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성 살린 광화문 광장”-“세계 최대의 중앙 분리대”

2009.08.25 17:58 입력 2009.08.26 02:22 수정
정리 | 심혜리·임아영기자

차도로 둘러싸인 ‘광화문 광장’ 논란

토론자
이인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 본부장 | 승효상 건축연구소 이로재대표

지난 1일 개장한 광화문광장은 우리 사회에 ‘광장’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차도로 뒤덮인 광화문을 ‘광장’으로 환원시킨 공원 조성 의도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반기는 입장이다. 그러나 광장이 구현된 방식을 둘러싸고서는 수많은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광화문광장은 벌써 ‘세계 최대의 중앙분리대’ ‘고립된 섬’ ‘무늬만 광장’ 등 많은 별칭을 달게 됐다. 광장의 구조적 한계 때문에 시민들이 자유롭게 휴식하고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적다는 비판에 직면한 서울시는 “서울광장과 달리 광화문광장은 조선시대 육조거리를 복원하는 등 역사적 상징성에 더 중점을 두었다”고 해명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유홍준 문화재청장에게 광화문광장 조성을 건의했던 건축사무소 ‘이로재’의 승효상 대표와 광화문광장 조성을 담당한 이인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이 지난 19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나 광화문광장의 쟁점들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

이인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왼쪽)과 승효상 건축연구소 이로재 대표가 지난 19일 경향신문사에서 광화문광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민규기자

이인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왼쪽)과 승효상 건축연구소 이로재 대표가 지난 19일 경향신문사에서 광화문광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민규기자

승효상 건축사무소 ‘이로재’ 대표(승효상)=도시에서 광장이라는 공간은 공적영역을 수행하는 기능, 즉 기본적으로 사람을 모을 수 있는 기능과 장소성의 가치를 되살리는 기능이 있습니다. 광장은 이 두 가지를 달성해야 합니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은 이 두가지에 의구심을 가지게 합니다. 광장 만드는 걸 반대할 사람은 없지만 잘못 구현됐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인근 서울시 도시기반시설본부장(이인근)=도시의 공간은 시대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집니다. 광화문에 국한한다면 1967년 광화문 지하보도가 만들어졌습니다. 서울에 자동차가 3만~4만대 있을 때였습니다. 자동차 위주로 모든 공간을 쓰는 걸 상정해서, 땅 위에는 차도를 만들고 사람은 땅속으로 걸어다니라고 광화문 지하보도를 만든 것입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서울이 안정기에 접어들면서 도시 공간이 차량보다는 사람 위주로 바뀌었습니다. 사람 위주의 공간을 반영한 것이 청계천 복원 사업이었습니다. 광화문광장도 그래서 태어났다고 생각합니다. 2005년이 돼서야 광화문에 사람이 건너는 길을 만들었습니다. 지하보도에서 올라오는 데 38년 걸린 것입니다. 도시 공간은 이처럼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하면서 꾸준히 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승효상=건축계에선 1972년부터 광화문에 광장을 만들자는 제안이 나온 후 끊임없이 논의가 됐습니다. 그런데 서울시가 만든 광화문광장엔 그런 고민의 흔적을 찾기 힘듭니다. 도시의 정체성이 녹아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역사적 진정성도 상실했다고 판단합니다. 안타까운 게 오세훈 시장의 당선자 시절에, ‘세종문화회관 쪽으로 광화문광장을 붙여서 만드는 것이 역사성으로 볼 때도 적절하다’고 의견을 제시했지만 오 시장은 여론조사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설문이 ‘중앙광장’이냐 ‘편측광장’이냐는 것이었는데 도시구조에 비전문가일 수밖에 없는 시민들에게는 당연히 ‘중앙’이 바른 것으로 판단됐습니다.

이인근=전문적 분석도 중요하지만 시민참여와 합의 과정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충분한 정보를 미리 알려주고 의견을 수렴하는 게 중요한 것 아닙니까. 시민들이 반대한다면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시행하기에는 적절치 않은 것이라고 봅니다.

승효상=저는 서울시가 충분한 (역사적) 지식을 가지지 못한 상태에서 중앙을 찬성한다는 여론조사를 근거로 중앙에 광장을 조성하는 모습을 보고 다분히 정치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세계적으로 광장 사면이 차로로 둘러싸인 광장은 거의 없습니다. 이건 도로의 중앙분리대지요. 고립된 섬을 어떻게 시민들의 일상화된 삶이 묻어나는 광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광장은 익명의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자유로이 공동체성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 돼야 하는데 여기에는 어떤 목적이 있지 않으면 접근하기 쉽지 않습니다. 게다가 광화문광장에 사람들을 모으기 위해 분수·플라워카펫 등 각종 조형물을 장식했는데 이는 더더욱 전시성에 치우친 것에 불과합니다.

이인근=광화문에 건너는 길 하나를 만드는 데 38년 걸리고 지난 정부를 설득하는 데에도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 시민들이 지금의 광장을 좋아하고 잘 가꾸어 준다면 언젠가는 광화문 일대 전부가 광장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제 그 기초와 기반이 놓여진 것입니다. 플라워카펫은 개장 이벤트 성격입니다. 진짜 광화문역에서 나와 올라오는 중간 정도에서 북악산이 보입니다. 거기서 보이는 서울 풍광을 보면, 이런 공간이 서울에 생긴 것에 많은 의미가 있다는 것을 시민들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승효상=광장 만든 것 자체를 반대하는 게 아닙니다. 잘못 만든 게 문제입니다. 옛날 육조거리의 위치를 정확히 찾으면 세종문화회관 쪽에 붙게 되는데 이러면 서울의 정확한 옛 축을 볼 수 있습니다. 훨씬 더 역사적 정통성과 진정성을 갖춘 광장을 만들 수 있었는데 놓쳤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또 세종문화회관 쪽에 붙여 광장을 조성했으면 시민들의 접근이 얼마나 쉬웠겠습니까.

