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절 기념사 ‘논란’

균형감 없는 대일 인식…‘강제동원 피해 협상’ 조속 매듭 속내

2023.03.01 21:22 입력 2023.03.01 22:59 수정

‘전대미문’ 기념사 배경은

<b>104년 전 그날처럼…독립문에 휘날리는 태극기</b> 삼일절 104주년을 맞은 1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진을 마친 뒤 독립문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104년 전 그날처럼…독립문에 휘날리는 태극기 삼일절 104주년을 맞은 1일 서울 서대문구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열린 ‘서대문 1919 그날의 함성’ 행사에 참가한 시민들이 행진을 마친 뒤 독립문 앞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권도현 기자

국권 침탈 일본의 잘못 ‘외면’…배상 문제 해결 조급함 엿보여
국내 기부금만으로 배상하는 ‘제3자 변제’ 해법 발표 임박 징후

윤석열 정부가 출범 이후 처음 맞는 3·1절에 역대 어느 정부에서도 볼 수 없었던 기념사를 내놨다. 원고지 6장 정도의 짧은 분량에 한·일 과거사 문제에 대한 언급은 일절 하지 않고 양국 관계의 미래와 협력만을 강조했다. 형식과 내용 모든 면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기념사에는 역대 정부와는 완전히 다른 ‘균형감 없는 대일 인식’이 드러난다.

지금까지 한·일 과거사 문제와 한·일 협력을 이야기할 때 역대 모든 정부의 입장은 ‘과거를 직시하고 미래를 위해 협력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윤석열 정부의 기념사에서는 일본이 과거를 직시해야 한다는 내용이 생략돼 있다. 서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기 위한 전제 조건이 사라진 것이다.

윤 대통령이 “세계사의 변화에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국권을 상실하고 고통받았던 우리의 과거를 되돌아봐야 한다”고 말한 것도 선후가 바뀐 역사 인식을 드러낸다. 일제에 나라를 빼앗긴 것에는 우리 잘못도 있다는 점을 말하려면, 국권을 침탈한 일본의 잘못을 먼저 언급했어야 하지만 이를 생략했다. 이 때문에 ‘우리도 잘못했다’는 반성이 아닌, ‘우리가 잘못했다’는 자학이 기념사의 주요 내용이 돼버렸다.

과거사 문제에 대한 분명한 언급 없이 한·일관계의 미래와 협력을 강조하다보니 결국 ‘반성하지 않는 일본’을 포함한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들과 연대하는 것이 104년 전 선열들이 외친 3·1 정신과 다르지 않다는 기괴한 결론에 도달한다.

윤석열 정부가 이처럼 전례 없이 균형감 없는 3·1절 기념사를 내놓게 된 배경에는 한·일관계 개선에 대한 조급함이 놓여 있다. 특히 현재 한·일 간 최대 현안인 일제 강제동원(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문제를 시급히 풀어야 한다는 것을 지나치게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한·일은 이 문제를 풀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집중적인 외교협의를 가졌으나 핵심 쟁점에 대한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국내 기업의 기부금을 모아 피해자에게 대신 배상하는 ‘제3자 변제’를 해결책으로 제시하고 일본 피고기업들이 기부금 조성에 참여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이 이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 정부 차원의 해법 발표를 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 기념사는 정부가 일본 피고기업의 참여 없이 국내 기업의 기부금만으로 배상 문제를 해결하는 내용의 해법 발표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징후로 보인다. 외교소식통은 “정부는 조만간 일본 피고기업이 기부금 조성에 참여하지 않는 해법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이번 기념사에서 강제동원 문제를 포함한 과거사 문제를 직접 언급하지 않고 한·일 협력의 당위성만 강조한 것은 이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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