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곤 “길 사장 ‘대통령 소식’ 뉴스 예고 순번까지 바꿨다”

2014.05.18 22:04 입력 2014.05.18 22:57 수정
이범준 기자

KBS 기협, 청와대 지시 따른 ‘보도 외압 일지’ 추가 폭로

“사내 도와줄 사람 없어”… 양 노조, 사장과의 대화 거부

KBS 기자협회가 18일 청와대가 9시 뉴스를 어떻게 통제했는지를 보여주는 ‘보도 외압 일지’를 공개했다. 해당 일지는 지난 16일 작심하고 청와대와 길환영 KBS 사장의 ‘방송 개입’ 실태를 폭로한 김시곤 전 보도국장이 직접 작성한 것이다. 청와대와 길 사장이 점점 더 ‘사면초가’의 위기에 몰리고 있는 셈이다.

김 전 국장은 5월에만 3차례 길 사장의 관여가 있었다고 밝혔다. 9일 사퇴했으므로 8일 동안 사흘이나 된다. 먼저, 지난 3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의 대통령 사과 요구 기사가 있었지만 9시 주요 뉴스에 처리하지 못해 자막뉴스로 처리했다. 하지만 길 사장이 전화해 빼라고 했다.

지난 5일 오후 2시엔 길 사장이 보도본부장, 보도국장, 편집주간, 취재주간 회의를 소집했다. 해경을 비판하지 말라고 지시해 ‘이슈&뉴스’는 해경 관련 분량이 대부분 빠진 채 방송됐다.

6일에는 뉴스 예고에서 대통령 소식을 뺐다. 정치 아이템이 나오면 시청률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 사장이 예고를 보고 전화를 했다. 대통령 아이템이 몇 번째인지 묻고는 세 번째이던 것을 두 번째로 올리게 했다. 결국 뉴스 시작 15분 전에 순서를 바꿨다.

이런 일이 잦다보니 8일에는 사장 지시가 없었는데도 ‘해경’이란 단어를 지운 가짜 큐시트(보도 진행순서)를 사장실로 보냈고, 실제 뉴스에서는 원안대로 해경 비판 기사를 넣었다.

<b>언론노조 KBS본부, 길환영 사장 사퇴 요구</b>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17일 청와대 인근인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 보도와 인사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길환영 KBS 사장의 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언론노조 KBS본부, 길환영 사장 사퇴 요구 언론노조 KBS본부 조합원들이 지난 17일 청와대 인근인 서울 청운효자동 주민센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KBS 보도와 인사에 대한 청와대의 개입과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의 사과와 길환영 KBS 사장의 사퇴 등을 요구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언론학자들은 “방송법 4조는 방송편성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있어 KBS 사장은 업무를 총괄하고 인사권을 행사할 뿐 보도에는 개입하지 못한다”면서 “길 사장의 방송보도 관여는 불법이며, 청와대가 배후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KBS 기자협회는 사과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선배들의 전횡을 막지 못해 죄송하다고 했다. 기자협회는 “KBS 뉴스를 망친 가장 큰 책임은 저희 KBS 기자들에게 있다”며 “길 사장의 전횡을 막지 못했고, 보도본부 수뇌부의 굴종도 지켜만 봤다. 사장이라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유로 애써 눈감았다”고 밝혔다.

KBS 안팎에서는 길 사장이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KBS 관계자는 “현재 사내에는 길 사장을 도와줄 사람이 없다”며 “이제는 청와대로서도 안고 가기가 힘들어진 것 아니냐”고 했다.

길 사장은 사퇴를 거부하고 버텼던 2012년 MBC 김재철 사장의 경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게 중론이다. 김 전 사장은 부장들 가운데 자기편이 다소 있었지만, 길 사장은 사표를 제출한 보도본부장을 비롯해 부장단 전원에게 사퇴 요구를 받고 있다.

19일 오전으로 계획된 사원과의 대화도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 더구나 19일 출근부터 불투명하다. 두 노조는 오전 7시30분부터 길 사장이 출근하지 못하게 막기로 했다.

KBS 관계자는 “사장과의 대화에 갈 사람이 없다. 이날 오후 기자회견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일부에서는 길 사장의 기자회견이 대통령 담화 직후인 점을 들어 사퇴를 관측하기도 한다.

길 사장으로서는 사퇴하지 않을 경우 뉴스가 중단되는 것도 부담거리다. KBS 기자협회는 길 사장이 사퇴하지 않을 경우 오후 6시부터 제작 거부에 들어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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