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이 거대한 콘서트장으로··· 프랑스 음악축제 ‘페트 드 라 뮈지크’

2017.12.04 10:56 입력 2017.12.04 11:57 수정
글·사진 파리|김형규 기자

산책하러 나온 길에 파리 1구청 앞에 놓인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동네 주민 프랑크 반티에(45). 그는“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면서도 멋들어진 즉흥곡을 연주했다.

산책하러 나온 길에 파리 1구청 앞에 놓인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동네 주민 프랑크 반티에(45). 그는“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적이 없다”면서도 멋들어진 즉흥곡을 연주했다.

■전국이 거대한 콘서트장 되는 날

“연주해줘요. 난 당신 거에요.”(Play me. I’m yours.) 유혹하는 문구는 파리 1구청 입구에 놓인 작고 낡은 피아노 뚜껑 위에 적혀 있었다. 건반 앞에선 반바지와 반팔 티셔츠 차림의 중년 사내가 흥겨운 재즈풍의 피아노곡을 연주하고 있었다. 크로스백을 어깨에 둘러맨 채 옆에는 작은 비닐봉투도 놓여있었다. “담배도 살 겸 동네 산책 나왔다가 피아노가 있길래 앉아서 치고 있는 거에요.” 곡목을 물어보니 뜻밖에도 ‘즉흥곡’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인근 주민이라는 프랑크 반티에(45)는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운 경험이 없는 전직 배달원 출신의 무직자였다. “여름이면 구청 앞에 피아노를 가져다 놓는 걸 알고 있었거든요. 게다가 오늘은 음악 축제 날이잖아요.”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며 말하는 그의 모습은 온 국민이 예술을 일상적으로 즐기고, 이를 국가가 탄탄히 뒷받침하는 프랑스 문화 정책의 단면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파리 1구청 안뜰에서 프랑스 샹송 가수 장 사블롱을 주제로 한 공연이 열렸다. 장 사블롱이 큰 인기를 누렸던 미국에서의 활동기를 상징하는 분홍색 캐딜락이 무대 뒷편을 장식하고 있다.

파리 1구청 안뜰에서 프랑스 샹송 가수 장 사블롱을 주제로 한 공연이 열렸다. 장 사블롱이 큰 인기를 누렸던 미국에서의 활동기를 상징하는 분홍색 캐딜락이 무대 뒷편을 장식하고 있다.

매년 하지에 열리는 음악 축제(Fete de la Musique·페트 드 라 뮈지크)는 프랑스에서도 가장 성공한 문화 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이날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뜻 맞는 이들과 함께 집 앞 거리나 광장에 나와 공연을 한다. 루브르박물관 같은 주요 관광지에서도 국립오케스트라단의 연주가 펼쳐지는 등 수준 높은 행사가 이어진다. 모든 공연은 무료다. 시민과 관광객이 한 데 어우러져 노래 부르고 춤춘다. 나라 전체가 하루 종일 거대한 콘서트장으로 변신하는 것이다.

루브르 박물관 뒷편 공터에서 춤추는 음악 축제 참가자들

루브르 박물관 뒷편 공터에서 춤추는 음악 축제 참가자들

1982년 문화부 장관 자크 랑의 제안으로 시작된 음악 축제는 올해로 36회째다. 이제는 전 세계 100여개 국가에서 동시에 축제가 진행된다. 올해 6월21일에도 어김없이 풍악은 울려퍼졌다. 행사 주최 측에 공식 등록된 이날 파리 시내 공연은 500여회 정도지만 실제론 그 배 이상의 음악잔치가 골목마다 벌어졌다. 아마추어들의 자발적인 소규모 공연이 그만큼 많았기 때문이다. 관이 주도해 만들었지만 축제의 내용을 채우는 것은 어디까지나 참가자인 시민들의 몫. 직접 체험해 본 ‘2017 페트 드 라 뮈지크’는 시민을 문화상품의 소비자가 아닌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참여자로 만들어내는 게 프랑스 문화 정책의 핵심이라는 걸 여실히 보여줬다.

소르본 대학 근처의 한 카페 앞에서 한 아마추어 가수가 건반을 치며 노래 부르고 있다. 음악 축제날 파리 시내 곳곳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선 소규모 공연이 종일 이어진다.

소르본 대학 근처의 한 카페 앞에서 한 아마추어 가수가 건반을 치며 노래 부르고 있다. 음악 축제날 파리 시내 곳곳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선 소규모 공연이 종일 이어진다.

