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세월호 당일 ‘구조대 일지’ 조작해 제출

2019.12.18 06:00

도착·첫 수중 수색시간 등 오차

청와대 요청 해경 보고서 확인

[단독]세월호 당일 ‘구조대 일지’ 조작해 제출

해양경찰청이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일지를 조작한 보고서를 당시 청와대에 제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검찰은 수사 상황에 따라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를 적용할 수 있다.

17일 경향신문이 입수한 ‘<세월호> 대응 특공대/구조대 조치 보고’ 보고서를 보면, 2014년 4월16일 오전 11시20분 항목엔 ‘목포구조대 10명 현장 도착(선외기 어선, 팽목항 10:35 출발)’이라고 나와 있다.

오전 11시24분에는 ‘목포구조대 1조 2명 최초 입수, 선체 수중수색(선체상태 확인)’이라고 쓰여 있다. 2쪽짜리 문건은 같은 해 4월27일 해경이 청와대 요청에 따라 제출한 보고서다.

목포구조대(122구조대)가 실제 도착한 시간은 보고서에 기록한 시점(오전 11시20분)보다 1시간 뒤다.

감사원과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122구조대는 낮 12시15분 현장에 도착해 오후 1시쯤 선체 수중수색을 시작했다.

일부 122구조대원들은 감사원, 특조위 등에서 선체 수중수색 시각과 관련해 “122구조대가 사고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는 비난이 비등한 상황에서 (관련) 사실을 밝히기 부담스러웠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당시 감사원은 해경이 청와대에 제출한 문건에 조작된 수중수색 시각이 포함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 세월호 특별수사단은 해경의 구조·수색 실패를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특수단은 보고서 작성 과정에 개입한 해경 관계자들에게 허위공문서 작성 혐의를 적용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세월호 태스크포스(TF) 팀장인 이정일 변호사는 “보고서상 구조대 도착 시간을 앞당기는 핵심적인 이유가 징계 또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것이라면 허위공문서 작성죄가 성립할 수 있다”고 말했다.

■ 해경, 침몰한 지 10분 지나 퇴선 지시하고 “공 세워야 하는데”

특수단 녹취·TRS 등 분석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왼쪽부터)이 2014년 4월24일 전남 진도 팽목항 가족 대책본부에서 유족과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이주영 당시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장, 최상환 해양경찰청 차장(왼쪽부터)이 2014년 4월24일 전남 진도 팽목항 가족 대책본부에서 유족과 취재진에게 둘러싸여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그림이 됐어야 하는데…
선내에 사람이 거의 없네요”
판단 못하고 치적에만 급급

장관 위한 헬기·마중 지시
위험한 바다에 잠수 요구도
과잉 의전에 구조활동 차질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은 해경의 부실 구조를 두 부류로 나눠 보고 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 승객 구조 과정을 가리키는 ‘구조 원(1)’과 침몰 이후 실종자 수색 과정을 일컫는 ‘구조 투(2)’다.

구조 원은 신고 접수가 이뤄진 2014년 4월16일 오전 8시53분부터 침몰 후 바다에 표류한 사람들을 건져낸 오전 10시20~30분까지다. 그 이후 벌어진 실종자 수색 작업은 모두 구조 투로 분류된다. 17일 경향신문이 세월호 참사 당시 유선전화 녹취록, 디지털 주파수공용통신(TRS), 해경 문자상황시스템 등을 분석한 결과, 당시 해경 지휘부는 구조 원, 구조 투에서 모두 상황에 걸맞지 않은 지시를 내려 구조 작업을 지연시켰다.

특수단은 TRS 등을 분석해 구조 원·투 전반에서 해경 지휘부가 일선에 내린 ‘황당한 지시’ 내용을 파악했다. 이를 토대로 법리적 판단을 거쳐 구조 책임자에 대한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한다. 당시 해경 지휘부가 구조 상황을 얼마나 안일하게 인식했는지, 구조가 얼마만큼 소극적이고 무책임하게 이뤄졌는지도 종합적으로 평가할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는 4월16일 오전 8시52분 왼쪽으로 30도가량 기운 채 멈췄다. 단원고 2학년 최덕하군(사망)은 119에 처음 침수 신고를 했다. 신고가 접수된 지 40분이 지난 오전 9시27분 해경 본청 상황실에서 목포서 상황실로 지시가 나왔다. “혹시 배 침수 같으면 우리 그 구명벌 있잖아요. 선객들 구명동의(조끼) 입히고….” 이때는 선체가 40도가량 기울었다. 승객들에게 퇴선 지시를 내려야 할 시점이었다.

