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존중 받는 창작활동…프랑스에 ‘배고픈 예술가’는 없다

2017.12.03 21:05 입력 2017.12.04 14:03 수정
파리 | 김형규 기자

프랑스 - 모두가 주인공이다

극단 KTHA의 사무실. 월 임대료가 600유로로 매우 저렴하다.

극단 KTHA의 사무실. 월 임대료가 600유로로 매우 저렴하다.

공동묘지도 수많은 방문객이 몰리는 관광지가 될 수 있을까. 의아스럽지만 프랑스 파리의 페르라세즈라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쇼팽, 모딜리아니, 발자크, 오스카 와일드, 에디트 피아프, 짐 모리슨…. 국적도 활동 장르도 전성기도 제각각이지만 이름만 대면 알 법한 예술가들이 잠들어 있는 곳. 무덤 앞엔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여행자들이 놓아둔 엽서와 꽃이 가득하다. 잘 가꿔진 산책로 사이로 거닐다 보면 절로 예술적 감흥에 젖어들게 되는 이 ‘공동묘지’는 파리 동쪽 끝 20구에 있다. 근처 주택가는 집값이 싸기 때문에 가난한 노동자와 예술가들이 많이 산다.

페르라세즈를 나와 북쪽으로 조금만 걸으면 연극배우 겸 연출자인 니콜라 베르켄(39)의 극단 ‘크타’(KTHA) 사무실이 있다. 파리시에서 싼값에 임대해준 사무실 건물은 널따란 마당까지 딸려 있다. 베르켄은 파리8대학에서 연극을 배우던 시절 동료들과 극단을 만들어 18년째 운영하며 연기를 하고 있다. 큰 돈벌이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생계를 걱정할 정도로 막막한 삶은 아니다. 가정을 꾸렸고 두 아이를 키운다.

한국에서 연극을 한다는 것은 배고픈 삶과 동의어다. 주목받지 못하는 많은 연극인들은 생계 때문에 연극을 포기하기도 한다. 베르켄은 “연극은 고소득과는 거리가 먼 직업이지만 경제적 이유로 포기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그런 상황도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차이는 ‘앵테르미탕’(Intermittent)에서 비롯된다.

극단 회의실에서 자신이 쓴 연극 대본의 내용을 설명하는 니콜라 베르켄.

극단 회의실에서 자신이 쓴 연극 대본의 내용을 설명하는 니콜라 베르켄.

■ 생계 걱정 없는 예술활동

프랑스는 예술가들이 끼니 걱정 없이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는, 세계에서 거의 유일한 나라다. 독일과 네덜란드 등 사회민주주의 복지 모델을 가진 다른 서유럽 국가에도 예술가들을 위한 사회보장제도가 있긴 하지만 프랑스만큼 폭넓고 탄탄하게 자리 잡은 나라는 찾아보기 힘들다. 거리극 전문가인 조동희 서울문화재단 팀장은 “유럽 쪽 예술가들과 일하다 보면 많은 예술가들이 국적과 상관없이 프랑스를 근거지 삼아 활동한다”면서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존중과 국가적 지원이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불규칙적’ ‘비정규적’이라는 뜻의 앵테르미탕은 프랑스 예술인 복지 시스템의 핵심이다. 공연·영상예술 분야 비정규직 예술가를 위한 실업급여 제도를 말한다. 불규칙적으로 일거리가 들어오는 예술가들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주기 위해 1969년 만들어졌다. 예술가들은 매달 버는 돈을 정부에 신고하고 그 절반을 보험료로 낸다. 정부는 신고된 액수를 바탕으로 기준소득을 산출하고 예술가가 수입이 없을 때 그만큼의 소득을 보전해준다.

베르켄의 사례를 보자. 정부에 등록된 그의 기준소득은 1800유로다. 이는 전년도 소득을 바탕으로 나온 수치다. 예를 들어 그가 한 달에 800유로를 벌었다면 이 중 400유로는 보험료로 내야 한다. 대신 정부로부터 1400유로의 실업급여를 받아 1800유로의 수입을 확보하게 되는 식이다. 몇년 전과 비교하면 그의 수입은 많이 늘었다. 그가 운영하는 극단이 거리공연 분야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수입의 절반을 보험료로 내고도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2700유로 정도가 된다.

“저는 18년째 앵테르미탕 지위를 유지하고 있어요. 지금은 정부에서 지원받는 금액보다 내야 할 보험료가 훨씬 많아졌지만 지난 십여년간 충분한 혜택을 받았으니 만족해요. 일이 없을 때도 규칙적으로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생활을 영위해야 할 예술인으로서 중요한 조건이지요. 아마 앵테르미탕이 없었다면 아이를 키울 엄두도 못 냈겠죠.”

