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당 5000원의 삶" '노동자로서 평론가'의 삶은 가능한가

2020.03.10 06:00 입력 2020.03.10 15:55 수정

계간 자음과모음 2020년 봄호에 ‘지나간 미래’란 글을 발표하고 11년간 문학평론가로서의 작업과 경제적 수입을 정리한 문학평론가 장은정. 장은정 제공

계간 자음과모음 2020년 봄호에 ‘지나간 미래’란 글을 발표하고 11년간 문학평론가로서의 작업과 경제적 수입을 정리한 문학평론가 장은정. 장은정 제공

“2009년부터 2019년까지 문학평론가로서 발표한 원고는 총 176편, 매수는 총 5728매입니다. 원고료만 따지면 3390만원을 벌었기에 1매당 5863원을 책정 받은 셈입니다. 원고료 이외의 활동비 210만원, 각종 상금 2500만원을 합하면 총 6100만원이 되는군요. 11년 간 월 평균 46만원을 벌었습니다.”

경력 11년차의 문학평론가 장은정(36)은 그동안의 원고료를 정리하는 작업을 했다. 발표 순서대로 원고에 일련번호를 붙인 후 발표 시기, 원고 매수, 입금 고료 등 총 16개의 항목으로 분류했다. 청탁서도 없이 불명확하게 입금된 돈들이 많았다. 꼬박 한 달이 걸렸다. ‘매당 5000원, 월 평균 46만원’의 수입이 11년차 문학평론가의 현주소였다.

“매당 5000원짜리 삶을 살았다는 자괴감을 떨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경제적 조건이 비평이라는 장르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비평가로 하여금 어떠한 자의식을 갖게 하는지 면밀히 사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은정은 2009년 대산대학문학상 평론 부문에 당선, ‘젊은 평론가’로서 활발히 활동해왔다. 창비 세교연구소 ‘젊은 평론가팀’ 멤버로 활동했으며,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선고위원 및 리뷰 좌담팀에 참여했다.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운영하는 웹진 비유 편집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장은정은 계간 문예지 자음과모음 2020년 봄호의 특집 ‘글쓰기라는 노동/노동자로서의 작가’(가제)에 ‘지나간 미래’라는 글을 발표하며 11년 동안 ‘노동자로서의 평론가’의 삶을 들여다봤다. 장은정을 9일 e메일로 인터뷰했다.

‘노동자로서의 평론가’는 지속 가능한가. 결론은 “현재로서는 당연히 불가능하다.” 등단 후 ‘젊은 평론가 그룹’에 속해 활동했던 그는 문학 출판계가 젊은 평론가들을 동원하면서도 제대로 보상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해 지적한다.

문학평론가 장은정이 등단 후 11년 동안 받은 원고료 등 각종 수입을 엑셀 파일로 정리했다. 발표 시기, 글의 종류, 청탁서 여부, 원고료 등 16개 항목으로 정리하는 데만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다. 청탁서가 있었던 경우는 73%, 청탁서에 원고료가 기재된 비율은 51%에 불과했다. 장은정 제공 이미지 크게 보기

문학평론가 장은정이 등단 후 11년 동안 받은 원고료 등 각종 수입을 엑셀 파일로 정리했다. 발표 시기, 글의 종류, 청탁서 여부, 원고료 등 16개 항목으로 정리하는 데만 한 달 정도 시간이 걸렸다. 청탁서가 있었던 경우는 73%, 청탁서에 원고료가 기재된 비율은 51%에 불과했다. 장은정 제공

대표적인 것이 문학동네에서 운영하는 ‘젊은작가상’이었다. 올해로 11회를 맞은 젊은작가상은 등단 10년 이하의 작가들의 중단편 중 뛰어난 작품에 시상한다. 젊은작가상은 주요 문학상으로 자리잡았는데, 젊은 평론가들이 선고위원으로 활동하며 ‘예심’을 본다. 장은정은 2011년 젊은평론가들로 구성된 좌담팀에 합류, 제2회 젊은작가상 예심을 맡았다. 장은정은 “당시 선고위원들에게 선고비가 별도로 없었다. 총 20매 분량 해설 지면에 해당하는 원고료 20만원을 받은 것이 전부다. 100편 남짓 단편소설을 읽은 후 작품을 선별하는 금액은 책정되지 않은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현재는 30만원 가량 책정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 금액 역시 터무니없다”고 덧붙였다.

젊은작가상 선고 작업이 끝나자마자 좌담 참여를 위해 문예지 겨울호에 수록된 모든 단편소설을 읽기 위해 도서관 등을 방문해야했지만 별도의 식비와 교통비는 지급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밖에 문학동네에 투고된 원고들을 검토하거나 독자 리뷰 대회 심사 등 각각 20만원 남짓의 보수를 받고 일을 맡았지만 “업무와 금액이 제대로 표기된 서류를 받은 것이 없어 입금내역이 어떤 업무의 대가인지 파악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주어진 지면과 기회를 망치지 말아야 한다는 중압감과 불안감에 압도되어 있어 절차의 정당성에 대해 질문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장은정은 11년간 발표한 원고 176편 중 청탁서가 있는 경우는 73%에 그쳤으며 그중 원고료가 기재된 것은 절반에 불과했다고 밝혔다.