■지역사회가 하나 되는 축제

파리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생 퇴스타슈 성당엔 아침 일찍부터 드나드는 사람이 많았다. 성당은 축제 전날 오후부터 36시간 연속 공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입구엔 행사 내용을 알리는 안내문과 함께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쓴 인삿말이 반겼다. “환영합니다”라고 적은 한글도 눈에 띄었다. 성당 앞에는 손바닥을 귀에 갖다댄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거대한 조각작품이 있었다. 제목이 ‘듣는 사람’이라는 설명에 음악 축제 분위기가 더욱 실감났다.

생 퇴스타슈 성당 앞의 조각 ‘듣는 사람’

생 퇴스타슈 성당 앞의 조각 ‘듣는 사람’

성당 안으로 들어서자 목관악기 음색이 고요한 실내에 울려퍼졌다. 대나무로 만든 일본 전통악기 샤쿠하치였다. 연주자는 머리를 깎고 회색 승복을 차려입은 벽안의 수도승 카간(57). 성당에서 불교 음악이 뜻밖이라는 우문에 “영적인 음악은 서로 통한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옆에서 성당 주임신부 자크 메리엔(71)이 “성당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고 못을 박았다. 그는 “유대인이건 무슬림이건 누구나 여기서 연주할 수 있다”며 “지역 사회가 축제를 계기로 소통할 수 있도록 12년째 자체 행사를 기획하고 있다”고 했다. 해마다 3000명 이상이 찾는다고도 했다. 관광객과 노인들이 많이 찾는 오전 시간엔 그에 맞춰 차분하고 대중적인 음악을 준비하고, 저녁엔 젊은이들 취향대로 일렉트로닉 공연을 여는 등 고민의 흔적이 엿보였다.

생 퇴슈타슈 성당에서 일본 전통악기 샤쿠하치를 연주하는 수도승 카간.

생 퇴슈타슈 성당에서 일본 전통악기 샤쿠하치를 연주하는 수도승 카간.

실제로 편한 복장의 동네 주민들과 쇼핑백을 든 관광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공연을 감상하고 있었다. 카간의 연주가 끝나자 거대한 파이프오르간 아래 설치된 무대에서 앳된 학생 둘이 피아노와 첼로 협주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50명 남짓한 관객의 박수 소리가 성당의 까마득한 지붕 아래서 큰 울림을 만들어냈다.

생 퇴스타슈 성당은 매년 ‘페트 드 라 뮈지크’ 때마다 축제 전날부터 36시간 연속 공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생 퇴스타슈 성당은 매년 ‘페트 드 라 뮈지크’ 때마다 축제 전날부터 36시간 연속 공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예술의 생활화는 학교에서부터

음악 축제를 기획한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문화 향유를 시민의 기본권으로 인식했다. 모든 시민이 문화에 쉽게 접근할 창구를 만들어주기 위한 방법으로 그는 교육을 택했다. 어려서부터 공교육을 통해 직접 예술작품을 만들고 감상하는 버릇을 들이게 한 것이다. 이 정책은 음악 축제와도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팔레 루아얄에서 열린 학생 오케스트라 공연에 참가한 노르망디의 클로드 모네 중학교 학생들. 오른쪽에서 두번째 갈색 모자를 쓴 학생이 레아(14).

팔레 루아얄에서 열린 학생 오케스트라 공연에 참가한 노르망디의 클로드 모네 중학교 학생들. 오른쪽에서 두번째 갈색 모자를 쓴 학생이 레아(14).

축제날 오후 2시 팔레 루아얄에선 프랑스 문화부가 주최한 학생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다. 무대 옆에선 당일 아침 노르망디에서 버스를 타고 상경한 클로드 모네 중학교 학생들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며 각자 자신이 맡은 파트 연습에 한창이었다. 검은색 티셔츠를 맞춰입은 학생들의 표정은 상기돼 있었다. 클라리넷을 맡은 여학생 레아(14)는 “일주일에 2시간씩 두 달 넘게 연습했다”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장소에서 이런 무대에 서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보니 좀 떨리지만 기분은 좋다”고 말했다.

아직은 서툰 10대 학생 오케스트라지만  공연에 임하는 태도 만큼은 다들 진지했다.

아직은 서툰 10대 학생 오케스트라지만 공연에 임하는 태도 만큼은 다들 진지했다.