현재의 수입이 넉넉한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는 한 달에 평균 300~500유로를 저축하고, 일주일에 한두 차례는 가족과 외식도 할 수 있다고 했다. “많이 버는 사람은 더 많이 내고, 적게 버는 사람은 더 많은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봐요. 젊고 가난한 예술가들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말이죠.”

앵테르미탕 자격은 연간 507시간 이상 일하는 예술가에게 주어진다. 현재 프랑스 공연예술 분야 비정규직 종사자 25만명 중 절반 정도인 12만명이 이 혜택을 보고 있다. 물론 앵테르미탕이 완벽한 제도는 아니다. 출산과 육아 등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아 여성 예술가에게 더 불리하다는 지적도 있고 보완점에 대한 요구도 있지만 예술가들에게 힘이 되는 실용적 제도라는 데 이견은 없다.

‘예술가의 집’은 시각예술 종사자들을 위한 복지 시스템이다. 1965년 본격적으로 체계가 잡힌 이 제도는 매달 30유로 이하의 회비를 내는 예술인들에게 주거, 의료, 육아 등의 복지 서비스를 제공한다. 소득의 18%를 일정 기간 납부하면 연금도 받을 수 있다. 문화예술을 향유하거나 재료를 구입할 때 할인도 받을 수 있고 저작권이나 세금에 관련된 무료 법률상담도 가능하다.

조각가 앙도쉬 프로델이 아틀리에에 놓인 자신의 작품을 가리키고 있다.

조각가 앙도쉬 프로델이 아틀리에에 놓인 자신의 작품을 가리키고 있다.

조각가 겸 화가 앙도쉬 프로델(67)은 1976년부터 예술가의 집 회원이었다. 그가 사는 주거형 아틀리에는 파리 북쪽 생 마르탱 운하 근처에 있었다. 3층 입구에서 벨을 누르자 일본인 아내가 문을 열어줬다. 86㎡ 크기의 집은 복층 구조라 층고가 5m가 넘었다. 집 한쪽 벽에는 전시회를 마친 작품이 한가득 쌓여 있었다. “이 근처에서 이 정도 집을 구하려면 월세를 2500유로 줘야 하는데 우린 파리시에 1000유로만 내고 있어요. 집세는 매년 3~5% 정도로 정해진 만큼만 오르죠.”

그는 예술가의 집 회원 자격으로 이 집에 1986년 입주했다. 30년 넘게 아내와 둘이 살며 집세 걱정 없이 작품활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지난해부터는 매달 780유로씩 연금도 받고 있다. 연금은 전체 수입의 4분의 1 정도를 차지한다. 파리10대학에서 철학 박사학위를 딴 프로델은 20대 후반에 뒤늦게 그림을 시작하면서도 생계 걱정을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주거 지원뿐 아니라 작업실 전기요금, 작업실을 오갈 때 드는 교통비도 할인받는다.

프로델의 아틀리에는 복층 구조로 천장이 높아 작품을 보관하기 용이하다.

프로델의 아틀리에는 복층 구조로 천장이 높아 작품을 보관하기 용이하다.

■ 예술의 공공적 가치에 합의하다

혹자는 예술 종사자들에게 과도한 혜택이 돌아간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프랑스에서 예술가들이 누리는 복지혜택은 사회적 합의에서 비롯됐다. 예술의 공공적 가치에 대한 인정이다. 예술적 성취의 과실을 누리는 이들이 시민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도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은 아니다.

한국의 민주노총격인 프랑스 노조연합체 CGT 산하의 공연예술 산별 노조 ‘CGT 스펙터클’의 드니 그라부이 위원장(47)은 “오랜 투쟁의 산물”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예술가들은 오랫동안 ‘노동자로서의 예술가 권익’을 위해 노력했다. 예술가 노조의 역사는 세계 최초로 노동자 정부를 구성했던 1871년 파리코뮌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후 직능, 분야별로 세분화되며 발전했다. ‘CGT 스펙터클’은 1895년 처음 만들어진 뒤 100년 이상 지속되고 있다. 예술 분야의 단체협약을 손질하고 노조원들의 일자리와 사회보장, 직업교육 등을 챙긴다. ‘노동자로서의 예술가 권익’의 결정판이 앵테르미탕이다.

프랑스에만 있는 이 ‘특혜’에 대한 반발과 질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판 전경련에 해당하는 경영인단체 ‘MEDEF’는 이 제도를 비판하며 무력화하는 데 앞장서 왔다. 2003년 정부는 재정악화를 이유로 앵테르미탕을 대폭 손질하려 했다. 그러자 예술인들은 합심해 싸우며 여론에 호소하고 나섰다. 당시 예술인들은 항의의 의미로 아비뇽 페스티벌 등 세계적 축제를 줄줄이 보이콧했으며 문화부와 MEDEF 건물을 점거하는 등 격렬한 시위를 하기도 했다. 그와 동시에 앵테르미탕이 없다면 기존의 실업급여 재정이 더 악화된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찾아내 시민들을 대상으로 제도의 필요성을 설득하고 홍보했다. 결국 설문조사에서 국민의 80%가 앵테르미탕 유지에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올 정도로 대중의 마음을 얻으면서 사태는 해결됐다.

