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적 인간의 사회적 동기

2019.07.18 20:54 입력 2019.07.18 21:01 수정

헤이조이스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여성들.    헤이조이스 홈페이지 캡처

헤이조이스에서 진행 중인 프로그램에 참가 중인 여성들. 헤이조이스 홈페이지 캡처

2017년 출간된 책 <물욕 없는 세계>에는 도시에서 유기농 식료품을 판매하는 소셜 비즈니스 창업가인 1987년생 바이 빈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유니클로에 입사했다가 9개월 만에 회사를 떠났다는 바이 빈은 대량 소비를 촉진하는 비즈니스가 아니라 일상의 행복에 집중하는 비즈니스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으로 창업을 했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 세대는 그저 돈만 벌 뿐, 그 회사가 하는 일이 돈 이외의 가치를 낳고 있다는 느낌이 없으면 그곳에서 일하려 하지 않아요.”

[제현주의 굿 비즈니스, 굿 머니]경제적 인간의 사회적 동기

벤처캐피털에서 일하는 나는 많은 스타트업 창업가들을 만난다. 긴 대화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는 “왜 이 사업을 시작했는가”이다. 아직 비즈니스의 틀이 자리 잡히지 않은, 만들어온 것보다 만들어야 할 것이 훨씬 많은 스타트업에 대한 투자는 앞으로 이 창업가가 이뤄낼 일에 대한 예측을 기반으로 한다. 그가 이뤄낼 일은 그가 어떤 사람인가에 대체로 달려 있기 마련이며, 회사의 미래는 그가 한 개인으로서 어떤 동기에서 출발한 사람이냐에 긴밀히 연계되어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재무적 수익률만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함께 고려하는 임팩트 투자를 원칙으로 깔고 있는 투자사인 만큼, 창업가가 왜 그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느냐는 우리가 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들 중 하나다.

교육과 검증을 거친 아이돌봄 선생님을 실시간 매칭해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는 ‘째깍악어’의 김희정 대표는 워킹맘으로서 겪은 어려움을 흘려 넘기지 않았다. ‘돈을 벌려고 째깍악어를 시작한 게 아니라 직장인 엄마로서의 답답함이 째깍악어를 있게 했다’는 김희정 대표는 자신만이 아니라 ‘내 이기심 때문에 가족이 힘들지 않나’ 자책하는 여성 동료들이 눈에 밟혔다고 했다. 20년 넘게 기자생활을 하고 유수의 대기업 임원 자리에도 올랐던 이나리 대표는 일하는 여성들을 위한 커뮤니티이자 커리어 계발 플랫폼인 헤이조이스를 창업했다. 이나리 대표는 술과 담배, 골프 등을 함께하며 뭉치는 중·장년 남성들의 문화에서 자신 역시 폭탄주를 한 잔이라도 더 먹으면 도움이 될까 안간힘을 쓰면서 버텼다고 말했다. 그런 비합리적인 안간힘 대신, 안전하게 서로를 독려하고 기꺼이 선배와 동료가 돼주는 연결의 커뮤니티를 만들어주고 싶다는 게 헤이조이스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너를 보고 투자해주겠다는 말에 오히려 덜컥 겁이 났다. 이 사업을 내가 진심으로 옳은 일이라고 믿는지 되돌아본 끝에 결국 투자를 거절하고 그 사업에서 손을 뗐다”라고 과거를 털어놓은 창업가도 있었다. 시간이 흘러 그는 시장성을 떠나 자신의 가치관과 일치하는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다시 만났고, 이제 기꺼이 투자를 구하며 사업에 매진하고 있다. 십수 년째 일해오던 업종의 이면에 지구 환경을 지독히 망가뜨리는 공정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직면한 뒤 “사장님, 우리가 이런 일을 하면 안 됩니다”라는 직언을 던지고 회사를 떠났다는 이도 있었다. 그는 오염 없는 공정을 만들어 보겠다는 마음으로 몇 년에 걸친 지루한 R&D 작업에 홀몸으로 투신했고, 결국 창업가가 되었다.

놀라운 것은 왜 그 사업을 시작했냐는 질문에 ‘시장기회를 포착했다’거나 ‘성공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거나 ‘돈을 빨리 벌기 위한 선택지였다’는 식의 답을 내놓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이다. 그들이 사업 아이디어와 만나는 순간은 아주 개인적이다. 창업가는 사회 속에서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한 명의 개인으로서 해소되지 않은 필요를 발견하고, 그 필요로 허덕이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얼굴을 본다. 그렇게 떠올리는 얼굴들 덕에 창업가의 개인적 동기는 사회적 동기가 된다. 기실, 창업가들의 동기가 단순히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은 아마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임팩트 투자자의 역할은 그 ‘사회적인’ 이유에 주목하고, 그 동기가 사업을 키워가는 내내 사그라지지 않게 북돋는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사회와 시장이 따로 있지 않으며 그 둘이 실은 서로를 상호강화하는 통합된 하나의 장이라고 보는 스테파노 자마니, 루이지노 브루니는 공저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에서 “시민경제의 핵심적 아이디어는 인간의 사회성과 상호성을 정상적인 경제생활의 중심으로 보는 것”이라면서 “시민경제는 시장과 경제가 등가교환의 원칙만을 기초로 삼는, 윤리적으로 중립적인 장이라는 시각을 넘어선다”고 말한다. 경제적 인간은 사회적 인간과 따로 있지 않으며, 시장 안에서 일하고 소비하는 사람들은 경제적 인간이며 동시에 사회적 인간이다.

바이 빈은 대도시에서 유기농을 파는 자신의 사업을 놓고 ‘진정한 유기농을 추구한다면 시골로 돌아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받곤 한다며 이렇게 말한다. “자신만의 순수한 세계에 갇히지 않고 세계에 영향을 미치고 싶다면, 그 틀에서 걸어 나와 모순의 길을 가는 수밖에 없죠. 저는 우리가 모순된다는 사실을 늘 인지하고 있어요. 현실은 차선을 추구하면서 100에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이런 태도를 가지는 것이 이 세상을 움직이는 힘이니까요.” 선한 동기를 통해 돈을 번다는 말이 모순이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을 숱하게 만나는 내게 위로가 되는 말이었다. 어쩌면 이것은 모순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와 경제적 필요를 모두 해소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의 필연일지도 모른다. 경제적 활동이 사회와 지구를 망가뜨리지 않게 하는 방법은 모순을 인지하며 100에 조금씩 다가서려고 노력하는 태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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