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체제 70년, 평화를 다르게 상상하기

2023.08.01 03:00 입력 2023.08.01 03:02 수정

전쟁은 멈췄으나 끝나지는 않은, 70년이 되도록 이런 상태가 지속되는 경험은 한반도가 아니고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전체제는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다. ‘대피할 준비를 하라’는 경보가 불쑥 울릴 때 전쟁을 떠올리는 것이 어색하지 않다. 하지만 전쟁이 멈춘 지도 오래라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은 추상적인 수준을 맴돈다. 그런 와중에 윤석열 대통령은 전쟁을 끝내자고 주장하면 반국가세력이라 말한다.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그러면 대한민국은 전쟁을 하자는 나라인가. 말이 안 될 말을 대놓고 할 수 있는 배경에는 역사적 경험이 있다. “우리를 침략하려는 적”이 있다면 싸울 힘을 길러야 한다는 말에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서 미국의 핵자산을 공개적으로 한국 영토에 끌어들이는 일까지 벌어진다. 문재인 정부는 최소한 북을 ‘적’으로 명시하진 않았다. 그러나 ‘자주국방’을 대안으로 여기며 역대 규모로 군사비를 증강했다. 미국에 의존하는 안보로부터 벗어나자는 취지였더라도 북에는 똑같은 위협일 뿐이었다.

전쟁을 끝내서는 안 될 또 다른 이유는 역설적이게도 통일이다. 권영세 전 통일부 장관은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남북을 “두 나라로 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된 특수관계”의 의미를 뒤집어 북의 급변사태에 다른 나라와 달리 개입할 권한이 있다는 논리로 만든다. 노골적으로 북 체제 붕괴를 주장하던 인물을 통일부 장관에 임명하는 사태까지 이르렀으니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

통일이 분단을 교정하려는 시도에 그칠 때 전쟁 위기의 이유가 된다는 역설은 정전체제의 뿌리다. 북의 김일성이 전쟁을 시작한 이유도, 남의 이승만이 정전을 반대한 이유도 하나의 나라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후 남북 간 체제 대결 구도는 고착화됐다. 인권 문제는 상대 체제를 비난하는 수단이 되어버려, 서로의 문제를 참조점으로 삼으며 연대의 방법을 찾는 일은 불가능해졌다. 민주당 정부의 ‘한반도 경제공동체’ 구상은 조금 더 평화로워 보일지 모르나 경제적 힘의 우위로 통일을 주도하겠다는 접근이다. 북의 자원과 노동력을 탐내는 자본의 욕망과 구분되기 어려워 보수 정부의 ‘통일 대박’과 다르지 않게 된다. 적으로 규정하는 정부보다 민족을 강조하는 정부가 낫지만, 민족은 평화의 실마리가 될 수 있을지언정 평화를 보증하지 않는다.

통일은 우리가 평화를 상상하는 방식이었다. 1980년대 한국의 민주화운동은 평화체제로 전환할 힘을 만들어가는 통일운동으로도 이어졌다. 1990년대 국제적인 탈냉전 흐름과 만나며 몇 차례 평화의 모멘텀이 만들어졌던 것도 우리 사회에 전환을 이룰 힘이 축적되었던 덕분이다. 그러나 정전체제는 우리가 바라지 않던 모습으로 변화해왔고 통일만으로 평화를 상상하기는 쉽지 않아졌다.

정전체제 70년 동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더욱 알기 어려운 나라가 되었다. 오랜 시간 공유한 역사와 문화를 되새긴들 편파적으로 전해지는 정보를 종합해 이해를 심화하는 일은 여전히 어렵다. 북한이 핵무장을 완성하면서 대결 구도도 견고해졌다. 미국의 대조선 적대 정책과 선제타격 기조가 원인이라는 점도 분명하지만 체제 안전을 위해 핵무기 개발에 매진한 선택이 평화의 경로가 될 수 없음도 분명하다. 그간 제시된 해법으로 해결이 난망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평화체제로의 전환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재편하는 도전이다. 화해협력이든 상호억지든 정전체제로부터 군사 충돌 가능성만 소거하는 일은 불가능하다. 정부 간 약속과 제도적 장치를 만드는 일로 평화체제를 모색하기에 앞서, 한국 민중과 조선 인민이 서로 의존할 수밖에 없는 ‘우리’라는 감각을 쌓는 일부터 차근차근 시작해야 할 때는 아닐까. ‘우리’가 되어갈수록 평화체제의 모습과 전환 경로도 뚜렷해지리라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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