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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 행정처 퇴직자에 243억 ‘입찰 특혜’ 의혹

2018.08.13 06:00 입력 2018.08.13 09:43 수정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전직 6명이 만든 곳과 거래, 위법 지적 나오자 부인 명의 업체와 계약

10년간 물품·용역 ‘뻥튀기 수주’…취재 시작되자 입찰 절차 중단

대법원이 전직 법원행정처 공무원 가족이 설립한 회사와 2009년부터 올해까지 243억원 규모의 물품·용역 계약을 맺어 거래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은 2008년 국회에서 법원행정처 출신 공무원 6명이 2000년 설립한 회사에 대법원 사업을 준 것은 공직자윤리법 위법이라고 지적받자 2009년부터 설립자 가운데 한 사람의 부인이 설립한 회사와 거래해왔다.

경향신문이 12일 최근 10년치 대법원 발주 사업의 입찰 결과와 계약 내용을 입수해 분석해보니 ㄱ사는 대법원의 ‘전자법정 사업’에 물품공급(직접계약) 188억여원, 용역사업(하도급) 55억여원 등 모두 243억여원 규모의 사업을 수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회사는 10년간 예정 가격의 99.845%(평균)에 낙찰을 받아온 것으로 조사됐다. ㄱ사와 다른 업체를 포함한 낙찰 가격 비율은 2015~2017년 91~96%대였다. 업계 관계자는 “대법원이 ㄱ사만 확보 가능한 비정상적인 스펙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ㄱ사의 전신격인 ㄴ사도 2000년 설립 후 감사원과 국회의 지적이 있기 전까지 대법원과 수의계약을 맺어 전자기기 등 수백억원대 물품을 제공했다. 2008년 9월 법제사법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대법원이) 지금 수백억원의 국가 예산을 집행했는데 특정업체하고 수의계약을 했고, 그 특정업체는 오로지 대법원 관계 일만 담당하고 있다. 그 특정업체의 이사들은 전부 법원행정처 공무원들이다. 공직자윤리법을 정면으로 위반한 그런 행태로 보인다”고 말했다. 감사원도 2007년 대법원과 ㄴ사의 수의계약 문제를 지적했다.

대법원은 논란 이후 법원행정처 출신이자 ㄴ사 설립자 중 한 명인 ㄷ씨의 부인이 만든 ㄱ사와 계약·거래를 진행했다. ㄱ사는 2009년 이후 전자법정 등 대법원 사업에서만 20건(188억49만5000원)을 수주했다. ㄷ씨의 부인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으면서 이 회사 대표보다 많은 급여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이 조달청 공급 가격의 10배가 넘는 고가의 장비를 ㄱ사에서 사들인 사실도 확인됐다. 대법원은 형사기록 서류를 스크린으로 방청객에게 보여주는 실물화상기를 조달청에 등록된 삼성에스디피(옛 삼성테크윈) 등 국산 제품 대신 오스트리아 ㄹ사 제품을 샀다. 삼성에스디피 제품은 대당 가격이 39만6000원이고, ㄹ사의 유사 제품은 500만원이다. 대법원이 구입한 ㄹ사의 실물화상기 구입 가격은 500여대 21억여원이다. ㄱ사는 최근까지 ㄹ사의 한국 판매선이었다.

대법원은 경향신문 취재가 시작되자 13일로 예정된 62억원 규모의 ‘2018년 전자법정 구축사업’ 입찰 심사절차를 중단하고 자체 조사에 들어갔다. 대법원 관계자는 “ㄱ사가 전직 법원행정처 직원의 가족이 설립한 회사라는 사실과 입찰 과정에 문제가 있는지 파악되지 않았다. 문제가 드러날 경우 윤리감사관실 감사는 물론 검찰 수사의뢰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ㄱ사 측은 “공개 투찰 및 평가절차에 따라 낙찰이 된 것”이라고 했다.

■ ‘서류용 실물화상기’ 500만원짜리 수술실 장비 구매

연간 수백억원 쓰는 대법원 ‘정보화사업’ 실태
동맥 움직임 보는 기계…입찰 제안서에 특정 스펙 요구
낙찰가율 99.845%, 평균보다 크게 높아 ‘부당거래 의혹’

전자법정을 비롯한 대법원의 정보화사업은 연간 수백억원대 예산이 들어간다. 법원행정처 출신 공무원 가족이 설립한 ㄱ사는 2009년 이후 전자법정 사업을, 행정처 출신 공무원들이 만든 ㄴ사는 2000년 초반부터 정보화사업 계약을 따내 적잖은 이익을 내왔다.

■ 국회, 10년 전 의혹 지적

10년 전인 2008년 대법원과 ㄴ사 간 수의계약이 문제가 됐다. 법원행정처 출신 공무원들이 만든 중소업체가 대법원 사업을 독식한다는 지적이 국회에서 나왔다. 2008년 9월 정기국회에서 새누리당 박민식 의원은 “등기이사 6명 전부가 법원행정처에서 퇴직한 공무원이다. (대법원이) 수백억원 국가 예산을 집행했는데 특정업체하고 수의계약을 했고, 그 특정업체는 오로지 대법원 관계 일만 담당한다”고 지적했다. 김용담 당시 법원행정처장은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이 회사(ㄴ사)는 대기업의 하청업체로 참여한 것 같다. (법원행정처 공무원들이 이들 회사의 경비로 해외여행을 두 번 다녀온 것도) 새로운 장비의 사용설명을 듣기 위해 간 것”이라고 말했다.

