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던 ‘박원순·안철수의 하루’

2011.09.06 21:51 입력 2011.09.06 23:48 수정
장은교 기자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55)와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49). 6일 두 사람의 움직임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집중됐다. 두 사람은 일정을 비밀에 부친 채 전화와 e메일로 연락하며 움직였다. 오후 4시 기자회견장에 동행하고 나서야 기자들과의 쫓고쫓기는 숨바꼭질이 끝난 긴 하루였다.

■ 5일 밤 박원순 설악산에서 하산

백두대간을 종주하던 박 상임이사는 5일 오후 8시쯤 설악산 마등령에서 종주를 끝내고 하산했다. 그는 원래 10일 하산할 예정이었으나 일정을 닷새나 당겼다. 안 원장과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문제를 매듭짓고, 7일 오전에 발인하는 이소선 여사의 빈소를 찾아 조문하기 위해 일찍 귀경한 것이다. 5일 오후 자신의 승용차를 타고 하산한 박 상임이사는 동행한 일행이 출마 여부를 묻자 “글쎄 잘 모르겠네”라며 깊은 침묵을 지켰다.

박원순 이사가 지난달 백두대간을 걷고 있다. | ‘원순씨의 희망일기’ 제공

박원순 이사가 지난달 백두대간을 걷고 있다. | ‘원순씨의 희망일기’ 제공

■ 오전 11시43분 자택 나선 안철수

안 원장은 6일 오전 11시43분쯤 여의도 자택을 나섰다. 전날 밤부터 집 앞을 지키고 있던 취재진의 질문에는 “(박 상임이사를) 오늘 만날 수 있을지, 내일일지 잘 모르겠다” “연락을 받기로 했다. 한 시간 전에 장소를 알려준다고 했는데…”라고 비켜갔다. 기자들의 눈을 따돌리려는 듯 전날 저녁 하산한 박 상임이사에 대해 “산에서 내려오셨느냐”고 되묻기도 했다. 이때까지도 안 원장은 출마 가능성을 “50 대 50”이라고 밝히고 “e메일만 받았으니 실제 얼굴을 보고 말씀을 들어야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 등 시민사회계와는 “한 번도 만난 적 없고, 먼저 연락할 생각은 없다”고 답했다.

그 시간 안 원장의 출마 가능성을 강하게 전했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안 원장의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는 이제 내 소관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안철수 원장이 6일 오전 자택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안철수 원장이 6일 오전 자택을 나서고 있다. | 연합뉴스

앞서 오전 7시23분쯤 먼저 집을 나선 안 원장의 부인 김미경 교수는 “출마 관련해 언급이 없으셨느냐”는 질문에 “그런 거 말씀하시는 분이 아니라서요, 죄송합니다. 출근해야 합니다”라고 말하고 자리를 피했다. 김 교수 역시 갑작스러운 관심에 잠을 거의 못 잔 탓인지 상당히 피곤한 듯한 얼굴이었다.

■ 낮 12시 박원순, 이소선 여사 빈소에

박 상임이사는 하산 후 첫 공식일정으로 이소선 여사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을 찾아 조문했다. 수척해진 몸에 수염이 텁수룩하게 얼굴을 덮은 ‘야인’의 모습으로 나타난 그는 이 여사의 아들인 전태삼씨의 손을 잡으며 “산에 있다 와서 늦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고인의 딸인 전순옥씨는 “어머님과 박 변호사님은 1980년대부터 인연이 있었다. 저희 어머님이 모든 것을 변호사님과 의논하셨다”며 고마움을 표했다. 박 상임이사는 “재래시장이라든지 전태일 열사가 사셨던 곳들을 어떻게 한번 서울시의 명소로 만들어볼까 고민했다”고 말했다. 방명록에는 “아름다운 삶 사셨습니다. 좋은 세상 만들어 가겠습니다”라고 적었다.

