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장인열전]촬영감독 이거종

2001.06.08 18:58

-육해공 누비는 한국 ‘다큐의 대부’-

지나고 보니 죽을 고비도 참 많이 넘겼다. 그러나 힘든 작업이었기에 오늘은 행복하다. 촬영감독 이거종(李巨鍾·49·KBS 영상제작국 부장). 방송 사상 최초 해발 7,300m 무산소 등반 촬영(히말라야 마나슬루봉), 국내 최초 에어쇼 동승 촬영. 지금은 훈장처럼 남아 있는 기록이지만 그는 “부족한 걸 메우려다 보니 발품을 좀 더 팔게 됐다”고 말했다. 최초를 향한 도전, 죽음과 맞닥뜨린 순간에도 카메라부터 챙기는 프로정신, 그것은 그가 몸으로 보여준 우리 시대의 장인정신이다.

“다큐멘터리 촬영은 예정된 콘티 없이 순간 순간 상황을 포착하는 순발력을 요구하지요. 항상 불만족으로 가슴속이 꽉 차 있어야 합니다. 지치지 않고 불만족을 해소하듯 부지런히 뛰어야 좋은 그림을 잡을 수 있지요”

자신을 채찍질하듯 자원한 게 오지를 찾아다니는 다큐멘터리를 자주 찍게 됐다. 1978년 KBS에 입사, 방송 촬영 경력 20년. 그의 표현을 그대로 빌리자면 “재수 없었더라면 여러 번 죽었을” 정도로 사고도 많이 당했다. 그것은 카메라와 함께 한 숙명이었다.

“두 발을 땅에 딛고 잡는 앵글을 피하고 싶었어요.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보고 싶었지요”

대수롭지 않게 말하지만 그는 경비행기 추락사고를 2번이나 겪기도 했다. 10년 전 용인 에버랜드 공개방송 때 저수지 상공에서 촬영중 추락사고를 당했다. 당시 그는 프로펠러를 바꿔달고 다시 촬영을 감행했다. 7년전 주남저수지 철새 촬영 때 또 한번 위기를 겪었다.

“추락하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다치면 안된다는 생각에 가슴에 꼭 안고 있었는데 땅에 닿는 순간 카메라가 누가 채 가듯이 휙 날아가 버렸어요. 겨우 몸을 추슬러 카메라를 주워보니 모래만 좀 끼였을 뿐 하나도 부서지지 않았습니다”

‘카메라도 생명체’라고 하는 그는 86년 ‘중앙아시아 대탐사’ 촬영으로 국내 첫 다큐멘터리 탐사 프로그램시대를 열었다. 당시 파키스탄과 중국 국경에서 그가 탄 차량이 버스와 정면충돌하는 사고를 당하기도 했다. 당시 정신이 들었을 때 그가 한 첫말은 “예비 카메라 갖고 찍어”였다. 부상한 몸으로 그는 두달 넘게 파키스탄과 인도, 네팔의 소수민족 삶의 현장을 촬영했다. 귀국후 X레이를 찍어보고서야 어깨뼈 부근에 2곳이나 금이 간 것을 알았다.

90년 ‘한국의 자생약초’로 ‘백상대상’ 대상을, 91년 우루과이 라운드에 대비한 기획특집 ‘농업이 가는 길’과 96년 ‘세계의 명산’으로 한국방송대상 대상과 촬영상을 받은 것은 말 그대로 ‘상처뿐인 영광’이었다. 92년 ‘독도 365일’ 제작땐 수중촬영을 위해 수심 30m를 하루 11번 잠수했을 정도로 오기와 집념은 여전했다. 94년 설악산 상공에서 펼친 에어쇼 촬영때 방송 사상 처음으로 동승촬영을 한 것도 그였다. 전문 등산가도 아니면서 95년 엄홍길의 마나슬루 등정길 촬영을 위해 7,300m까지 먼저 올라가 등정과정을 찍기도 했다. 크레바스를 만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는 눈물을 쏟았으면서도 안나푸르나, K2, 칸첸중가 등 세계의 고산 4곳을 촬영했다.

이렇듯 ‘혼을 담은 그의 렌즈’는 항상 오지를 향해 있었다. 한발 비켜나서 보면 무모하기까지 한 그의 집념은 한국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역사를 풍성하게 한 ‘자양분’이었다.

〈이동형기자 s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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