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정과 거리가 먼 방위비 협상, 집행 투명성이라도 확보해야

2021.03.11 20:43

정부가 지난 10일 공개한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 내역은 ‘공정하고 균형 잡힌’ 협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1년으로 줄어든 협정 유효기간을 5년으로 복원해 양국 갈등요인을 줄이고, 주한미군 한국인 노동자들의 고용안정을 꾀한 것은 긍정적이다. 문제는 증액 폭이 과하다는 점이다. 올해 분담금은 전년 대비 13.9% 오르고, 그간 물가상승률에 연동하던 증액률이 앞으론 국방비 증가율에 맞춰진다. 이렇게 되면 2025년 방위비 분담금은 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맹 중시를 내세우며 트럼프의 터무니없는 분담금 증액요구를 비판해온 바이든 행정부도 자국 이익을 챙기기는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가장 납득하기 어려운 것은 분담금 인상률을 국방비 인상률에 맞추기로 한 점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방예산을 매년 평균 7%대로 늘린 것은 주한미군 의존도를 낮춘다는 취지다. 그렇다면 국방비가 늘수록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은 줄어드는 것이 맞다. 그런데 이를 연동하기로 했으니 정부가 그간 ‘역대급’으로 국방비를 늘려온 명분이 무색해진다. 정부 당국자들은 ‘국력에 걸맞은 분담이 중요하다’고 했다. 요컨대 한국의 경제력이 커진 만큼 분담금을 그에 맞춰 늘릴 필요가 있었다는 건데, 그런 이유라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에 연동하는 것이 차라리 합리적이다. 동맹 강화라는 명분은 인정할 수 있지만 앞뒤가 맞지 않은 논리로 분담금을 증액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게다가 한국이 지급한 분담금 중 집행되지 않고 은행에 쌓아둔 돈이 9700억원에 달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건가. 바이든 행정부가 동맹 재활성화를 누차 강조하고 있지만, 이런 석연치 않은 협상으론 동맹관계를 건강하게 만들기 어렵다.

방위비 분담금의 대폭 증액이 불가피하다면 본래 용도에 맞게 집행되는지를 한국 정부가 검증할 수 있는 체계가 구축돼야 한다. 국방부는 부인하고 있지만 미국 정부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강화방침에 따라 한반도 밖에서 이뤄지는 주한미군의 작전 비용이 분담금에서 지출되는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이 미군의 대중국 작전 비용을 보태주는 격이 돼서는 곤란하다. 방위비 분담금 불용액을 다른 곳에 전용하는 일도 없도록 해야 한다. 한·미 양국이 방위비 분담금 집행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협의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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