빈소에서도 박 상임이사의 출마 여부에 촉각이 쏠렸다. 고은 시인이 “큰일을 하셔야 할 분”이라고 하자 그는 “뭐 이렇게 되었다.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고 답했다.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이 “과거는 그렇고 미래는 어떻게 되냐”고 묻자 “사람 인력으로 되겠나. 지금까지도 저는 혼자가 아니라 늘 함께했고 여기 계신 분들이 많이 도와주시면 좋은 일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그는 “많이 야위셨다”는 주변의 말에 “6㎏이 빠졌다. 소고기 10근 정도다. 벨트를 중간에 다 잘라냈다”며 “제가 산신령이 다 됐다”고 말하기도 했다.

취재진이 따라붙자 박 상임이사는 인사동 낙원상가 앞에서 지인의 도움으로 취재진을 따돌린 뒤 택시를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 오후 2시 박원순·안철수 회동

박 상임이사와 안 원장은 오후 2시 서울 충정로의 한 오피스텔에서 만났다. 안 원장과 박경철 안동신세계클리닉 원장(46), 박 상임이사와 윤석인 희망제작소 부소장(53)만 단출하게 함께했다. 박 상임이사가 먼저 10분 정도 서울시장 출마의 포부를 밝혔고, 출마 의지를 확인한 안 원장은 출마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20분 만에 결론이 났다.

두 사람은 내내 대리인을 통하지 않고 직접 연락하며 비밀리에 움직였다. 원래 두 사람은 이날 저녁 또는 7일 오전 만날 예정이었으나,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관심이 집중되면서 만남을 오후 4시쯤으로 앞당겼다가 다시 오후 2시로 당겼다. 특히 안 원장이 빠른 만남을 청했다고 한다. 박 상임이사 쪽은 이날 오전 긴급회의를 거친 뒤, 출마 기자회견문 작성에 들어갔다. 안 원장은 만남 직전 안철수연구소 측을 통해 오후 4시 기자회견 때 입장을 밝히겠다고 알렸다. 박 상임이사의 출마를 준비하고 있는 한 측근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원래 8일 오전에 출마 기자회견을 할 것으로 알고 기자회견문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워낙 상황이 긴급하게 바뀌고 두 분이 직접 대화를 통해 결정하시기 때문에 모든 일정이 앞당겨졌다”고 전했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한명숙 전 총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부터)이 6일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범시민야권 단일후보 배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 노무현재단 제공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한명숙 전 총리,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왼쪽부터)이 6일 서울 합정동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만나 범시민야권 단일후보 배출을 위해 협력하기로 했다. | 노무현재단 제공

■ 오후 3시 박원순·한명숙·문재인 회동

안 원장과 단일화에 합의한 박 상임이사는 오후 3시 마포의 노무현재단 사무실에서 한명숙 전 국무총리(67),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58)과 만났다. 5일 박 상임이사가 한 전 총리를 만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해 상의하고 싶다는 뜻을 문 이사장 측에 전해 문 이사장이 주선한 자리였다. 이날 한 전 총리의 출마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으나, 30여분의 대화를 통해 세 사람은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 선출을 위해 상호 협력하고 이후엔 선거 승리를 위해 모든 힘을 기울인다”고 합의했다. 유력 후보인 박 상임이사와 한 전 총리 모두 “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범시민 야권 단일후보를 통해 한나라당과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함에 따라 박 상임이사와 한 전 총리 간의 후보 단일화 가능성도 높아졌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기자회견장에서 서울시장 후보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맞이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오른쪽)이 서울 세종문화회관 기자회견장에서 서울시장 후보 불출마 선언을 한 뒤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를 맞이하고 있다. | 김영민 기자

■ 오후 4시 ‘안철수 출마 포기’ 회견

오후 4시 서울 세종문화회관에 마련된 기자회견장에는 안 원장이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두 사람의 좌석이 준비된 테이블에 홀로 앉은 안 원장은 담담히 “박 이사는 서울시장직을 누구보다 잘 수행할 아름답고 훌륭한 사람”이라며 “출마 포기” 의사를 밝혔다. 조금 늦게 기자회견장에 도착한 박 상임이사는 양손을 모은 채 안 원장이 발표하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봤고, 회견을 마친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눈 뒤 포옹하며 어깨를 토닥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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