오전 10시7분에는 김수현 서해해양경찰청장이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에게 배수 작업을 지시했다. “일단 배가 70도 정도 기울어졌다고 하니까 배가 커서 어려움 있을지도 몰라도 배가 침몰 안되도록 배수 작업을 좀 실시했으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하겠어요?” 오전 9시50분부터 승객들이 주로 탑승하고 있던 3~4층이 침몰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배수는 늦은 조치였다. 검찰은 현장에 출동했던 김경일 목포해경 123정장이 퇴선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이 오전 9시50분까지라고 판단한다. 이후에는 퇴선 지시를 내린다 해도 선체가 대부분 잠겨 승객이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퇴선 지시는 엉뚱한 시점에 나왔다. 오전 10시31분 세월호는 뱃머리만 남기고 침몰했다. 그로부터 10여분이 지난 오전 10시47분 최상환 해경 본청 차장은 김수현 서해청장에게 퇴선 지시를 했다. 최 차장은 “우선은 거기로 가서 부수든가 해서 문안에 있는 사람을 갑판으로 나오도록 해서 물에 뛰어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 헬기 구조사들이 일단 내려가 문을 열어줘야 된다는 말입니다. (승객들이) 나올 수 있도록 어떤 형태로든 그게 제일 급하고 먼저 내려가 그 위험 속에서 구조한 사람은 공을 세울 수 있는 것 아니에요”라고 했다. 물에 뛰어내리는 게 불가능한 상황에서 뒤늦게 퇴선 지시를 내리면서 ‘공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한 셈이다.

오전 10시47분 이춘재 해경 본청 경비안전국장도 ‘그림’을 언급했다. 그는 세월호에 항공구조단이 아직 못 내려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김 서해청장에게 “진작 내렸어야 했는데, 그림이 됐어야 하는데. 우리가 올라가서 유도한 것을 보여줬어야 했는데”라고 했다. 그는 이 시점에 “선내에 일단 사람들이 거의 없는 것으로 봐야 하네요”라며 잘못된 판단을 내리기도 했다.

구조와 전혀 관계없는 지시도 하달됐다. 해경 본청 해상안전과 관계자는 오전 10시10분 직원에게 느닷없이 안전관리 실태를 파악해놓으라고 했다. 그는 “출항 전에 어떤 조치를 해서 보냈는지. 안전관리는 여기(본청 해상안전과)에서 하게 돼 있잖아, 그지? 안전 점검 주기하고 그런 거 다 한번 파악 좀 해놔”라고 지시했다. 추후 책임 소지를 의식해 안전 점검 실태를 파악하라는 지시였다.

과잉 의전으로 실무진 구조 작업을 방해한 정황도 나왔다. 청와대와 해경 본청은 현장 구조대가 구조에 집중해야 할 골든타임에 ‘영상’ 보고를 하라고 보챘다. 청와대 관계자는 오전 9시51분쯤 해경 본청으로 전화해 “현지 영상 있습니까. VIP 보고 때문에 그런데 영상으로 받으신 거 핸드폰으로 보여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오전 10시16분 본청 상황실은 목포서 상황실에 “비디오 콘퍼런스 안되나요? 현장 화면 못 보나요?”라고 여러 번 물었다. 목포서 상황실은 “배에 ENG 카메라도 없는 상태이고 지금 50명을 구조하느라 경황이 없어 가지고. 사진을 찍어 가지고 우리가 보내라고 했는데 연락이 안됩니다”라고 회신했다.

오전 11시46분쯤 배가 침몰되고 실종자 수색이 한창인 상황에서 본청 상황실이 구조 담당 직원에게 해양수산부 장관을 위한 헬기 동원을 지시했다. “팬더 512(헬기)를 지금 임무 중지하고 무안공항 가서 연료 수급받고 대기하라고.” 이에 직원은 “아니 구조하는 사람을 놔두고 오라 하면 되겠어요?”라고 반발했다. 본청 상황실은 오전 11시55분쯤 다시 제주청에 “팬더 512 유류 수급하러 무안공항으로 간 김에 장관 태우고 가라. 장관 헬기 편성해서 간다고 얘기하지는 말고”라는 지시를 내렸다.

구조 지휘자에게 장관 마중을 준비하라고도 했다. 오전 11시10분 본청 상황실 관계자는 목포서 상황실에 “안행부 장관이 현장에 방문할 예정이니, 목포서장은 상황 설명 준비 바란다. 안행부 장관 2시간 후 서해지방청 방문 예정”이라고 통보했다. 당시 김문홍 목포서장은 현장 지휘자였다. 해수부 장관에게 보여주려는 목적으로 조류가 강한 바닷속으로 잠수부들을 강제 입수시키자는 지시도 나왔다. 밤 12시40분 서해청 관계자는 사고 현장에 있던 목포해경 3009함에 “지금 현재 상황실에 해수부 장관 입장해 있으니 액션이라도 하기 바람” “들어가는 척이라도 하기 바람” “청장님 지시사항임” “바로 액션 부탁합니다” “지금 ENG 카메라로 보고 있는 사항임”이라며 수차례 잠수부의 입수를 요구했다. 잠수부 안전까지 위협한 지시였다.

최근 가습기살균제 사건과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세월호 침몰 6시간 만인 오후 5시24분쯤 맥박이 뛴 채 발견된 고 임경빈군을 병원으로 이송해야 하는 헬기에 김 서해청장과 김석균 해경청장이 대신 타면서 임군이 사망에 이르렀다고 발표했다. 검찰은 이를 두고 공무집행방해 등 혐의로 수사를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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