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전탑 돈봉투 사건’ 왜… 전력수급 정책 실패 책임 다 떠안은 한전의 ‘정부 구하기’

2014.09.19 21:58 입력 2014.09.19 22:02 수정

대규모 발전소 중심, 공급 확대 일변도로 갈등만 양산

발전소·송전선로 지중화 비용 부담에 알고도 밀어붙여

송전탑 건설 지역에서 불거진 돈봉투 살포와 주민 매수 의혹의 책임은 결국 대규모 발전소 중심의 전력수급 정책을 추진한 정부에 있다. 공급 확대 일변도의 전력수급 정책에 따라 발전소 건설이 늘어나고, 이를 실어나를 송·변전 시설 확대가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삶의 질이나 재산권에 대한 주민 인식은 높아졌지만 ‘밀어붙이기식’ 국책사업 추진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한전이라는 공기업이 정부 ‘구사대’ 노릇을 하면서 갈등만 커졌다는 비판이 나온다.

■ 전력 생산-소비 지역이 다른 구조

주변국과 전력 수출입이 불가능한 국내에서는 대규모 발전단지 대부분이 한반도 남부 지역에 위치해 있다. 반면 전력 다소 소비 지역은 서울과 수도권으로 전체 사용량의 40%를 차지한다.

한전은 2011년 기준 국내 송·배전 전력손실률이 세계 최저 수준인 3.69%라고 자부한다. 1990년대 후반부터는 765㎸ 대전력 송전망을 단계적으로 구축하고 있다.

발전소에서 만들어진 전기는 2만V(볼트) 내외 고압이다. 먼 곳까지 보내려면 변압기를 사용해 154㎸, 345㎸, 765㎸로 전압을 올려야 한다. 송전선로 수송 능력을 높이고 전력 손실을 줄이기 위해서다. 이 중 765㎸ 송전선로는 기술적으로 지중화하는 게 불가능하다. 345㎸로 바꿀 수 있도록 변전소를 건설하면 되지만 비용이 많이 든다.

지난해 말 기준 국내 송전선로는 765㎸ 835㎞ 등 전체 3만2249㎞이고 철탑은 4만1545개였다. 6차 장기송·배전설비계획에 따라 향후 송전선은 6000㎞ 늘어난 3만8600㎞가 될 것으로 보인다.

‘송전탑 돈봉투 사건’ 왜… 전력수급 정책 실패 책임 다 떠안은 한전의 ‘정부 구하기’

■ ‘전력난’ 숨돌리자 ‘송전난’

정부는 2011년 9·15 순환단전 이후 지난해까지 여름철과 겨울철만 되면 절전을 호소했다. 전력수급 정책의 실패였다.

하지만 부족한 전력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발전소가 완공되자, 송전선로 문제가 불거졌다. 국내 발전용량은 2001년 5085만㎾에서 지난해 9233만㎾로 2배 가까이 늘었지만 송전선로 길이는 2만7355㎞에서 3만2248㎞로 18% 늘어나는 데 그쳤다.

송유나 사회공공연구원 정책위원은 “정부가 전력이 모자랄 때는 국민을 압박하더니 이제는 송전탑 설치 지역 주민을 탓하면서 한전을 앞세워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대형 발전소 중심의 전력수급 정책을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으면 ‘무리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현재 공공기관 평가시스템 때문에 돈봉투 파문이 벌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좋은 평가를 받으려면 계획된 시설들을 기한 내 마무리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전국공공산업노동조합연맹 관계자는 “매년 경영평가를 통해 기관장 해임까지 될 수 있는 현재의 시스템에서 한전 전 직원이 송전탑 공사 지연과 이에 따른 비용 증가에 대해 압박을 느꼈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지역 이기주의로 매도

송전선로와 송전탑 공사 지연은 ‘지역 이기주의’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하지만 수도권·대도시 주민들이 전력 공급 확대를 요구하면서 다른 지역에 변전소나 송전선로를 지으라는 게 오히려 모순이다.

송전탑 갈등이 일어나는 지역은 대부분 전력 사용량은 적으면서도 건강·재산상 피해 등 부작용은 떠안고 있다. 한전 자료를 보면 올 8월 현재 송전선로 지중화율이 서울 지역은 88.3%이다. 반면 경북, 경남, 충남 등 대규모 발전단지가 있는 곳의 지중화율은 각각 0.9%, 2.7%, 1.2%에 불과하다.

한전은 지중화 송전선로 건설 비용이 지상(가공) 송전선로보다 10배 더 높지만 서울 등 대도시는 철탑을 세울 곳이 마땅치 않은 데다가 인구도 많아서 지중화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즉 밀양 같은 곳이 대도시였다면 ‘송전탑 공사 강행’ 대신 ‘지중화’가 추진됐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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