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정 다큐 감독 “하버드를 보니, 우리 대학 문제가 보였다”

2012.08.01 21:27
김윤숙·사진 김정근 기자

“가장 공부 잘하는 집단이 힘과 자본에 봉사해”

“하버드대학은 단순히 미국의 한 대학이 아닙니다. 미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영향력을 미치는 막강한 집단입니다.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죠. 하버드는 최고 지성의 상징이자, 성공한 인생의 표상으로 떠받들어집니다. 하버드를 제대로 알면 지금 우리 대학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이 보입니다.”

첫 장편 다큐멘터리 <베리타스, 하버드 그들만의 진실>로 지난해 뉴욕국제독립영화제(NYIFF)에서 다큐부문 감독상을 받으며 화제를 모은 재미 감독 신은정씨(41·사진). ‘세계적인 명문’ 하버드의 이면을 파헤친 다큐멘터리를 동명의 책으로 펴낸 뒤 한국에 머물던 그를 만났다.

신 감독은 “지난해 다큐멘터리가 상영됐을 때 ‘어디서 기밀문서라도 얻은 것 아니냐’고 많은 사람이 물어왔다”면서 “하지만 우리가 몰랐을 뿐 하버드로 대표되는 엘리트집단의 문제는 미국 내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거론돼왔던 것”이라고 말했다.

신은정 다큐 감독 “하버드를 보니, 우리 대학 문제가 보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하버드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어요. 이유는 간단해요. 그들의 우월성만 너무 강조됐기 때문이에요. 한국인도 예외는 아니죠. 오래전 국제중학교를 목표로 공부하는 초등학생을 만난 적이 있어요.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대뜸 하버드에 진학하는 거래요. 이유는 그냥 세계에서 제일 좋은 대학이기 때문이고요. 그때부터 하버드는 그 명성에 값하는 우월성을 갖고 있을까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는 하버드 출신도 아니면서, 더군다나 미국인도 아닌 한국인이 왜 하버드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 자세히 설명했다.

2001년에 그는 5·18 전야제 일을 하고 있었다. 당시 전남대 5·18연구소에서 광주민중항쟁을 연구하던 미국인 혁명사 전문가 조지 카치차피카스 교수를 만났다. 두 사람은 2004년 결혼을 했고 이듬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남편이 하버드의 한국학연구소 연구교수로 부임하게 돼 신 감독도 그곳에서 영어수업을 받게 됐다. 그는 하버드의 다채로운 행사에 참가하면서 ‘하버드’의 존재에 차츰 관심을 갖게 됐다.

“처음엔 하버드가 굉장히 진보적 집단인 줄 알았어요. 누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영어수업 하나에서도 진보적 엘리트집단이란 이미지를 강하게 풍겼어요. 또 틈만 나면 자신들이 학문의 자유를 수호하는 전당임을 강조하곤 했죠.”

하지만 ‘케네디스쿨’ 등에 참여하고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이들이 말하는 학문적 자유의 실체가 뭔지 알게 되었다. ‘무엇이든 연구할 수 있다’는 명제가 면피용이라는 사실과 ‘역사적 책임감보다 정책 합리화에 동원돼온’ 하버드의 이면을 본 것이다.

그는 하버드의 이중성을 파헤치기 위해 수많은 자료와 책을 읽으며 공부를 시작했다. 세계적인 석학 놈 촘스키를 비롯해 하버드 메디컬스쿨 리처드 레빈스 교수 등 20여명의 관계자를 인터뷰하면서 1990년대식 러시아 경제개혁 과정에 하버드가 개입해 러시아 경제를 파탄으로 이끌었던 사건 등 하버드의 알려지지 않은 진실에 주목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하버드의 실체만 알고 싶었는데, 다큐멘터리 작업을 하면서 ‘교육의 목표가 뭔가’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가장 공부를 잘한다는 집단이 ‘힘과 자본의 네트워크’를 지탱하는 데 봉사하는 현실이 안타까웠어요.” ‘두 얼굴의 대학’은 비단 하버드만이 아니다. 하지만 하버드는 현대 교육의 상징이다. 신 감독은 “그래서 하버드의 맨 얼굴을 보면 오늘날 대학과 엘리트집단들의 근본적인 문제들이 보이고, 올바른 대안에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고 말했다.

신 감독은 광주에서 나고 자랐다. 1980년 5월의 기억은 어렴풋하다. 외출한 엄마를 기다리던 9살 소녀는 담장을 넘어오는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뭔가 두려운 기운을 느끼긴 했지만, ‘그들만의 진실’을 알기엔 너무 어렸다. “전남대에 입학한 뒤 한 성당에서 열린 1980년 5월에 관한 사진전을 보았어요. 저는 몰랐지만 누군가는 알고 있던 진실이 있다는 걸 깨닫고 큰 충격에 빠졌죠. 그때 진실을 기록하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알았어요.”

광주와 보스턴을 오가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는 그는 “한국인으로서 민중을 중심에 세우고 역사를 들여다보는 작업, 특히 세계 민중운동의 흐름 속에서 5월 항쟁의 의미를 다뤄보고 싶다. 그리고 이방인으로서 ‘미국인으로 산다는 것’에 대해 다양한 시각을 담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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