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백제 금동대향로

2018.04.13 17:48 입력 2018.04.17 16:43 수정

봉황의 날갯짓에서 역동적 용틀임까지…61.8㎝ 향로에 새긴 꿈자세히, 오래 뜯어볼수록 아름다운 ‘백제의 정수’

‘백제 금동대향로’ (국보 287호)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백제 금동대향로’ (국보 287호)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1993년 12월12일,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인 충남 부여의 능산리 절터 유적. 국립부여박물관 발굴조사단은 여느 때처럼 발굴조사로 분주했다. 어둑해질 무렵, 서쪽 발굴현장 땅속 50㎝쯤에서 목곽수조가 발견됐다. 발굴단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경험상 습지유적은 공기가 통하지 않아 유물이 있다면 보존상태가 아주 좋아서다. 구덩이 속에는 기와·토기편들이 진흙과 뒤엉켜 있었고, 그 사이로 금속편까지 빼꼼 드러났다.

물을 닦아내며 깨진 기와와 토기편을 하나씩 들어냈다. 늘 그렇듯 발굴작업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3~4시간이 지났을까. 밤 8시가 넘어서자, 마침내 금속편의 온전한 모습이 드러났다. 누르스름한 빛의 금동유물. 발굴단원들은 모두 느꼈다. 조각 수준이나 크기, 출토지 등으로 볼 때 적어도 사비시대를 넘어 백제사를 다시 쓸 문화재라고. 1400여년 만에 다시 나타난 ‘백제 금동대향로’(국보 제287호)다.

백제 금동대향로 꼭대기에 앉은 상상 속의 새 봉황.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백제 금동대향로 꼭대기에 앉은 상상 속의 새 봉황.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1993년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불현듯 나타난 금동유물의 존재감
고대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들과인면조 등
숱한 상상 속 동물들 뒤로 숨어있는 연기구멍들…

■ 백제와 함께 묻히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여느 ‘국보’들처럼 그렇게 불현듯 우리 앞에 나타났다. 최승범 시인은 ‘…겹겹 어둠 인고의 세월을/ 아 용하게도 끝내/ 견디어냈구나/ 부스스/ 어둠 털고 현신하던 날/ 사비성 날빛도/ 눈이 부셨다…’고 표현했다.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 금동대향로가 출토되는 장면.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1993년 12월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 백제 금동대향로가 출토되는 장면.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이듬해엔 획기적인 연구자료도 발굴됐다. 향로 출토지인 공방터 인근 목탑터에서 명문이 있는 ‘능산리사지 석조 사리감’(국보 288호)이 나온 것이다. 20자의 명문은 사리감이 창왕(위덕왕·재위 554~598) 때인 567년 창왕 누이의 발원으로 봉안됐다는 등의 사실을 알려줬다. 이에 따라 능산리 절은 신라와의 관산성전투 중 사망한 아버지 성왕을 추모하기 위해 창왕이 세웠고(절 이전에 성왕을 추모하는 건축물이 있었다는 학설도 있다), 향로 제작 시기도 그즈음이라고 짐작할 수 있게 됐다. 또 향로는 발굴 정황상 급하게 숨겨진 것으로 보여 백제 멸망과 함께 묻힌 것으로 보인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의 ‘풀꽃’). 원로시인은 짧은 시 한 편으로 가슴을 철썩 때리며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사실 문화재도 그렇다. 이 향로는 특히 자세히, 오래 볼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향로로 손꼽히는 이유가 있는 것이다.

신선들이 사는 삼신산과 인물·생물들을 형상화한 뚜껑. - 뚜껑의 돋을새김 조각상들. 위로부터 완함을 연주하는 악사, 교묘하게 숨겨진 향 연기 구멍(오른쪽), 사람 얼굴을 한 동물(인면수신)과 코끼리를 탄 인물상.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신선들이 사는 삼신산과 인물·생물들을 형상화한 뚜껑. - 뚜껑의 돋을새김 조각상들. 위로부터 완함을 연주하는 악사, 교묘하게 숨겨진 향 연기 구멍(오른쪽), 사람 얼굴을 한 동물(인면수신)과 코끼리를 탄 인물상.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도교의 삼신산과 불교의 연꽃 녹인백제인의 탁월한 미감과
독창성에뛰어난 주조·도금술 집약된 작품

