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과 그린벨트 해제라는 모순

2024.03.05 20:07 입력 2024.03.05 20:09 수정

나무는 그저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산소를 공급하고 미세먼지를 걸러준다. 습도를 조절하고 온도를 낮추는가 하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뿌리를 내려 산사태를 막고, 약재나 땔감으로도 쓰인다.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를 흡수한다. 전주시가 홍수 예방 조치라며 최근 전주천과 삼천 일대 버드나무 수백그루를 잘라냈다. 시민사회단체는 수십년 된 나무를 잘라낸 책임을 물어 시장 퇴진을 요구하겠다고 한다.

나무를 포함한 지구 생물권은 인간이 배출한 탄소의 45%를 빨아들인다. 각국은 2050년쯤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는데, 이미 달성한 나라도 있다. 글로벌 데이터 네트워크 ‘에너지모니터’ 조사를 보면 2021년 기준 부탄과 수리남 등 8개국이 탄소 중립 또는 마이너스 상태이다. 대부분 가난한 나라지만 국토의 상당 부분이 나무가 우거진 울창한 숲이라는 특징이 있다.

2000㏄급 승용차 한 대가 연간 2만㎞를 운행하면서 배출하는 탄소량은 3.2t이다. 30년생 소나무 한 그루는 연간 탄소 8.5㎏을 흡수한다. 자동차 한 대가 뿜어낸 탄소를 제로(탄소중립) 상태로 만들려면 소나무 376그루, 산림 3330㎡(약 1000평)가 필요하다.

영국은 1955년 전 세계에서 처음 그린벨트를 도입했는데, 국토 전체의 12.6%(1만6384㎢)를 유지하고 있다. 한국처럼 개발 요구가 거세지만 ‘토지를 (시민들에게) 영구적으로 개방해 도시의 확산을 막는다’는 기본 목표를 고수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국의 그린벨트는 3.6%뿐이다. 사막 도시인 이란 수도 테헤란은 1980년대 중반부터 그린벨트를 확대해 녹색도시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슬람 혁명(1979년) 전 29㎢였던 그린벨트를 2020년 415㎢로 확대했다. 75개였던 공원은 2200여개로 늘리고 곳곳에 나무를 심었다. 그 결과 1인당 녹지 면적이 1㎡에서 16㎡로 넓어졌고, 여름 기온은 최대 4도까지 낮아졌다.

한국은 1971년 서울을 시작으로 1977년까지 전국 도심 주변 14곳 5387㎢를 그린벨트로 지정했다. 환경 보전을 위해 설정한 녹지대로 건물 신축과 토지 용도변경을 할 수 없다. 몇 차례 해제를 거쳐 현재 70%인 3793㎢만 남았다. 개발과 성장이 정책 최우선이었던 시기에 그나마 유지한 것은 다행이다. 마치 나중에 반드시 크게 오를 테니 팔지 말고 보유하라고 한 ‘우량주’ 같다.

산림과학원의 ‘2020년 한국의 산림자원(국가산림자원조사)’을 보면 71억그루가 넘는 나무들이 탄소 8억8600만탄소t을 품고 있다. 온실가스 순흡수량은 4320CO2환산t이다. 그러나 산지전용이 늘면서 나무는 갈수록 설 자리를 잃고 있다. 산지전용에 나무 노화까지 더해지면서 연간 온실가스 흡수 능력마저 쇠퇴하고 있다. 2000년 이후 10년간 연간 온실가스 순흡수량은 6000만CO2환산t 안팎이었으나 최근 급감했다.

‘국토의 70%가 산지’는 옛날얘기다. 2020년 국토 면적은 10만4100㎢, 산림은 6만2980㎢였다. 1974년 이후 바다를 매립해 국토를 1650㎢ 늘리는 동안 각종 개발로 인해 산림 3430㎢가 사라졌다. 67.2%였던 산림률은 62.7%로 떨어졌다. 국토의 60%로 쪼그라든 한국의 산지는 위기에 처했다.

상황이 이런데 그린벨트와 군사시설보호구역을 대폭 풀겠다는 정부 구상은 도대체 어떻게 나온 건지 의문스럽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충남 민생토론회에서 충남 서산과 경기 성남 등 7개 지역 군사보호구역 339㎢를 해제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울산 민생토론회에서는 비수도권 그린벨트를 대상으로 “해제 기준을 전면 개편하겠다”고 했다. 비수도권 그린벨트는 2428㎢인데 30% 정도만 해제해도, 군사보호구역을 합해 1000㎢가 넘는 녹지가 사라지게 된다. 이는 이산화탄소 약 1000만t을 흡수할 수 있는 나무 1억그루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 녹지 1000㎢는 서울시 전체 발생량의 10%인 1000t의 미세먼지를 줄일 수 있다.

그린벨트와 군사보호구역 해제는 정부의 기존 방침과도 어긋난다. 지난해 말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5차 국가생물다양성전략’은 현재 국토의 17% 수준인 보호지역을 2030년까지 30%로 확대한다는 게 주요 내용이다. 대통령이 그린벨트 해제와 같은 깜짝 개발 정책을 내놓는 건 무책임하다. 총선을 앞두고 관권을 동원한 사실상 선거 개입이다. 그린벨트 등 녹지는 후대를 위해서라도 보전 및 확대 방안을 강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미래 가치를 훼손하는 거꾸로 정책은 미래 세대에 죄를 짓는 일이다.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안호기 사회경제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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