자신도 3년 전 똑같이 공연을 했다는 레아의 언니 사라(17)는 “오늘은 우리들한테 1년 중 정말 중요한 날”이라고 했다. “그동안은 우리끼리 연습하고 동네에서나 공연했지만 음악 축제 덕분에 이렇게 파리에도 오게 됐잖아요. 사람들 앞에서 실력도 뽐내고 다른 학교 친구들이랑 교류하면서 자극받는 특별한 경험을 오늘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요.”

손주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응원하기 위해 팔레 루아얄을 찾은 미셸(75). 그도 소싯적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를 연주했다.

손주의 오케스트라 공연을 응원하기 위해 팔레 루아얄을 찾은 미셸(75). 그도 소싯적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를 연주했다.

카메라를 들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학생들의 서투른 공연을 끝까지 지켜보는 건 대부분 가족들이었다. 손주의 공연에 아내, 며느리와 함께 응원단으로 온 미셸(75)은 “음악축제 덕분에 말 섞을 일 없는 손주와 이야깃거리가 생겨 너무 좋다”고 했다. 그 역시 젊은 시절 아마추어 오케스트라에서 오보에 연주를 하던 음악가였다. 파리 외곽에 사는 미셸 가족은 이날 공연이 끝난 뒤에도 저녁 늦게까지 시내에서 각종 공연을 즐길 계획이라고 했다. 음악축제는 학생들에겐 ‘평생 잊을 수 없는 경험’을, 가족들에겐 더없이 좋은 나들이 기회를 제공하는 날이었다.

■“내 정체성을 알리고 싶어요.”

한여름 파리는 저녁 8시에도 해가 지지 않는다. 파리 5구 팡테옹 근처의 작은 공터에 나무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그늘이 만들어졌다. 무대랄 것도 없이 길바닥에 플래카드 하나만 펼쳐놓은 채 게이와 레즈비언으로 구성된 성소수자 합창단 ‘이퀴복스’(Equivox)가 아카펠라 공연을 시작했다. 첫 곡은 지난해 타계한 영국 뮤지션 데이비드 보위의 ‘라이프 온 마르스’(Life on Mars)였다.

파리 5구 임마누엘 레비나스 광장에서 열링 파리 성소수자 합창단 ‘이퀴복스’의 공연 모습

파리 5구 임마누엘 레비나스 광장에서 열링 파리 성소수자 합창단 ‘이퀴복스’의 공연 모습

남녀가 반반씩 30여명으로 구성된 합창단은 복장이 제각각이었다. 아름다운 화음과 익살스런 율동에 하나둘 자리를 잡고 앉는 사람이 늘었다. 산책 나온 듯 가벼운 차림에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들이 많았다. 동네 주민 로베르(33)도 네 살배기 딸 릴리를 안은 채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우리 가족은 원래 음악 축제 때 큰 콘서트장보다는 아마추어들이 하는 이런 작은 공연을 주로 보러 다녀요. 여기도 릴리가 관심을 보여서 산책길에 우연히 들른 건데 생각보다 노래를 잘 하네요.”

이퀴복스는 익살스런 율동과 아름다운 화음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이퀴복스는 익살스런 율동과 아름다운 화음으로 관객들의 시선을 끌었다.

막 인사를 마친 지휘자가 청중을 향해 소리쳤다. “다음 노래는 동성애자로서 우리의 삶이 얼마나 힘든지, 우리의 독특함이 얼마나 사람들에게 오해받고 있는지 그 고충을 표현한 곡입니다.” 그러나 소개와 달리 노래를 부르는 합창단원들은 재밌어 죽겠다는 표정들이었다. “엄마, 아빠 나 말할 게 있어요. (여자들만)나는 남자를 좋아하지 않아~ (남자들만)나는 여자를 좋아하지 않아~”

시작부터 끝까지 자리를 지킨 노부부에게 공연이 어떤지 물었다. 남편 에제키에는 “축제는 전문 음악인이 아니라 음악을 좋아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일상에서 어떻게 음악을 즐기는지 보여주는 건데 이 사람들이 바로 그런 경우인 것 같다”며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아내 콩스탕스는 “합창단이 어떻게 보면 노래를 통해 우리에게 호소를 하는 셈인데, 그걸 지지하고 응원하는 마음에 더 앉아있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퀴복스 단원 마르크(왼쪽)가 응원차 방문한 친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이퀴복스 단원 마르크(왼쪽)가 응원차 방문한 친구와 함께 포즈를 취했다.