■ 인고의 세월 용하게 견뎌낸 명품

백제 금동대향로는 높이 61.8㎝, 무게 11.85㎏, 몸체 지름 19㎝다. 한 마리의 용이 용틀임하며 막 피어나는 듯한 연꽃 봉오리를 입으로 물고 있는 형상이다. 뚜껑과 몸체 두 부분이지만, 자세히 보면 위로부터 상상의 새 봉황, 뚜껑, 뚜껑으로 열고 닫는 몸체, 받침 등 네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향을 피우는 향로니까 연기가 나오는 구멍도 있다. 12개다. 오래 자세히 보지 않으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다.

봉황은 날개를 힘있게 활짝 펴고 보배로운 구슬(보주) 위에 서 있다. 턱 아래에는 여의주 같은 구슬을 품었고, 꼬리는 약간 위로 치켜 올라가 유려한 선을 그려낸다.

봉황 아래 뚜껑에는 고대 악기를 연주하는 5명의 악사가 실감나게 돋을새김됐다. 완함 연주자를 중심으로 피리 모양의 종적, 관악기 배소, 북, 거문고를 연주 중이다. 그 아래엔 저마다 새가 앉아 있는 5개의 봉우리가 서 있다. 악사와 이 봉우리들 뒤편에 각 5개씩 10개의 향 연기 구멍이 숨었고, 2개는 봉황 가슴에 있다.

그 밑으로는 산봉우리들이 중첩돼 빙둘러 세워졌다. 봉우리들 위, 사이사이에는 명상 중이거나 말을 탄 채 활을 쏘는 사람 등 여러 형상의 인물상, 호랑이·코끼리·원숭이·멧돼지 같은 현실세계의 동물과 기괴하게 생긴 갖가지 상상 속 동물들, 바위, 식물, 폭포 등이 표현됐다. 마치 우주만물을 응축한 것 같다. 뚜껑의 조각상을 정리하면 생략시킨 것을 포함해 봉우리가 70여개, 신선을 떠올리게 하는 인물상 10여개, 40여마리의 동물과 6종의 식물 등이다.

특히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화제를 모은 사람 얼굴을 한 새(인면조)는 물론 사람 얼굴을 한 네 다리 동물인 ‘인면수신’상도 있다. 하나같이 섬세하다. 심지어 봉우리들 가장자리에 빗금을 새겨 마치 나무가 많은 산을 연출한 것처럼 보여 백제 장인의 솜씨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몸체는 8장의 연꽃잎이 3단으로 배치됐다. 자세히 보면 그 끝이 모두 밖으로 살짝 반전됐다. 생동감을 더하는 것이다. 연꽃 위나 사이에도 물고기와 새, 날개 달린 물고기 같은 상상 속의 동물 등 20여마리의 동물, 2명의 인물이 표현됐다. 향로의 받침은 승천하는 듯한 역동적인 용이다. 정수리에서 솟아오른 뿔은 목 뒤로 뻗었고, 갈기는 뚫음기법으로 장식됐다. 이빨까지 표현된 용의 입은 짧은 기둥으로 몸체와 연결됐다. 용틀임하는 몸통 사이에 파도·연꽃무늬가 조각됐다.

과학적 분석결과 향로는 빼어난 청동 밀랍주조기술, 첨단의 도금술이 적용된 금속공예품이다. 주성분은 구리와 주석, 도금기법은 수은에 금을 녹여 청동에 바른 뒤 열을 가해 수은을 없애는 당시 첨단기술인 수은아말감법이다. 두께는 0.5~0.6㎝로 일정하다. 물리적으로 받침은 용의 다리와 꼬리로 둥근 원을 만들어 안정감을 높였다. 특히 바닥에 닫는 세 지점을 이으면 정삼각형이다. 치밀한 설계가 읽혀진다. 향 연기 구멍도 연기가 곧바로 올라가지 않고 봉우리와 악사들을 타고 더 환상적으로 피어오르도록 했다.

