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장 인사 사태가 남긴 교훈

2018.04.19 20:49 입력 2018.04.19 21:04 수정

[오창익의 인권수첩]금감원장 인사 사태가 남긴 교훈

대통령이 임명한 금융감독원장이 단박에 날아갔다. 임기 3년은커녕, 역대 최단기 재임기록을 남겼다. 피감기관의 돈이나 정치자금으로 부적절한 해외여행을 다녀왔고, 자신이 책임 맡은 연구소에 5000만원을 ‘셀프 후원’했다는 시비 때문이다. 잠깐 금융감독원장이었던 김기식은 오랫동안 시민운동을 했던 사람이다. 게다가 의정활동도 남달랐다. 그런 평가를 받는 사람의 행보치고는 실망스러운 대목이 한둘 아니다. 피감기관의 돈에 기대 해외여행을 꼭 갔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그게 국회의 관행이라면 그런 관행을 깨트리는 데 시민운동가 출신 국회의원의 역할이 있었을 거다. 시민들이 모아 준 정치자금을 국회의원 임기 말에 무슨 땡처리하듯 급하게 써야 했던 까닭도 모르겠다. 그 돈을 왜 자기가 일하는 연구소에 기부했는지 등 아쉬운 대목이 많다. 아무튼 김기식은 국회의원 시절의 돈 문제 때문에 물러났다.

금융개혁의 적임자가 안타깝게 낙마했는지, 아니면 애초부터 맞지 않는 감투를 쓰려다 실패한 일인지는 각자의 판단에 맡겨도 좋다. 그래도 이런 사달을 겪었으면 뭔가는 남겨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공직자의 자질에 검증조차 모호한 업무능력이나 전문성 따위를 넘어 국민 평균의 감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도덕성까지를 포함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은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금융감독원장 인사를 둘러싼 논란에서 개운치 않은 대목은 다시 짚어야 한다.

자체 검증은 물론, 야당과 언론의 의혹 제기 이후의 재검증까지 거친 청와대가 끝까지 문제없다는 태도로 일관한 까닭이 뭔지 모르겠다. 검증 시스템이 허술한 탓인지, 아니면 논란이 된 정도는 별 문제가 아니라고 여긴 것인지 모르겠지만, 검증에 실패했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청와대는 재검증까지 거쳤다면서 정작 판단은 선관위에 맡겼다. 이상한 일이다. 선출직인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가 선관위에 비해 자격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청와대와 달리 선관위에 아주 특별하고도 남다른 전문성이 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당장 쏟아지는 야당의 공세를 넘어서기 위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뭐든 선뜻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선관위가 위법이라고 판단하는 사안을 청와대에서 놓쳤다면, 청와대의 검증 시스템에 중대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위법 여부를 판단할 능력이 부족하다면, 당장 청와대 개편부터 해야 할 큰일이다. 그게 아니라, 선관위의 권위에 기대려 했다면 그건 촛불정부를 탄생시킨 시민들에 대한 모독이다. 뭐든 개운치 않다. 금융감독원장의 진퇴는 끝까지 청와대의 책임으로 풀었어야 했다.

선관위의 판단도 이상하다. 선거도 이미 끝났고 출마조차 하지 않은 사람에게 선거법을 적용하며 존재감을 과시하는 걸 이해할 수 없다. 게다가 김기식은 이미 2년 전에 같은 사안으로 선관위에 신고를 했단다. 여태껏 아무런 판단도 하지 않다가 청와대의 요청에는 재빨리 답했다. 법은 그대로인데, 2년 전에는 합법이었다가, 지금에 와서 위법이 될 수는 없는 일이다. 당시엔 업무가 많아서 꼼꼼하게 살펴보지 못했다지만, 그렇게 업무가 많은 기관이 청와대의 요청에는 그토록 신속하게 답변을 내놓은 건 또 뭔가. 선관위의 직무유기가 일을 키웠다.

어디서부터 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교훈은 남겨야 한다. 한판 푸닥거리에도 교훈마저 남기지 못한다면, 그건 당장의 인사 실패를 넘어 훨씬 더 치명적인 실수가 될 것이다.

가장 먼저 청와대부터 변해야 한다. 대통령의 높은 지지율에 안주하면 안된다. 역대 대통령 모두 한때는 높은 지지율을 자랑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인사문제 검증은 철저해야 하고, 다른 사정을 두지 않아야 한다. 검증 자체가 허술한 것인지, 아니면 자기 식구들에 대해서는 유난히 허술하거나 전혀 다른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아닌지 꼼꼼하게 따져봐야 한다. 이런 식의 인사 실패가 반복되면, 문재인 정부의 개혁동력은 내부에서부터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

공직자의 해외여행에 대해서도 분명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 사회는 김기식의 낙마 덕에 새로운 기준을 얻었다. 국회의원 같은 공직자들이 피감기관의 돈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안된다는 거다. 선관위의 판단과 달리, 관광 일정으로 허송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관광은 휴가를 얻어 자기 돈으로 다녀오는 게 떳떳하다. 보다 철저한 해외여행 규정을 만들고,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부터 철저하게 지키도록 해야 한다.

언젠가 한국을 찾은 베트남 공무원들을 만난 적이 있다. 한국을 방문한 공무원들이 대부분 여성이라는 점과 한결같이 젊은 분들이라는 점이 놀라웠다. 한국처럼 가부장적 문화가 강한 곳이라 여성 공무원들이 해외출장이라도 가야 가사노동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배려란다. 그리고 남의 나라까지 가서 뭔가를 배운다면, 앞으로 베트남을 이끌고 나갈 젊은이들의 몫이어야 한다는 거다. 한국과 같은 접대성, 공로성 해외출장은 없단다. 적어도 해외출장에 관한 한 베트남은 한국보다 훨씬 앞서 있다. 우리가 배울 게 많다.

[오창익의 인권수첩]금감원장 인사 사태가 남긴 교훈

높은 분을 접대하기 위한 해외여행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꼭 필요한 해외여행이라면, 지금 당장 시민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적어도 김기식이 속했던 19대와 지금 20대 국회의원들의 해외여행에 대한 전수조사가 바로 그것이다. 누가 어느 나라에 어떤 일정으로 얼마 동안 다녀왔는지, 여행 목적은 무엇이고, 그 경비는 어디서 지불했고, 수행은 누가 했는지도 모두 공개해야 한다. 김기식의 경우처럼 모두 투명하게 밝혀야 한다. 그래야 우리도 공정사회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을 거다.

우리가 주권자라면 그런 것쯤은 알아야 한다. 아는 것부터 시작하자. 알아야 판단할 근거도 생기고, 그래야 시민을 위한 정부와 의회도 제대로 구성할 수 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