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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동자 불법촬영 한국인 사장 기소…피해자는 한국서 일 못하게 돼

2020.11.26 15:32 입력 2020.11.26 21:30 수정

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공공기관 상담·통번역·이중언어 업무 이주여성 노동자 처우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한국사회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처우와 노동환경에서 차별없는 정부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11월 17일 오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 앞에서 열린 공공기관 상담·통번역·이중언어 업무 이주여성 노동자 처우개선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참석자들은 한국사회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처우와 노동환경에서 차별없는 정부의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이주노동자들이 사용하는 화장실에 13개월 동안 불법 카메라를 설치한 한국인 사장이 재판에 넘겨졌다. 피해자들이 보복을 우려해 신고하지 않으면서 범행이 오래 지속됐다. 신고한 피해자는 재입국 특례 제도의 문제로 한국에서 계속 일하지 못하게 됐다.

26일 경향신문 취재 결과, 인천지검 부천지청 형사2부(부장검사 박정의)는 지난 11일 경기도 자수공장 사장 A씨를 강제추행,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이용) 등 혐의로 구속기소했다. A씨는 공장 남녀공용 화장실에 카메라를 설치해 2014년 3월~2015년 2월 총 117회 여성 노동자들을 불법 촬영하고, 2020년 3월에는 불법 촬영을 시도한 혐의를 받는다.

이 사건은 피해자 B씨가 지난 3월 A씨가 사용하고 나간 화장실에서 카메라를 발견해 경찰에 신고하면서 수사가 시작됐다. 화장실을 사용하는 남성은 A씨 한 명뿐이었다. 공장의 다른 이주노동자들 사이에서는 2015년 B씨가 입사하기 전부터 A씨의 불법 촬영 범행을 신고할 수 없는 분위기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사장이 보복을 가할 수 있고, 신고해도 사업장 변경이 이뤄지지 않을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의 성폭력 피해는 관련 고용노동부 고시에 따라 ‘외국인 근로자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에 포함된다. 피해자가 노동센터 등에 신청하면 사용자 동의 없이도 사업장 변경이 가능하다. 그러나 현장에서는 물증이 없는 한 사업장 변경이 잘 이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지구인의 정류장’ 김이찬 소장은 “여성 노동자 숙소에 사장이 수시로 들어온 피해 사례 등을 노동부와 고용센터에 신고했지만 ‘성희롱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업장 변경이 거절됐다”고 말했다. 박영아 변호사는 “사직은 사장의 성폭력 등에 대해 노동자가 취할 수 있는 소극적 형태의 대응”이라며 “그마저도 적극적으로 피해를 입증하지 않으면 직장을 그만둘 수조차 없는 것은 인권 침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이주노동자 재입국 특례 제도의 문제도 드러냈다. 재입국 특례 제도는 외국인 노동자가 4년10개월 동안 한 사업장에서 일한 경우에 한해 사업자의 동의를 받아 잠시 출국했다가 재입국해 종전 사업장에서 4년10개월을 추가로 일할 기회를 주는 제도다. 사업자 과실로 근무지를 옮기는 경우 근로계약기간이 1년 이상 남아야 이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B씨는 신고 당시 체류기한이 약 2개월만 남아 사업장을 옮겨도 다시 한국에서 4년10개월 동안 일할 수 없다. 한국에서 더 일하기 위해서는 A씨와 고용 계약을 연장하거나 본국으로 돌아가서 한국어 시험 통과 등 한국 내 취업을 위한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노동부는 지난 9월 이 같은 피해를 막기 위해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에 따르면 계약기간이 1년 미만 남은 피해자가 성폭행 등 사유로 사업장을 변경할 경우 직업안정기관의 승인을 거쳐 재입국 특례 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 허오영숙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대표는 “사업자가 이주민 노동권을 제약하는 권한을 너무 많이 갖고 있기 때문에 억압적 관계가 일상화됐다”며 재입국 특례 제도의 대폭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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