연꽃잎과 갖가지 생물을 돋을새김한 몸체.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연꽃잎과 갖가지 생물을 돋을새김한 몸체.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한국 고대사 연구의 보물창고이자
동아시아서 가장 아름다운 향로

■ 향로로 그려낸 백제인의 사상

백제 금동대향로는 미술품이자 한편의 시, 영화 같다. 인물이든 자연물이든 등장하는 모두는 저마다 풍성한 이야기를 품었다. 나아가 그 모두는 독특한 배치로 어우러지며 극적인 미장센을 드러낸다. 또하나의 신비하고 거대한 세계를 펼쳐 보이는 것이다. 앞에서 향로의 겉을 찬찬히 살폈다면, 이제 향로 제작의 사상적 배경 등 그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보자.

크고 작은 산봉우리와 신령스러운 동물로 구성된 뚜껑은 도교의 삼신산(봉래·방장·영주산)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신산은 중국의 동쪽 바다 가운데 불로장생의 신선들이 산다는 곳이다. 고대 동아시아 사람들이 꿈꾼 이상향, 별천지다. 그러고보면 뚜껑 곳곳에 도교적 요소들이 많다. 펼쳐진 산수, 민머리에 도포를 입어 신선 같은 인물상, 신비로운 동물들이 그렇다. 이런 도상은 중국 한나라 때 신선사상을 담아내며 제작된 ‘박산향로’에서도 보인다. 물론 백제 금동대향로는 중국 박산향로와 비교해 보다 크고, 조형성도 빼어나며, 산·인물·동물상도 훨씬 수준높게 표현됐다. 백제만의 고유한 미감과 창의성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용틀임하는 듯한 용의 역동성을 표현한 받침.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용틀임하는 듯한 용의 역동성을 표현한 받침. 사진 제공 | 국립부여박물관

도교사상이 강한 뚜껑에 비해 연꽃잎이 가득한 몸체는 불교적 색채가 짙다. 몸체 자체를 연꽃으로 볼 수도 있는데, 연꽃은 불교문화의 상징으로 생명 창조·왕생 등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향로가 연화화생(蓮華化生) 사상을 표현한다고도 할 수 있다. 연화화생은 중생이 극락에서 연꽃을 통해 왕생한다는 것으로 우주만물이 연꽃에서 태어난다는 생명관이다. 연꽃 무늬도 있는 받침은 도교·불교적 요소가 어우러졌다. 용은 입에서 내뿜는 기를 통해 만물을 생성시킨다는 상징성이 있다. 용의 입을 통해 마치 기가 나오고 그 위의 연꽃(몸체)이 뚜껑의 만물을 생성시킨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향로를 음양오행설로 풀어내기도 한다. 음양오행설은 우주만물의 생성·소멸을 설명하는 고대 동아시아의 세계관이다. 꼭대기의 봉황은 양을 대표하는 동물이니 천상세계를, 맨 아래의 용은 음을 대표하니 수중세계를 상징화했다는 것이다. 이 밖에 향로에 표현된 개별 요소들을 해석하는 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도상도 많고, 학설이 충돌하기도 한다.

다만 많은 학설과 견해들은 백제 금동대향로가 도교와 불교 두 요소가 융합된 당시 백제인들의 종교와 사상, 세계관·자연관을 상징적으로 압축해 시각적으로 표현했다는 데로 수렴된다. 실제 도교·불교적 표현이 나타나는 것은 다른 유물에서도 찾을 수 있다. 공주 무령왕릉에서 나온 ‘청동받침이 있는 은제잔’이나 부여 외리에서 나온 문양전(무늬벽돌·보물 343호) 중 ‘산수봉황무늬벽돌’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백제 금동대향로를 통해 우리는 백제인의 탁월한 예술적 미감과 독창성,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적 역량도 알 수 있다. 백제를 넘어 삼국시대 문화사를 다시 쓰게 했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 향로를 바탕으로 고대 종교·사상사, 미술사, 음악(악기)사, 의복사 등 다양한 분야의 논문들이 나오고 있다. 공공조형물이나 갖가지 전통공예 문화상품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백제 금동대향로는 그야말로 보물창고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