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주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공천이 어려워지자 바로 국민의힘으로 옮겼다. 탈당과 입당은 신속했다. 민주당 소속으로 20여년 동안 활동했고, 4선 의원으로 국회부의장이던 사람이다. 이번 선거에서 승리하겠다는 다짐만 있을 뿐, 야당에서 여당으로 변신한 소회조차 별로 없다.
김영주 의원이 하위 20%에 속한 것은 신한은행 채용 비리에 대해 소명하지 않아서라는 데, 김 의원은 이 때문에 검경 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반발했다. 김 의원은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지만, 청탁받은 신한은행 부행장과 인사부장은 형사처벌을 받았다. 김 의원의 인사 청탁은 법원의 판결문으로 드러난 사실이다. 게다가 김영주 의원은 촛불 정부를 자임한 문재인 정부의 첫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이었다. 정치적 배신을 해서라도 국회의원을 한 번 더 하겠다는 김영주 의원의 집념이 대단하다.
김영주 의원처럼 최근 민주당을 탈당한 사람 중에는 원로들이 특히 많다. 이석현 전 국회부의장은 1992년부터 국회의원을 시작해 6선을 했다. 홍영표 의원은 국회의원 선거에 5번 나와 4번 연속 당선됐다. 설훈 의원은 1996년부터 국회의원을 했다. 재선을 했다가 10년 동안 피선거권을 박탈당했지만, 다시 살아나 내리 3선을 해서, 도합 5선이 된 사람이다.
광주에 출마하겠다는 이낙연 전 국무총리도 그렇다. 5선 의원에다 도지사, 국무총리, 여당 대표까지 지낸 사람인데도 뭔가 부족하다며 새로운 살림을 차렸다. 그의 희망대로 국회의원이 되면 76세까지 현장에서 뛰어야 한다. 아마도 내심은 대통령일 텐데, 그렇다면 75세의 나이에 임기를 시작해야 한다. 1960년 3·15 부정선거로 대통령이 된 이승만과 같은 나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75세에서 멈췄지만, 이낙연씨는 80세까지 대통령을 해야 한다.
직접 선수로 뛰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대철 헌정회장과 문희상 전 국회의장 등 민주당 원로들도 집단행동을 모색한단다. 정 회장은 아들 호준씨의 공천 때문에, 문 전 의장 또한 아들 석균씨의 공천 때문에 벼르는 거다. 정 회장은 선친이 8선을 한 서울 중구에서 5선을 했다. 호준씨도 국회의원을 한 적이 있으니, 3대에 걸쳐 같은 지역구에서 14번이나 국회의원을 했던 거다. 문 전 의장도 지역구 세습을 시도하고 있다. 한 번 하면 두 번 하고 싶고, 내가 하면 자식에게도 물려주고 싶은 게 국회의원 자리인가 보다.
국회의원이란 직업이 얼마나 좋으면, 그 직업이 갖는 중독성이 얼마나 심각하면 이 지경일까. 게다가 국회의원이 되려는 사람들은 죄다 자신이 적임이라 여긴다. 그러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고 당적을 옮기거나 무소속이 되어도 상관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으로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다면, 어떤 희생도 기꺼이 치르겠다는 자세다.
선거철마다 늘 보던 장면이 반복된다. 국회의원이 정치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정부를 감시하고 국민을 위한 ‘법의 지배’를 실현하기 위해 의정활동을 하는 힘든 일자리가 아니라, 여태껏 살았던 자신의 삶과 나름의 성취를 보상받는 자리쯤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런 사람들로 국회를 채우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러니 국회는 국민 일반을 대표하지도 못한다. 절반이 여성이지만, 여성의 지위를 생각하면 남성보다는 여성 의원이 조금 더 많아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다. 21대에서 여성 의원은 57명으로 전체의 19%에 불과했다. 그나마 비례로 당선된 26명을 포함한 숫자다. OECD 꼴찌 수준이다. 그러니 정부·여당이 여성가족부를 없앤다고 으름장을 놓고 아예 장관조차 임명하지 않는 일이 벌어져도, 동일 노동을 할 때 성별에 따른 임금격차가 가장 큰데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는 거다.
직업별 편중도 심하다. 법조인과 관료 출신이 유독 많다. 법조인은 법조문을 읽거나 외우는 데 익숙한 사람들이다. 국회의원은 법률을 재구성하는 상상력을 갖고 있어야 한다. 판례나 좇는 법조인들이 감당할 일이 애초에 아니다. 관료도 평생을 법령과 상관의 명령을 따랐던 사람이라 국회의원에 적합하지 않다.
언제나처럼 정해진 답은 없다. 유권자의 선택은 지역구와 비례뿐이다. 지역구에서는 덜 나쁜 사람, 비례에서는 내 생각에 가까운 정당을 고르면 된다. 꼼꼼히 따져서 잘 뽑아야 기형적인 국회를 조금이라도 정상화시킬 수 있다. 의원직을 가업처럼 이어가는 사람, 오랫동안 국회의원을 한 사람, 법조인이나 관료 출신은 되도록 뽑지 않는 게 좋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