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치 임금 등 1억씩 돌려줘야… KTX 여승무원들 “막막하네요”

2015.03.03 06:00 입력 2015.03.03 23:47 수정

대법원 패소 판결로 반환… “34명 빚더미에”

“졌어. 어떡해!”

KTX 승무원이었던 김민정씨(34)는 지난달 26일 동료들에게 대법원의 비보를 전해들었다. 집에서 세살배기 아들을 돌보던 그는 다리 힘이 쭉 빠졌다. 대법원은 KTX 여승무원이 코레일의 노동자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위탁업체인 철도유통이 아닌 코레일 노동자라고 판단했던 1·2심을 받아들이지 않고 사건을 고등법원으로 돌려보낸 것이다.

김씨는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따져봤지만, 이렇게 완전히 뒤집힐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며 “마음의 준비가 안돼 있어 좌절감이 더 컸다”고 말했다. 2004년 대학 졸업 후 KTX 여승무원 공채 1기로 홍익회에 입사해 ‘지상의 스튜어디스’라고 불리며 일했던 시절부터 단식농성·파업을 하면서 법정 싸움을 했던 긴 시간이 주마등처럼 머리를 스쳐갔다.

대법원 판결은 10년 가까이 간접고용 문제를 제기하며 싸워온 KTX 여승무원들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법정 공방의 대가가 눈덩이처럼 커져 짓누르고 있는 것이다.

4년치 임금 등 1억씩 돌려줘야… KTX 여승무원들 “막막하네요”

김씨와 같이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 참여한 34명은 대법원 파기환송 판결에 따라 감당해야 할 비용이 1인당 1억원에 육박한다. 코레일 노동자라는 것을 전제로 받았던 임금을 물어내야 하고, 패소에 따른 소송 비용도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다.

법원은 2008년 12월 34명이 제기한 근로자 지위보전 및 임금지급 가처분 신청을 일부 받아들이고 “본안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매달 180만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사측이 2012년 12월 가처분 소송을 거쳐 임금 지급을 중단할 때까지 4년간 받았던 임금은 대법 패소로 한꺼번에 빚으로 바뀌었다.

김씨는 “소송에 참여한 동료들 중 한꺼번에 이 돈을 마련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면서 “결혼해서 아이를 키우며 경제생활을 하지 않거나 임시직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이 돈이 더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고등법원에서 파기환송심이 확정되면 34명 모두 ‘신용불량자’ 신세가 될 상황이다.

김씨를 포함한 34명은 지난 1일 서울 용산구 철도회관에 모여 총회를 열고 향후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그는 “대법원 판결에 굴복하고 가만히 앉아 있을 수만은 없다는 데 뜻을 모았다”며 “아이를 키우거나 회사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 예전처럼 싸울 수는 없지만 최대한 노력을 해보기로 했다”고 전했다. 김씨는 “판결 기사 댓글을 보니 ‘정규직 시켜달라고 했다가 안됐다’는 정도로만 알고 계신 분들이 많았다”며 대법 판결이 KTX 여승무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KTX 고객의 안전 문제일 수 있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대법원은 KTX 안전을 담당하는 직원은 사실상 정규직 열차팀장 한 명이라고 규정했다. 열차팀장과 함께 KTX 여승무원도 탑승하는데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안전문제를 한 사람에게 맡긴다는 이상한 결론이 난 것”이라며 “외주화를 하면 안전 업무가 제대로 될 수 없다는 점을 고객들이 알아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7년 소송 끝에 1억원씩 빚을 떠안을 위기에 처한 KTX 여승무원들 소식이 전해지면서 ‘노동 문제의 사법화’ 문제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이남신 비정규노동센터 소장은 “법원이 노동사건을 장기화하는 것을 악용해 불리한 입장에 있던 사용자도 무조건 대법원까지 사건을 장기간 끌고 있다”며 “노사정 당사자가 사라진 자리에 사법부가 들어와 최종 결정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 경총, 양대 노총은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며 “간접고용 등 비정규직 노사 문제를 정부가 해결하지 못하고 사용자도 비타협적으로 나오면서 비정규직 희생만 극대화되는 상황이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설]7년 소송 끝에 빚만 떠안은 KTX 승무원들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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