막 공연을 마친 6년차 단원 마르크(46)는 “음악축제를 통해 우리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소감을 말했다. “좋아하는 음악도 하면서 게이·레즈비언으로서 정체성도 드러내는 거니까 우리는 남들보다 축제를 두 배로 즐기는 셈이죠.” 합창단 대표인 드니(38)의 말에는 ‘자기 표현’이라는 예술의 근본 목적이 더없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밤늦도록 울려퍼지는 멜로디

이퀴복스가 공연한 임마누엘 레비나스 광장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자 바로 시끄러운 록음악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거리엔 젊은이들이 가득했다. 다들 손에는 테이크아웃 잔에 담긴 맥주를 들고 있었다. 이날 파리는 수십년만의 기록적인 폭염이 기승을 부렸다. 밤 10시가 넘어서도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나들었다. 조금만 걸어도 땀이 줄줄 흘렀지만 곳곳에서 들리는 라이브 음악 덕분인지 얼굴 찌푸리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리와 무대, 가수와 관객의 구분이 희미한 프랑스의 음악 축제

거리와 무대, 가수와 관객의 구분이 희미한 프랑스의 음악 축제

U2의 히트곡을 커버하는 아마추어 록밴드

U2의 히트곡을 커버하는 아마추어 록밴드

시내 주요 관광지는 물론 공원과 술집, 카페와 레스토랑마다 크고작은 음악 소리가 밤 늦게까지 떠들썩했다. 소르본 대학 근처의 한 상점 앞에서 한 아마추어 밴드의 버스킹 공연이 한창이었다. 아일랜드 출신의 록밴드 U2의 히트곡을 차례로 부르는데 참고 들어주기 힘든 수준이었다. 둘러싼 관객들은 아랑곳않고 제멋에 겨워 ‘떼창’을 했다. 그 모습을 뒤로 하고 센강으로 향하는 시내버스에 올랐다. 막 티켓을 꺼내려는데 운전기사가 소리쳤다. “요금 안 내도 돼요. 오늘 음악 축제 날이잖아요.”

퐁데자르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는 아마추어 록밴드

퐁데자르에서 버스킹 공연을 하는 아마추어 록밴드

센강을 가로지르는 퐁데자르(예술의 다리)는 ‘연인들의 다리’로 유명하다. 이날 밤 다리 위는 말그대로 ‘춤판’이었다. 다리 한가운데서 아코디언과 기타로 무장한 노인 밴드가 흥을 돋웠다. 관객들의 손에는 두툼한 가사집이 들려 있었다. 1982년 첫회 때부터 축제에 개근했다는 은퇴 공무원 프랑수아즈(65)가 처음 본 기자에게도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었다. “이 노래 같이 부르면서 춤 춰요. 지금 시작하잖아!” 곧 모두가 에디트 피아프의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Non Je Ne Regrette Rien)를 합창하기 시작했다.

자정이 가까운 시각, 루브르 박물관 근처인 히볼리가 59번지에서 강렬하고 묵직한 전자음이 울려퍼졌다. 예술가들이 ‘스콰트’(빈 건물을 점거하는 행위) 운동을 통해 문화공간으로 탈바꿈시킨 건물이었다. 2층 발코니에서 한 사람은 디제잉을 하고 한 사람은 전자바이올린을 켰다. 빠른 비트의 음악에 맞춰 길가에 모인 청년들이 몸을 흔들어댔다. 어디선가 밤바람에 실려온 마리화나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 갤러리와 창작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히볼리가 59번지. 자정이 넘은 시각 2층 발코니에서 울려퍼지는 디제잉과 전자바이올린 소리에 건물 바로 앞 인도가 작은 파티장으로 변했다.

가난한 예술가들이 빈 건물을 점거해 갤러리와 창작공간으로 탈바꿈시킨 히볼리가 59번지. 자정이 넘은 시각 2층 발코니에서 울려퍼지는 디제잉과 전자바이올린 소리에 건물 바로 앞 인도가 작은 파티장으로 변했다.

숙소로 향하는 길에도 귓가엔 잔향처럼 노랫가락이 진동했다. 이 골목의 일렉트로닉 음악이 귓가에서 멀어질 때쯤 저 모퉁이에서 록 음악 볼륨이 커지고, 다시 그 소리가 희미해지면 재즈 밴드의 감미로운 선율이 와락 다가왔다. 날이 바뀌고 새벽이 깊어가는 동안에도 트럼펫을 앞세운 행진곡에 함성 소리, 심지어 폭죽 터지는 소리까지 그칠 줄 몰랐다. 유명 가수 한 명 없이도, 모두가 즐겁고 누구나 주인공이 되는 축제가 그곳에서 밤새 이어졌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