이인근=그 문제는 반대쪽 동선이 끊어지는 또 다른 문제를 안고 있습니다.

승효상=그렇다고 다 끊어지게 만드는 게 옳을까요. 한쪽(세종문화회관)을 붙여놓고, 반대편 미국대사관·문화부 등의 마당을 이용해 하부 지하 연결광장을 만들면 모두 접근이 용이하게 됩니다.

이인근=광장은 분명 그것을 이용하는 시민들의 생각이 반영되면서 앞으로 변모될 것이라고 봅니다. 광화문광장에 대해서도 다양한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데, 그러한 여론이 반영되면서 다시 한 번 새로운 광장으로 진화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승효상=그러나 지금 만들어진 광화문 광장이 일제잔재의 왜곡된 축을 따랐다는 것은 앞으로도 고쳐지기 힘들 것입니다.

이인근=일제 잔재를 없애기 위해 서울시는 세종로 한복판에 있던 은행나무들을 제거해 이식했습니다. 광화문 은행나무들은 일본 사람이 총독부와 일본 신사를 잇기 위해 심은 일제의 축입니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하면서 우리의 전통적 축을 훼손한 일본 식민지 시대의 축을 없앤 겁니다.

승효상=그런데 일제가 심은 은행나무들을 다 뽑고 바로 그 축을 따라 그 위에 만든 게 광화문광장 아닙니까. 광화문광장은 삼각산에서 관악산을 잇는 서울의 축과 강제적으로 5.6도를 틀어 세운 일제 축에 맞춰져 만들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지금의 민주주의 시대에 봉건시대적 국가 상징축을 이야기하는 것이 시대착오적인 것은 아닐런지요. 광장은 시민들의 일상적인 공간이 돼야 합니다.

이인근=기본적으로 서울광장 등 다른 광장과 달리 광화문광장은 역사성 회복을 가장 고민했던 것입니다. 광화문은 조선시대부터 백성과 군주가 함께 했던 의미있는 공간으로 이곳에 국가를 상징하는 광장이 만들어졌다는 것은 곧 우리의 역사를 복원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광장에 역사적 스토리를 담는다는 것에 주력했습니다.

승효상=광장은 그리스와 로마시대 ‘아고라’와 ‘포룸’에서 나왔습니다. 이 둘레엔 아케이드로 형성돼 있는데 시민들은 그들의 일상적 삶을 여기서 보냈습니다. 가운데는 열린 공간이고 그 둘레는 그늘인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늘이 좋으면 아케이드의 그늘에서 놀고 볕이 좋으면 가운데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 자유가 광장을 찾는 이들에게 있었습니다. 광화문광장엔 그럴 수 있는 자유가 제약되고 있습니다.

이인근=광화문광장에는 볼거리들을 관람하며 쉴 수 있도록 배려한 공간들이 있습니다. 광화문 정거장과 연결부에 있는 해치마당과 세종이야기가 있습니다. 광화문광장에 그늘과 휴식공간 등이 전혀 없는 게 아닙니다. 그늘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따라 파라솔 등을 배치했습니다. 사람들의 욕구를 반영해 광화문광장은 진화할 것입니다.

승효상=네, 동의합니다. 그런데 광화문광장은 차도로 막혀 있어 변하기 힘든 조건입니다. 청계천 주변은 2차선이기 때문에 심적 부담감이 적지만 광화문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5·6차선의 도로는 심리적 거리감이 있습니다. 쉽게 건드리기 힘든 구조입니다.

이인근=조금 안정이 되면 주말에 차 없는 거리도 구상 중입니다.

승효상=일시적으로 모든 차도를 폐쇄하는 이벤트는 어디서든 할 수 있습니다. 차도 다니면서 시민들이 광장에 쉽게 접근할 수 있으려면 한쪽 차로는 통하게 해야 합니다.

이인근=네. 안전 문제 때문에 시민들의 우려가 많은데 제 생각으로는 어느 공간이든 사람들이 모여 있으면 차량의 속도는 줄게 돼 있다는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물리적 가드레일 등을 만드는 건 답이 아니라고 봅니다.

승효상=안전 문제는 여러 방법으로 보완하면 됩니다. 오히려 차도로 고립되어 있어 광장에 있는 사람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하다는 문제가 더 큽니다. 광장은 사실 그냥 비워놓고 시민들이 채우게 하면 됩니다. 시민들의 선한 의지를 믿어야 합니다. ‘어반 보이드(urban void)’같은 말이 그런 개념인데 사람들이 무엇을 할 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곳. 그렇게 하지 못하면 관제 광장이 됩니다.

이인근=전체 광장 1만8000㎡ 가운데 분수는 900㎡, 플라워카펫은 3000㎡ 정도인데 시설물로 꽉 차 있다고 하는 말은 동의하기 힘듭니다. 열려 있는 공간이 더 많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잘못 알려지고 노력이 잘못 비추어진 것에 대해선 반성하겠지만, 우리 시의 기본적 생각은 인구 1000만이 사는 도시는 굉장히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도시의 다양성을 존중합니다. 그 다양성을 살릴 수 있도록 공간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와서 시간을 보내고 즐길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고 보고 우리는 그것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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