘을 만나버렸다. 페미니스트가 되기 전에는 스스로 꽤 좋은 교사라고 믿었으나, 페미니즘이라는 렌즈로 다시 바라본 교실과 학교는 좋은 교사에 대한 고민을 처음부터 다시 하게 했다. 페미니즘으로 직업과 일상이 고단해졌지만 고민하고 실천하는 삶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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