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행정체제 바람직한 개편 방향

2009.09.08 17:57

“법안 보면 중앙집권 강화” “주민생활 편의 가장 중요”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오른쪽)와 김성호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실장이 지난 6일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민규기자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오른쪽)와 김성호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실장이 지난 6일 지방행정체제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민규기자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놓고 논의가 벌어지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행정구역 개편을 강조하면서 정부와 여당은 구역개편을 적극 추진 중이다. 행정안전부는 당초 ‘선 정치권 합의, 후 지원’ 입장을 번복, 시·군이 통합할 경우 대규모 인센티브 제공 등 기초자치단체들의 통합을 주선하고 나섰다. 학계와 시민사회계는 정치권 중심의, 밀어붙이는 형식의 행정구역 개편에 비판적이다. 구역개편은 국가통치구조는 물론 주민 생활에도 큰 파장을 부르는 만큼 철저한 검증과 장단점 분석, 충분한 여론 수렴과 준비 작업, 주민 중심으로 신중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국회에는 현 정부 들어 의원들이 발의한 ‘지방행정체제 개편에 관한 특별법안’ 3건과 지방자치단체들간의 자율적 통합을 지원하기 위한 특별법안 2건 등 모두 5건이 제출돼 있다.

강형기 충북대 행정학과 교수(한국지방자치경영연구소장)와 김성호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실장이 6일 경향신문 인터뷰실에서 행정구역 개편의 바람직한 방향과 이미 국회에 제출된 법안에 대해 토론했다. 강 교수와 김 실장은 “행정구역 개편은 각계각층의 충분한 여론 수렴 등을 거쳐 하려면 제대로,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법안들에 대해 “지방자치의 활성화나 주민 편의가 아니라 중앙집권의 강화로 기울었다”고 지적했다.

강형기 충북대 교수(이하 강형기)=행정구역 개편과 관련해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서 벌어지는 양상을 보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선 용어부터 바뀌어야 합니다. 두루뭉술한 행정체제 개편이 아니라, 행정구역과 계층구조의 개편입니다. 이 개편은 정치와 행정, 주민생활과 직결된 것으로 국민의 살아가는 방식이 결정되는 엄청난 문제입니다. 그런데도 전문가들의 토론과 합의도 제대로 없이 일방적으로 방향을 정해놓고 정부와 정치권이 밀어붙이는 형식입니다. 개편 방향은 주민의 편의를 높이고, 행정능률을 향상시키며, 지역발전을 촉진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특히 지방자치가 더 건실하게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주민들을 관리의 대상이 아니라 자치의 주체로 봐야 한다는 겁니다. 일부에선 구역개편을 국민적 관심, 국가적 차원에서 하자고 하는데, 국민적·국가적 관심사가 아니라 주민들의 일상생활적 관심사로 진행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제도를 논할 때는 현실을 가슴에 품고, 현장에서, 현물을 가지고 얘기해야 한다고 봅니다. 극히 일부 지역은 통합이 필요하지만 획일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절대 안됩니다.

김성호 전국시·도지사협의회 정책실장(이하 김성호)=개편을 둘러싼 논의 양상에 대해 저도 심각하게 우려합니다.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나 정부의 추진 방향은 문제가 많기 때문에 개편이 필요하다면 명확한 기준과 원칙이 있어야 합니다. 개편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주민의 생활 편의입니다. 시·군을 통합하고, 도를 폐지하면 주민생활의 편의가 높아지느냐는 겁니다. 지난 100여년간 지역내 생활권의 변화 등을 염두에 두고 획일적인 ‘구역 개편’이 아니라 주민생활에 밀접한 ‘경계 조정’이 돼야 합니다. 경계 조정은 현재의 개편안이 아니라 이미 있는 법으로도 충분합니다. 개편은 또 행정비용의 감축 효과가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데 행안부의 시·군통합 지원대책을 보면 공무원 정원 10년간 보장, 특별 재정지원 등이 있는데 행정비용 감축으로 나타날까 의심스럽습니다. 균형 발전도 중요한 원칙이 돼야 합니다.