그는 젊은 평론가들이 리뷰(서평)을 쓰고 좌담을 벌이는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스템에 대해 ‘주니어 평론가 시스템’이라 명명하며 “주니어 비평가 시스템이 유튜브 채널까지 확장돼 2020년 젊은 평론가들은 영상 매체 속에서 엔터적 요소까지 요구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그는 “10년 간격으로 평론가들이 나타났다 사라진다”며 “동료 평론가들이 임용되기 시작하면서 현장 평론을 활발히 발표하지 않자 90년대 생 일군의 평론가들이 빈자리를 채운다”며 “출판 산업 내에서 ‘젊은 평론가’는 제한된 자리에 놓여 있다. 충분한 금액을 보상받고 제대로 된 계약서를 쓰고 있을까”라고 반문했다.

2000년대 이후로 비평이 ‘서평’의 성격을 띠기 시작했다며 과거 ‘지식인-비평가’에서 ‘작가-비평가’로 역할이 변화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그의 비평관은 바뀌었다. “일부 남성평론가들이 페미니즘 비평을 쓰는 여성평론가들의 글을 비판하면서 비평가는 작품을 충실히 읽는 직업이지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을 목격한 이후 ‘작가-비평가’ 모델의 역사적 유효성이 끝났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 연대 모임 아가미’가 지난해 5월 첫 좌담회를 열고 문단 내 성폭력 폭로 이후 문단의 변화와 피해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영경 기자

‘#문단 내 성폭력 피해자 연대 모임 아가미’가 지난해 5월 첫 좌담회를 열고 문단 내 성폭력 폭로 이후 문단의 변화와 피해자들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영경 기자

2015년 신경숙 표절 사태, 2016년 문학출판계 성폭력 해시태그 운동, 2017년 최영미 시인의 미투, 2020년 이상문학상 저작권 문제 등 문단의 문제들도 그의 비평관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그는 “매체 비평, 제도 비평 쪽으로 관심사가 이동했다”며 “신경숙 표절 사태는 문예지 혁신의 계기가 되었지만, 문학계가 꿈꾼 ‘혁신’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문학출판계 성폭력 말하기 운동에 참여한 피해자들 대다수가 가해자로부터 역고소를 당했고 공론화조차 되지 못한 피해사실이 더 많다. 문학출판계 구성원들에게 어떤 경험으로 남았는지 질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은정은 지난해 웹진 비유에 ‘작가연대 총파업 돌입, 작가들 노동환경 개선되나’는 글을 발표, 작가연대가 결성돼 총파업 찬반 투표를 한다는 가상의 상황을 전제로 글을 썼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예지발간사업 평가 연구용역’에 따르면 문학출판계 평균 원고료는 시 6만7586원, 소설 8679원, 비평은 6885원 등으로 조사됐다. 그는 “글쓰기를 주요한 업무로 삼은 다양한 장르의 작가들이 모여 노동조합을 결성해 단결권 및 단결교섭권, 단결행동권을 행사해 원고료를 인상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출판사들이 임금을 책정할 때 협의나 상의 없이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일은 개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상문학상 사태’에서 언론노조 서울경기지역 출판지부가 열악한 출판 노동자의 현실을 폭로한 것이 고무적이라고 했다. “출판계에서 외주노동자 뿐 아니라 재직 중 출판노동자에게조차 근로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10년 넘는 경력을 쌓고도 아웃소싱으로 내몰린다는 내용이 성명서에 담겨 있었다”며 “문학출판계의 다양한 구성원들이 처해있는 상황들이 더욱 입체적으로 가시화되어 ‘공적으로’ 드러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은정은 ‘지나간 미래’를 한 세대가 지난 뒤인 2050년의 독자를 대상으로 상정해 글을 썼다. 그는 “30년 이후라는 설정은 ‘어떤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가’라는 질문과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두 가지 질문을 동시에 맞물리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문학출판계 성폭력 고발 운동 이후 페미니즘 비평을 모은 ‘페미니즘 비평 위키’를 만들어 ‘모월모일’ 멤버와 함께 운영하고 있다. 그는 “파편적으로 흩어진 데이터들을 일정한 년도와 월에 모아 ‘동시대’를 데이터로 재구성하는 적극적 비평적 개입”이라며 “이전에는 청탁받은 원고를 작성하는 것에 골몰했다면, 이제는 ‘비평적 행위’가 앞서고 글쓰기는 비평적 행위의 한 요소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평론가로서 그는 새로운 역할을 모색하고 정립하는 여정에 있다.

장은정 평론가가 포함된 ‘모월모일’ 멤버가 함께 운영하는 페미니즘 문학비평 위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사건 이후 기사, 문학평론 등을 엮었다. 장은정은 “동시대의 데이터를 재구성하는 비평적 개입”이라고 설명했다. 이미지 크게 보기

장은정 평론가가 포함된 ‘모월모일’ 멤버가 함께 운영하는 페미니즘 문학비평 위키. 2016년 ‘#문단 내 성폭력’ 고발 사건 이후 기사, 문학평론 등을 엮었다. 장은정은 “동시대의 데이터를 재구성하는 비평적 개입”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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