■ 대법, 무늬만 입찰로 수주 계속돼

국회가 지적한 문제는 행정처 출신이라는 점과 업체 선정 과정이 불투명한 수의계약이란 점이었다. 당시 국회에서 회사 이름이 공개되고 문제가 되자 행정처 출신 6명이 세운 이 회사는 영업을 중단했다. 이 가운데 한 사람인 ㅁ씨가 2007년 12월 부인을 내세워 ㄱ사를 설립했다. 2007년부터 이미 감사원 등에서 대법원과 ㄴ사 간 수의계약 문제 등을 지적했기 때문이다. 2008년 9월 국회에 나온 김용담 처장은 “수의계약으로 죽 해오다가 작년부터 경쟁입찰로 돌렸다”고 했다.

하지만 ㄴ사의 후신격인 ㄱ사는 경쟁입찰 시작 이후에도 꾸준히 성과를 냈다. 2009년 전자법정 사업 시작 이후 수백억원어치를 수주했다. 물품구입 사업의 경우 2008년부터 올해까지 모두 20건에 188억49만5000원어치였다. 예정가 대비 낙찰가 비율이 99.845%였다.

하청업체로 참여하다 지적받은 용역사업도 재개했다. 2008년 국회는 ㄱ사를 두고 “LG CNS가 주계약자이지만 실질적으로 누가 여기 키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했다. ㄱ사는 2015~2018년 대법원이 발주한 유지·보수 용역에서도 55억원어치를 수주했다. LG CNS에 비교가 되지 않는 규모의 중소기업 ㅂ사가 수주한 196억여원 용역의 하도급이었다.

ㄱ사가 수주한 계약의 낙찰가율은 평균 낙찰가율보다 크게 높다. 경향신문이 확인한 대법원 발주 물품구입 사업 낙찰가율은 2015년 91.382%, 2016년 96.377%, 2017년 95.785%이다. 그나마 이 같은 수치는 ㄱ사의 실적이 더해져 나온 것이다. 같은 기간 ㄱ사의 낙찰가율을 보면 2016년 99.995%, 2017년 99.566%다. 업계 관계자는 “ㄱ사와 같이 높은 수치를 기록한 경우가 없지 않지만 주로 MS오피스 같은 독점 제품을 구입할 때 (ㄱ사처럼) 낙찰가율이 높다”고 말했다.

■ 실물화상기에 병원 장비

대법원이 ㄱ사를 통해 구입한 물품 중엔 고가의 외국산이 많았다. 이들 제품은 대법원을 제외하고는 사용하는 곳도 드물다. 오스트리아 ㄹ사 실물화상기, 일본 ㅅ사 인터넷프로토콜(IP) 카메라, 미국 ㅇ사의 영상솔루션 등이 대표적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법원 입찰제안서를 보면 외국 제품 스펙을 옮겼다고 의심되며 이에 맞는 해당 회사 제품을 구매하려 해당 제품 본사에 연락했으나 ㄱ사가 판매권을 가지고 있다는 답을 들어 구매를 포기했다”고 했다. 대법원은 “입찰 물품 스펙은 문제제기가 들어오면 바로 수정해줬으며 ㄱ사를 통하지 않고도 구입이 가능하다”고 했다.

대법원이 전국 법원에 549대를 보급한 대당 500만원(2016년 구입 가격· 2017년 370여만원)짜리 오스트리아 ㄹ사 실물화상기 도입 경위를 두고 대법원 측은 “법원행정처 심의관(판사)이 국산 제품과 ㄹ사 제품을 비교해봤는데 화질 차이가 너무 커 (쓰기에) 곤란한 정도였다고 했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검찰이나 경찰도 쓰지 않고 외국에서도 유명 의료기관 수술실에서 동맥 움직임을 파악하기 위한 기계를, 줄 간격이 엄청나게 넓은 검찰조서를 읽기 위해 써야 한다는 말이냐”고 했다.

정보통신 관계자들은 “비전문가인 판사가 기계 설정이 어떻게 됐는지도 모르면서 막연히 외국 제품이 좋았다고 말하는 것은 코미디”라며 “다른 행정기관들은 진작부터 제품성능평가(BMT)를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에 맡겨서 해왔다”고 했다. 대법원은 지난 10일 입찰 마감된 62억여원 규모 사업에서 오스트리아 ㄹ사 실물화상기를 대체하는 새로운 스펙을 제시했다. 대법원 측은 “기존 실물화상기에서 문서를 넘기면 화상기 다리가 걸리적거리는 결함이 발견됐다”고 했다.

업계 관계자는 “500만원짜리 화상기를 검증도 없이 도입한 대법원이 이번에는 미국 ㅈ사의 제품을 겨냥한 특정한 스펙을 올려놨다”면서 “나중에 입찰서를 보면 문제의 ㄱ사가 그 제품을 적어 넣었음이 확인될 것”이라고 했다. 이 관계자들은 “다른 행정부처들은 모든 과정을 조달청에 맡기는데 청와대나 국정원도 아닌 대법원이 스스로 입찰과정을 심사해 의심을 사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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