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는 경리단길에 ‘프랜차이즈’ 못 들어서는 까닭

2015.01.25 22:10 입력 2015.01.25 22:14 수정

이태원서 부상하는 상권 매장 좁고 권리금 급등

“편익 불투명” 입점 포기… ‘사람 느는 곳 자본’ 역행

주말마다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는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은 프랜차이즈 청정구역이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 자본이 쏠린다”는 평범한 경제법칙을 거스르는 곳이다. 인근 주민들은 “좁은 상점 규모와 높은 권리금이 낳은 역설”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리단길은 서울 용산구 이태원2동에 있는 ‘육군중앙경리단(현 국군재정관리단)’에서 따온 말이다. 좁은 길이 경리단~대성교회~새마을금고를 지나 언덕 꼭대기 필리핀대사관까지 이어진다. 지하철 6호선 녹사평역 2번 출구 건너편 대로변도 경리단길로 통칭한다.

주말마다 인파가 몰리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 왕복 2차선 도로를 25일 차량이 줄지어 오가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주말마다 인파가 몰리는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 경리단길 왕복 2차선 도로를 25일 차량이 줄지어 오가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경리단길은 입지조건이 좋다. 버스나 지하철로 서울 한복판인 명동·광화문까지 5~10분 이내에 갈 수 있다. 과거에는 용산 미군부대 영향으로 내국인의 발길이 뜸하고 ‘달동네’ 이미지가 강해 인적이 드물었지만 3~4년 전부터 이태원 해밀톤호텔 주변 상권에서 밀려난 소규모 상점이 삼삼오오 모여들면서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현란한 간판이 복잡하게 늘어선 중심 상권과 불과 1.5㎞ 떨어져있지만 느낌은 아주 다르다. 해밀톤호텔 부근이 ‘번화가’라면 경리단길은 ‘교외’에 가깝다. 이런 묘한 매력이 언론의 조명을 받으면서 서울을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경리단길이 입소문을 타자 ‘규모의 경제’를 앞세운 프랜차이즈 업체들도 앞다퉈 입점을 시도했다. 하지만 좁은 면적 때문에 입점을 포기하는 사례가 속출했다.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오려면 최소 66㎡(약 20평) 이상의 공간이 필요한데, 이곳 상가의 면적은 대부분 33㎡(약 10평) 이하다. 곱절로 오른 권리금도 입점을 꺼리는 요인이다. 유동인구가 늘면서 작은 가게들조차 억대 권리금을 예사로 부른다. 투자 대비 편익이 불분명해 숱한 업체들이 실사 단계에서 발길을 돌렸다. 경리단길 초입에 있는 뚜레주르, 파리바게뜨 등 제과점 정도만 프랜차이즈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중심 상권 임대료가 치솟자 밀려온 상인들이 최초 정착자라는 점에서 경리단길은 신사동 ‘가로수길’에서 파생된 ‘세로수길’과 원형적으로 닮아 있다. 하지만 “프랜차이즈 매장이 거의 없다”는 점이 세로수길과 다르다. 경리단길을 자주 찾는 김모씨(27)는 25일 “여기는 다른 번화가에서 느낄 수 없는 분위기가 있다”며 “특히 개성 있는 가게들이 많아서 좋다”고 말했다.

경리단길의 흥행에 힘입어 이곳 소규모 상점들이 중소 프랜차이즈로 다른 지역에 출점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2009년 문을 연 ‘스탠딩커피’는 서울 마포, 서대문, 영등포 등지에 분점을 냈다. 추러스를 파는 ‘스트릿츄러스’와 수제 맥주집 ‘더부스’, 아이스크림 전문점 ‘스윗비’도 입소문을 타고 점포가 확산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젊은 창업자들이 좁은 매장을 활용해 길거리 음식을 파는 이색가게라는 것이다.

경리단길이 앞으로도 프랜차이즈 청정구역을 유지할지는 미지수다. 최근 노후주택이 매물로 많이 나오면서 건물 여러 채를 합쳐 새 건물을 짓는 경우가 늘고 있다. 장사가 잘되는 곳을 노리는 부동산 고수들이 건물을 사들이는 행렬도 줄을 잇고 있다. 강남 ‘땅부자’들이 건물 소유자들에게 직접 등기우편을 보내 “집을 매물로 내놓을 생각이 있느냐”고 묻기도 한다. 지역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이런 추세가 지속되면 가까운 미래에는 프랜차이즈 유입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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