강형기=국회에는 권경석·우윤근·노영민·이범래·이명수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이 제출돼 있습니다. 법안들은 구체적으로 보면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큰 틀에서 보면 공통점도 많습니다. 개괄적으로 보면 자치도의 폐지, (중앙집권적인)행정기관의 설치, 광역시는 유지하되 자치구의 통합·폐지, 시·군의 통합 등입니다. 안을 보면 개편에 내재하고 있는 거대한 폭풍 같은 파장을 염두에 두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한마디로 이익보는 사람은 주민이 아니라 국회의원과 중앙 관료라는 얘기입니다. 법안 제안자들의 의견자체도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다계층 구조여서 계층을 줄이고자 하면서 오히려 늘어나게 합니다. 세계적 경향에 따라 광역행정을 키우자고 하면서 도는 폐지합니다. 자치발전, 주민편의를 이야기하면서 기초자치를 포기합니다. 솔직히 전문가로선 이해하기 힘들 정도입니다. 결국 지방자치를 줄이고 중앙집권을 강화하는 것이자, 주민들을 자치의 주체가 아니라 관리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각을 드러냅니다.

김성호=소프트웨어 개선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거창하고 혼란스럽게 하드웨어로 하자는 꼴입니다. 수없이 지적돼온 중앙정부와 자치단체들 사이의 기능이나 역할 배분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지방분권이 우선돼야 하지만 오히려 중앙집권 강화가 우려됩니다. 통합에 앞서 우선적으로 중앙정부와 시·도, 시·군 사이의 역할 배분, 기능조정이 이뤄져야 합니다. 이는 지방분권촉진특별법 등에도 하도록 돼있지만 중앙이 하지 않은 것들입니다. 그리고는 인구 70만~80만명의 통합시가 생겨나면 이 기능들을 넘긴다고 호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감기가 걸렸는데 수술부터 하자는 모양새입니다.

강형기=현재 지방자치법에만 도와 시·군 업무가 겹치는 것이 83개나 됩니다. 특별법까지 합하면 중앙정부와 도, 시·군간 업무중복은 훨씬 많습니다. 이런 것들을 먼저 손질해야 행정 효율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중앙 정부에서는 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10년 동안 중앙권한의 지방이양을 많이 한다고 했지만 국가 기능의 2%에 불과합니다. 중앙과 지방의 업무가 중복된다는 것은 지방이 할 수 있는 것을 중앙이 한다는 의미입니다. 법에 규정된, 이미 많이 지적된 행정의 비효율성을 개편에 앞서 먼저 개선하는 실천력을 보여야 할 때입니다. 구체적으로 시·군 통합의 경우 생활권과 행정권의 불일치 등으로 통합이 필요한 곳도 있습니다. 문제는 이런 지역이 아니라 전국을 상대로 획일적으로 하려 한다는 겁니다. 시·군을 합치면 주민들의 상호연대나 동질감이 깨지고, 지역사회에 대한 애착이 실종됩니다. 지역의 독자성, 고유성이 없어지고 ‘전국토의 맥도널드화’가 되는 겁니다. 기초단체의 인구가 너무 적다고 하는데 외국과 비교하면 말이 안됩니다. 문화와 환경이 다르다지만 스위스는 우리 국토의 절반 정도이나 2800여개나 됩니다. 중앙집권과 지방분권의 차이는 민주주의나 공산주의와 비교됩니다. 민주주의는 기회의 평등, 공산주의는 결과의 평등으로 중앙집권은 결과의 평등을 목표로 국가가 경영하는 겁니다. 지방분권은 기회의 평등이고 현장에서 경쟁하고 책임을 지는 겁니다. 무안을 가면 연꽃이 만발하고, 함평으로 가면 나비의 천국이 돼야 합니다. 국토는 좁지만 어딜 가더라도 다양하고 특색있고 달라야 경쟁력이 있습니다. 이제 지방분권으로 막 발돋움을 하려고 노력하는 상황인데 이걸 왜 또 깨버리려고 합니까.

