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가부 폐지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없다

2021.07.26 03:00 입력 2021.07.26 03:02 수정

여성가족부 존폐 논란,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급기야 최근에는 여론조사 결과 폐지 찬성 의견이 절반 가까이 나왔다. 어느 한 부처가 이런 신세가 된 이유를 따져보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무책임한 정치선동에 악용된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홍성수 숙명여대 법학부 교수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 하태경 후보, 유승민 후보가 여가부 폐지론을 들고 나왔다. 대선 공약으로 제출한 셈이다. 화제는 되었지만 실체는 허망하다. 2021년 여가부 1년 예산은 1조2395억원으로, 전체 예산의 0.2% 정도를 쓰는 미니 부처다. 예산 대부분은 가족·청소년 정책에 배정되어 있고, 여성정책에 배정된 것은 18%에 불과하다. 여성정책 예산의 대부분은 성폭력·성매매·가정폭력, 아동·청소년 성범죄, 여성폭력, 경력단절여성, 성인지 관련 정책 등에 쓰인다. 아무리 여가부에 비판적이어도 이러한 예산이 낭비라고 주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여가부가 없어진다고 한들 아낄 수 있는 예산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다행히도 유승민 후보는 여성정책이 무의미하다는 식의 주장과는 선을 긋고 있다. 그는 “정부의 모든 부처가 여성 이슈와 관계가 있다”는 점을 확인하면서, 기존의 여가부 업무를 관련 부처로 넘기고, 대통령 직속 양성평등위원회를 두어 각 부처의 여성정책을 챙기면 된다고 주장한다. 유 후보는 대통령이 되면 직접 양성평등위원장을 맡아 양성평등정책을 조율해 나가겠다는 의지도 표명했다. 가능하기만 하다면 검토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제안이다. 하지만 여가부 폐지론이 여성혐오 담론과 맞물려 제기되고 있는 작금의 현실에서, 주무 부처 없이 각 부처로 뿔뿔이 흩어진 성평등 업무가 효과적으로 추진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남녀 갈등 틀에 갇힌 ‘여가부’는
우리 정치와 사회의 실패다
여가부 없애 제대군인 지원 식의
단순 대립 구도의 정치선동으론
얽히고설킨 문제 해결 더 요원해져

그런데 이어서 유승민 후보는 “타 부처 사업과 중복되는 예산은 제대군인 지원법 도입에 쓰겠다”고 했다. 제대군인 지원이라는 또 다른 중요한 과제를 여가부 폐지와 연결하면, 이 문제는 ‘여성이냐 제대군인이냐’ ‘여가부 존치냐 제대군인 지원이냐’라는 부당한 이분법의 틀에 갇혀 버린다. 이런 식으로 ‘정치화’되는 순간 그 최소한의 선의조차 무색해진다.

부당한 대립구도를 만들어 정치적 이익을 챙기는 것은 꽤 오래된 정치 기술이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누스바움은 미국인의 ‘두려움’은 중산층의 경제적 불안과 건강 악화, 수명 단축, 교육비 증가 등 실질적인 문제로 인한 것인데, 문제의 원인을 이민자, 소수인종, 여성에게 돌리는 혐오와 증오가 만연해 있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두려움을 이용해 혐오를 선동한 대표적 정치인이 바로 트럼프다.

미국이 안고 있는 진짜 문제를 외면하고 ‘우리’와 ‘그들’을 싸우게 만든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이러한 정치선동으로 정치적 이익을 거둘 수 있음을 실증해냈다. 세계의 많은 정치인이 트럼프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이유다. 하지만 현직 프리미엄에도 불구하고 연임에 실패함으로써 그런 식의 정치적 이익이 오래가기는 힘들다는 것 또한 보여줬다. 트럼프에게는 한 번의 승리라도 안겨줬으니 남는 장사일지 모르겠지만, 그의 4년은 미국 사회에 쉽게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남겼다. 누스바움은 “혐오는 순간의 위안일 뿐 아무것도 이뤄내지 못했다”고 단언했다.

한국 남성에게도 불안과 두려움이 실재하는 게 현실이다. 하지만 여성이 행복해졌기 때문에 반대급부로 남성이 불행해진 것이 결코 아니고, 국가의 여성정책 때문에 남성의 불안이 가중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여성이나 여성정책의 책임을 묻는 것은 너무나도 부당하다. 어찌되었건 이 문제가 남녀 갈등의 틀에 갇히게 된 것은 우리 정치와 사회의 실패다. 여기에는 정부의 책임도 있고, 따져보면 여가부의 책임도 일부 있을 것이다.

여러 문제가 고약하게 꼬여 있어, 풀어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 뻔한 얘기여서 죄송하지만, 시간이 걸리더라도 꼬인 실타래를 하나하나 풀어내는 수밖에는 없다. 이 시점에서 확실한 것은 복잡하게 얽힌 문제를 쉽게 풀려고 한다면, 특히 선과 악, 우리와 그들, 남과 여, 존치와 폐지라는 단순한 대립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문제 해결은 더 요원해진다는 사실이다. 여가부를 폐지해 제대군인 지원에 쓰겠다는 식의 정치선동으로 풀 수 있는 문제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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