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삶

과학분야는 왜 10년 이상 묵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인가

2013.05.31 20:11 입력 2013.05.31 23:36 수정

이슈 못 만들고 독자층도 얇아

‘카이스트 명강’ 등 그나마 눈길

통상 베스트셀러는 신간 서적 중에 나온다. 그러나 과학 분야만큼은 구간이 대세다. 왜 그럴까.

지난해 교보문고 과학 분야 베스트셀러 순위를 보면 10위권에 있는 책들 중 상당수가 출간 10년이 넘은 것들이다. 순위를 5위 안으로 좁히면 현상은 더욱 두드러진다. 1위에 오른 리처드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는 1976년작으로, 한국에서는 1995년 동아출판사, 2001년 을유문화사에서 각각 번역돼 나왔다. 3위 <과학 콘서트>는 2001년, 5위 <거의 모든 것의 역사>는 2003년 처음 출간됐다. 4위 <코스모스>는 1981년 학원사에서 처음 번역·출간됐으며 2005년 사이언스북스로 옮겨 다시 나오고 있다. 2012년 출간된 2위 <다윈 지능>을 제외하면 5위 안 책들 중 4권이 10년 이상 된 구간이다. 인문 분야 베스트셀러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 <책은 도끼다> <피로사회> 등 출간 1~2년 된 신간으로 채워지는 것과 대비된다.

리처드 도킨스·빌 브라이슨·정재승·칼 세이건(왼쪽부터)

리처드 도킨스·빌 브라이슨·정재승·칼 세이건(왼쪽부터)

출판계에서는 과학책 시장의 협소함을 그 이유로 우선 꼽는다. 노의성 사이언스북스 부장은 “지금 과학책 시장에는 자발적 독자가 드물다”고 말했다. 독자 대부분이 각 학교나 도서관의 추천 도서 리스트에 따라 과학책을 구매하기 때문에 이 리스트에 올라있는 도킨스, 칼 세이건, 정재승 등 검증된 필자들의 유명 서적으로 구매가 몰린다는 것이다. 일단 추천 도서 리스트에 올라가면 베스트셀러가 되고, 베스트셀러가 된 뒤에는 순위권 바깥으로 떨어지지 않는 현상이 수년간 지속된다. 김형보 어크로스 대표는 “2~3년마다 판을 바꿀 만한 새로운 글쓰기 양식이 선보이는 인문 분야와 달리, 과학 분야에서는 지난 10년간 대중을 흔들 만한 타이틀이 새로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과학 분야 1위를 해도 종합 분야 10위권에 들지 못할 정도로 판매 부수가 적으니, 과학과 인문의 경계선에 있을 경우 분야를 인문으로 정해서 내는 경우도 많다. 최근 각광받기 시작한 뇌과학 관련 서적이 대표적 사례다.

고대 그리스 철학을 지금도 유용하게 공부하는 인문 분야와 달리, 과학의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업데이트된다. 지난해까지 옳았던 지식이 올해 틀린 것으로 판명나기 일쑤다. <이기적 유전자> <코스모스>는 출판계 안팎에서 인정받을 정도로 잘 쓰여진 고전 과학책이지만, 해외에서 출간된 지 30년이나 지난 책이다. 이러한 고전을 제치고 베스트셀러가 될 만한 신간이 없다는 사실은 최신 과학 지식과 다양한 관점을 퍼트리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 김동광 고려대 과학기술학연구소 연구교수는 “도킨스의 책이 인기 있다보니 도킨스가 속한 사회생물학 분야의 책이 대거 출간되고 판매된다”며 “균형있고 다양한 관점들이 소개되고 독자층이 형성돼야 하는데 그런 측면이 약하다”고 말했다.

[책과 삶]과학분야는 왜 10년 이상 묵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인가

좋은 신간 과학책들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스티븐 핑커, 레너드 서스킨드, 스티븐 제이 굴드 등은 도킨스나 세이건에 뒤지지 않는 일급 필자들이고, 그들의 책들도 이미 번역·출간된 상태다. 그러나 독서 시장에서 이들의 글에 대한 독자층이 엷다는 점이 문제다. 게다가 추천 도서 목록에 의지해서나마 과학책을 구입하던 학생층 인구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과학책 시장의 위기는 더욱 커 보인다.

과학책 시장을 살리기 위해서는 출판사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역시 문제는 두꺼운 독자층을 만들어나가는 일이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다양한 필자를 발굴해 독자의 구미를 끌 수 있는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갑수 궁리 대표는 “아직까지는 과학책을 교양, 지식으로 삼기 위해 읽기보다는 학습의 보조 도구로 읽는 경향이 있다”며 “세계문학전집이 인기를 끌듯, 과학의 지형도를 그릴 수 있는 과학사상 시리즈를 만들어 다양한 독자층을 만들어봄직하다”고 말했다. 사이언스북스는 카이스트와 손잡고 ‘카이스트 명강’ 시리즈를 만들고 있다. 실력에 비해 대중에게 덜 알려진 카이스트 교수진이 일반 대중에게 강연하고, 이를 책으로 엮어내는 형식이다. 그 첫 책은 복잡계 네트워크, 생명, 양자 물리학의 세계를 ‘정보’라는 키워드로 살핀 <구글 신은 모든 것을 알고 있다>였다. 이미 진행된 뇌과학 관련 강의 내용은 가을쯤 책으로 나올 예정이다.

김동광 연구교수는 각 매체가 선보이는 서평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제대로 된 과학책 서평을 쓸 만한 필자를 발굴해, 책의 의미를 명확히 알릴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분량의 서평란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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