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은 교육을 어떻게 만드는가

지난주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었다. 은행 개장 시간이 늦춰지고 영어듣기 시험 중에는 비행기가 상공에 머물렀다. 수능을 보는 자녀를 둔 친·인척과 직장 동료를 응원한다. 이러한 국민적 행사는 매년 되풀이되고 공유된다. 수능이 처음 실시된 것은 1994년이다. 암기 중심이라는 비판을 받던 ‘학력고사’를 없애고, 대학 수학의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수능’이 도입되었다. ‘대학입시제도’라고 할 때 ‘입시(入試)’는 입학시험의 줄임말이었고, ‘대학입학전형제도’라는 명칭이 본격적으로 등장하였다. 대학입학을 위한 ‘전형(銓衡)’의 다양한 자료 중 수능 결과가 포함되는 것이다.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박수정 충남대 교육학과 교수

그러나 입시라는 말은 여전히 남아 있고, 전형자료 중 하나인 수능의 영향력은 높아지고 있다. 국가교육회의 공론화 과정에서 수능은 ‘공정’의 대명사로 다시 부상하였고 정시모집이 확대되었다. 그러나 5개 보기에서 정답을 고르는 소위 ‘객관식’ 시험인 수능은 반복적인 문제풀이와 끝없는 보충학습으로 귀결된다. 미래를 살아갈 학생들의 역량을 기르고 잠재력을 확인할 수 있는 평가는 무엇일까. 절대평가나 자격고사로 바꾸어야 할까. 서술형·논술형 평가로 전환하면 될까. 대학에 맡기는 것은 어떨까. 연 2회 시험, 또 다른 시험 추가도 대안들이다.

수능을 앞둔 고등학교 3학년 교실을 살펴보자. 고3 수업이 파행이라는 점은 알려진 바다. 수능 고득점을 위해 교사들은 진정한 의미의 학습은 잠시 내려놓고 EBS 교재와 문제풀이식 수업에 매달린다. 수능 점수가 필요한 학생들은 자습을 선호한다. 수능 점수가 필요하지 않은 학생들도 수능을 대비하는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다. 수능 직전에는 체험학습을 신청하고 등교하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코로나19로 체험학습 허용일수가 늘어난 올해, 미등교 학생 수는 예상을 뛰어넘는다. 대입전형자료로서 수능의 공정성과 타당성은 차치하더라도, 이러한 현상은 과연 교육적으로 바람직한 것인가.

대학입학전형을 위한 전국적인 시험인 수능 제도는 30년이 되어간다. 획기적인 변화는 어려워 제기되는 문제만을 해결하고 점증적인 개선만 해온 수능의 해법은 어쩌면 ‘개선’이 아니라 ‘개혁’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실마리는 학교 현장에 있다.

학교에서 추진하는 교육활동은 사실상 평가나 입시와 연결되지 않는 순간 물거품이 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으로 학생 역량을 중시하는 교육과정이 도입되었고, 학생 참여형 수업과 과정 중심 평가가 강조되었다. 학교가 제공하는 과목 외에도 학생이 배우고자 하는 과목을 열어주는 학생 맞춤형 교육도 본격화되었다. 수업일수만 채우면 자동 진급이 되는 것이 아니라 과목별 이수기준을 달성케 하는 책임교육도 도입된다. 그러나 이러한 도전은 ‘기승전-대학입시’라고 하는 입시 블랙홀로 다시 미궁에 빠진다.

학교는 왜 변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갖는 의문이다. 오래전에 학교를 다녔고 자녀를 보내면서 또다시 학교를 접하지만, 학교는 변한 것보다 변하지 않은 것이 더 많은 것 같다. 공부하는 재미와 진정한 학습은 왠지 학교 안에서는 어려워 보이고, 성적표에 전체 석차는 나오지 않지만 모든 과목을 잘해야 할 것 같고, 학교보다 학원이 내 아이를 더 잘 가르치는 것 같다. 경험을 일반화하면 안 되지만, 경험이 누적되면 신념이 된다.

수능 중심의 대학입시는 과거와 마찬가지로 수능 과목 중심의 학교 수업 운영과 관련된 사교육 강화를 낳는다. 사교육을 차단하는 전형 방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교육 시장은 입시를 활용하면서 성장해 왔고, 절실한 학부모는 도움을 원한다. 그러나 암기하고 자습하는 수십 년 전 공부를 지금도 반복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다시 궁금해진다. 입시 때문에 원하는 교육이 안 되는 것일까, 새로운 교육을 원치 않아서 입시를 갖다 붙이는 것일까.

학교를 둘러싼 사회체제는 명문대 중심의 학벌 체제, 학력에 따른 임금 격차, 수도권 선호와 집중 등이 대표적이다. 이는 학교와 교육을 변화시키려는 노력을 좌절시킨다. 그러나 조금씩 균열이 일어나고 있다. 대학 진학률은 1990년대 중반 보편교육 단계(50%)에 진입하고 한때 80%에 육박했으나 이제 70% 수준이다. 대학을 선택하지 않는 학생이 늘고, 실력이 중요하다는 분위기가 커졌다. 학력과 학벌보다 역량 중심으로 채용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 학교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체제가 바뀌면 교육도 함께 바뀔 것이다. 그리고 학교 교육은 그러한 사회 변화에 분명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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