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 일가’ 세금 1조, 지나치지 않다

2018.04.05 21:07 입력 2018.04.05 21:18 수정

[편집국에서]‘현대차 일가’ 세금 1조, 지나치지 않다

현대자동차그룹이 순환출자 고리를 끊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서로 꼬리를 물고 물리는 순환구조에서 현대모비스를 정점 지배회사로 만들고 현대차와 기아차 등을 그 아래 세우는 구조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 지배구조 개편은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기아차와 현대제철 등이 보유한 현대모비스 지분을 팔아 순환출자 고리를 끊겠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구상이다. 5조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되는 매각 지분은 정몽구 회장과 정의선 부회장 등 총수 일가 부자가 사들이기로 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 정의선 부회장의 그룹 지배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그들이 구상한 대로 실현된다면 지배구조 개편과 3세 경영권 승계라는 현대차그룹의 ‘난제’를 한번에 해결할 수 있다.

지배구조 개편 과정에서 총수 일가 부자가 양도소득세 등 1조원대 세금을 납부하게 될 것이라고 현대차그룹은 밝혔다. 계열사의 현대모비스 지분을 매입하려면 총수 일가가 가진 다른 계열사 주식을 팔아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양도세를 내겠다는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세금 내지 않는 방식으로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할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며 자찬했다. 그들은 ‘정공법’이라고 했다. 하지만 꼼꼼히 들여다보면 ‘꼼수’로 경영권 승계를 꾀했던 삼성그룹 총수 일가가 처한 곤경이 반면교사가 된 것 같다.

양도세로 1조원 낼 계획을 세웠다면 총수 일가가 주식을 팔아 남긴 차익이 4조원에 근접한다는 뜻이다. 올해부터 대주주가 주식을 매각해 생긴 소득이 3억원 이상이면 양도세율이 27.5%(주민세 포함)로 조정됐다. 매각해서 남긴 차익의 4분의 1 이상을 세금으로 내야 하는 것이다.

재산이 얼마나 많길래 양도세 1조원을 감당할 수 있을까. 정몽구 회장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수십년째 쌍벽을 이루는 주식 부자이니 재력이 든든할 것이다. 하지만 만 48세인 정의선 부회장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막대한 부를 일궜는지 궁금하다. 그는 현대차그룹을 경영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이다.

본격적인 승계작업이 진행되지 않았음에도 정 부회장은 이미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집계한 한국의 11번째 부자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비상장사를 포함해 현대차그룹 10개 계열사 보유 주식 지분가치는 3조5000억원에 이른다. 게다가 올해 배당금이 600억원 이상이고, 지난해 보수도 18억여원에 이르는 등 해마다 받는 배당금과 보수도 상당하다. 정 부회장의 총재산은 4조원을 웃돌 것으로 추정된다.

여느 재벌가 3세와 마찬가지로 정 부회장의 재테크 실력은 일반인의 상상을 초월한다. 2001년 현대차그룹 물류를 담당하는 현대글로비스 설립 때와 이듬해 각각 14억9800만원으로 매입한 지분이 종잣돈이었다. 2005년 상장한 글로비스의 4일 종가는 17만3500원이다. 정 부회장 지분가치는 1조5150억원이다. 글로비스 설립 당시 29억9600만원을 투자했으니 17년 만에 500배가 넘는 수익률을 거뒀다. 앞서 정 부회장은 글로비스 지분을 수차례 매각해 수천억원의 차익을 남겼고, 그 돈으로 현대차 등 다른 계열사 주식을 사들였다.

고수익을 올린 것은 글로비스뿐만 아니다. 375억원을 들여 현대엠코 최대주주에 올랐던 정 부회장은 엠코와 현대엔지니어링이 합병하면서 지분가치가 7834억원(장외 거래가 88만원 기준)으로 뛰었다. 3억9000만원에 산 현대위스코 지분은 현대위아와 합병한 뒤 현재 가치가 296억원에 이른다. 광고 계열사 이노션 지분은 12억원에 매입했다가 팔아 3000억원을 남겼고, 지금도 261억원어치 지분을 갖고 있다.

정 부회장의 꿈 같은 수익률은 계열사의 전폭적인 밀어주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만약 정 부회장이 지금 보유한 4조원대 재산을 아버지로부터 상속받았다면 세금은 얼마나 될까. 상속증여세 최고세율 50%를 적용하면 절반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 시민사회단체에서 “회사기회의 편취에 의한 총수 일가의 이득에 대해 적정 과세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현행법상 과세할 방법은 없다. 불법은 아니지만 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총수 일가가 부를 축적한 것이다.

현대차그룹이 밝힌 대로 지배구조를 개편하면 순환출자 문제는 해결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세금을 납부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는 언급은 적절치 않다. 다른 누군가 할 수 있었던 일을 총수 일가가 빼앗아 사익을 챙겼다. 그렇게 쌓은 부를 경영권 승계의 종잣돈으로 활용하려 하고 있다. 세금 1조원 내겠다고 자랑만 할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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