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살인법’ 만든 영국, 산재 적은 이유…“7단계 걸친 도급업체도 모두 기소”

2020.12.24 06:00

사고 발생 시 100% 기업 책임

통제권 가진 ‘맨 위’까지 추적

보건안전청이 기소권도 가져

이낙연 대표, 정의당 국회 농성장 방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정의당 농성장을 찾아 이야기를 나눈 뒤 농성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 대표, 정의당 국회 농성장 방문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23일 국회 본청 앞에서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는 정의당 농성장을 찾아 이야기를 나눈 뒤 농성장을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영국 기업과실치사법(기업살인법)은 산업재해 감소에 효과가 있었는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둘러싼 논쟁에서 이 질문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중대재해법이 모델로 삼은 법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주최해 지난 21일 유튜브 채널에 게시된 ‘영국 산재예방정책 패널 토의’에서 니컬러스 릭비 영국 보건안전청 수석감독관은 이 질문에 “노동자 사망을 기업이 매우 중대한 문제로 받아들이는 효과가 있었다”고 답했다. 그는 영국은 30여년 전부터 산재 감독기관이 기소권까지 포함한 막강한 권한을 갖고 ‘원청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지우는 시스템이 완비돼 있다고 전했다. 국내 전문가들은 이를 본떠 ‘충격 요법’인 중대재해법의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영국의 산재 사망률은 한국의 10분의 1 수준이다. 영국에선 ‘기업의 안전 의무를 아래로 떠넘길 수 없다’는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는 사실이 이날 토의에서 드러났다. 34년간 산재 조사관으로 근무해온 릭비 감독관은 “사고 발생 시 (원·하청) 모든 주체에게 100% 책임을 묻는다. 안전 책임은 위임할 수 없다”며 “7단계에 걸친 도급 네트워크 업체들을 모두 기소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자그마한 7차 하청업체부터, 이곳에 일감을 넘긴 6차 하청 등을 순서대로 타고 올라가 최종 발주처까지 모조리 법정에 세웠다는 말이다. 사고가 벌어지면 현장 하청업체 관리자만 처벌받는 한국 현실과는 다른 지점이다. 릭비 감독관은 “눈에 띄는 작은 업체만 조사하지 않고, ‘지시는 어디서 받았는가’ ‘누가 통제했는가’를 따져 최종 통제권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했다.

1974년 ‘보건안전법’ 제정으로 설립된 영국 보건안전청은 검찰처럼 기소권을 갖고 있다. 경영자도 기소할 수 있다. 기업살인법은 ‘이마저도 부족하다’고 느낀 시민들의 요구로 2007년 탄생했다. 다만 지난 10여년간 기업살인법에 근거한 처벌이 중소기업에만 몰렸고, 기소율도 높지 않았다. 토의에 참석한 빅토리아 로퍼 노섬브리아대 로스쿨 교수는 “대기업의 법적 방어 능력이 높다는 사실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로퍼 교수는 “하지만 이 법이 도입되지 않았다면 검찰이 (산재) 케이스를 기소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산업안전 증진’이라는 메시지 전달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대기업·원청에 책임을 묻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법적 관행을 쇄신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말한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 등이 발의한 중대재해법의 골간도 사고 책임을 ‘의사결정에 실질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원청·대기업)’까지 넓혀 ‘꼬리 자르기’가 빈번한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의 한계를 개선하자는 것이다. 강태선 세명대 보건안전공학과 교수는 기자와 통화하면서 “독립기관인 산재 감독관의 권한이 강력한 영국과 달리, 한국은 산재 기소에 미온적인 검찰 등 보수적인 집행기관이 문제”라며 “일종의 극약처방인 중대재해법을 도입해 안전 관련법 집행 구조를 쇄신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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