김성호=지방에선 스스로 창의적 역할을 하고 싶어하지만 분권이 제대로 안되다보니 한계가 많습니다. 일부 시장·군수들이 도의 폐지에 관심이 있는 것은 도와 업무가 중복되는 것이 있어 시어머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앙과 시·도, 시·군·구간 업무나 기능·권한 배분이 제대로 안된 것을 도의 폐지나 시·군 통합으로 해결하려고 해선 안됩니다. 법안들은 통합시 60~70개가 생겨나면 도를 폐지한 뒤 지금의 도의 기능을 하는 중앙집권적 행정기관을 설치하도록 돼있습니다. 자치도가 없어지고 국가기관화된 행정기구가 나오면서 중앙집권이 강화되는 겁니다. 저는 시·군통합을 1995년 도·농통합에서 배워야 한다고 봅니다. 도·농통합의 성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 효과에 대한 검증이 우선돼야 합니다.

강형기=60~70개의 통합시가 되면 도가 수행해오던 광역행정기능의 상당수를 국가가 관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도를 폐지하면 추진해오던 특별지방행정기관의 지방이양도 불가능해집니다. 중앙관료들이 특별행정기관의 지방이양을 반대하는 주된 논리가 도의 관리능력 부족인데 쪼개진 통합시에 이양을 하겠습니까. 따라서 도의 폐지가 아니라 도가 수행하는 기능의 상당부분을 시·군에 넘기고, 도는 특별행정기관의 기능을 이양받는 쪽으로 개편돼야 합니다. 주민 일상생활과 직결되는 문제는 소규모 지방단위, 기초단체가 적합합니다. 또 광역적 업무의 경우 국가의 개입을 통하지 않고 광역단체에서 처리하는 게 합리적입니다. 기초단체와 광역단체의 기능중복 문제는 광역단체의 폐지가 아니라 기능배분의 합리화로 해결해야 합니다.

김성호=구역개편 추진론자들은 개편이유의 하나로 지역주의, 지역감정의 해소를 꼽습니다. 이명박 대통령도 8·15경축사에서 이 같은 인식을 드러냈습니다. 아시다시피 지역주의는 행정구역 때문이라기보다는 선거때마다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지역갈등을 조장했기 때문입니다. 근본적 원인을 해결해야지, 지역주의 선거 행태 문제를 행정구역에 떠넘기는 것은 원인진단이 잘못됐다고 봅니다.

강형기=지역주의, 지역감정은 원래 문화적 동질성과 연계되고, 지역에 대한 책임의식, 일체감 등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처럼 지역의 풍토나 역사, 공동체의 동질성을 파괴해버리는 곳이 어디있습니까. 지난 도·농통합은 그나마 내무부 당시 관료들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읍을 시로 만들었던 것을 통합한 경우여서 분란이 적었습니다. 이번에는 다릅니다. 통합시의 명칭, 통합시의 청사 위치, 시 산하 각종 위원회 등 지역민들간 갈등과 분란을 불러일으킬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중앙은 중앙역할을, 지방은 지방역할을 해야 합니다. 개미가 자기 몸무게의 30배를 들고, 40배 무게의 짐을 끌고 다니는 것은 다리로 힘을 분산시키기 때문이죠. 한 나라도 지역의 다양성 속에서, 적절한 역할분담을 통해 경쟁력을 가져야 합니다. 국민들이 개편추진에 대해 큰 관심을 가졌으면 합니다. 구체적으로 나에게, 가족에게, 지역에 어떤 영향이 있는지 면밀하게 따져봤으면 합니다. 필부유책이라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책임의식을 가졌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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