프랑스 미술인 노조 ‘CGT 스냅’의 공동위원장 기욤 라노(47)

프랑스 미술인 노조 ‘CGT 스냅’의 공동위원장 기욤 라노(47)

그라부이는 “프랑스가 누리는 문화 강국의 이미지 뒤에는 수많은 예술가의 땀과 노동이 깔려 있다”면서 “다양한 문화예술의 기회가 만들어질수록 예술가의 일자리가 늘어나고 이는 문화 민주주의 실현과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문화란 모든 계층과 연령이 차별 없이 고르게 누릴 수 있어야 한다”면서 “이 때문에 시민들이 누리는 ‘공공재’로서의 문화에 사회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덧붙였다.

‘공공재’로서의 문화예술. 이 개념은 프랑스 문화정책의 근간이기도 하다. 앵테르미탕과 같은 정책이 생산자에 대한 지원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면 각종 시민 참여형 축제들은 문화 소비자들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매년 열리는 페테 드 라 뮈지크(Fete de la Musique)도 그 대표적인 사례다.

매년 하지에 열리는 이 축제는 프랑스에서도 가장 성공한 문화정책 중 하나로 꼽힌다. 이날은 악기를 연주할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거리나 광장, 공원으로 나온다. 루브르 박물관 앞 광장에선 국립 오케스트라가, 집 근처 공원에선 소박한 동네 밴드가 공연을 한다.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뒤섞여 연주하고 춤추고 노래하는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정부가 주도해 만들었지만 그 내용을 채우고 즐기는 것은 시민들의 능동적인 참여다. 1982년 시작된 이 음악축제는 올해로 36회째를 맞았고 전국 100개 이상 도시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파리 1구청 안뜰에서 프랑스 샹송 가수 장 사블롱을 주제로 한 공연이 열렸다.

파리 1구청 안뜰에서 프랑스 샹송 가수 장 사블롱을 주제로 한 공연이 열렸다.

■ 전국이 거대한 콘서트장이 되는 날

지난 6월21일에 이른 아침부터 파리시 곳곳은 음악소리로 들썩였다. 시내 한가운데 위치한 생 퇴스타슈 성당엔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로 붐볐다. 성당은 축제 전날 오후부터 36시간 연속 공연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입구엔 행사 내용을 알리는 안내문과 함께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인 인사말이 방문객을 반겼다. ‘환영합니다’라는 또렷한 한글도 한쪽을 차지하고 있었다. 성당 앞에는 손바닥을 귀에 갖다댄 사람의 얼굴을 표현한 거대한 조각작품이 있었다. 제목은 ‘듣는 사람’이다. 안으로 들어서자 목관악기 음색이 고요한 실내에 울려퍼졌다. 대나무로 만든 일본 전통악기 샤쿠하치였다.

연주자는 머리를 깎고 회색 승복을 차려입은 벽안의 수도승 카간(57). 성당에서 불교음악이 뜻밖이라는 우문에 “영적인 음악은 서로 통한다”는 현답이 돌아왔다. 옆에서 성당 주임신부 자크 메리엔(71)이 “성당은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이라며 “유대인이건 무슬림이건 누구나 여기서 연주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당 안엔 편한 복장을 한 동네 주민들, 쇼핑백을 든 관광객들이 무리를 지어 앉아 연주가 끝날 때마다 환호하며 박수를 보냈다. 카간의 공연이 끝나자 무대에는 두 명의 청소년이 올라 피아노와 첼로를 합주했다.

파리 성소수자 합창단 ‘이퀴복스’의 공연 모습.

파리 성소수자 합창단 ‘이퀴복스’의 공연 모습.

오후 늦게 파리 5구 팡테옹 근처 임마누엘 레비나스 광장에선 30여명의 남녀로 구성된 합창단이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딱히 준비랄 것도 없었다. 바닥에 플래카드 하나를 펼쳐놓은 채 자리를 잡고 앉는 사람들을 보며 목을 풀고 있었다. 이들은 성소수자들로 구성된 합창단 ‘이퀴복스’다. ‘동성애자로서 삶이 얼마나 힘든지, 어떤 고충을 겪고 있는지 표현한 곡’을 들려주겠다며 노래하는 이들의 표정은 유쾌하고 신나 보였다. 마르크(46)는 “이런 축제는 우리 같은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즐겁고 자유롭게 보여주는 자리”라며 “우린 남들보다 2배로 축제를 즐길 수 있어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광장에서 오른쪽 골목으로 접어들자 거친 록음악 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거리엔 테이크아웃 맥주잔을 든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소르본 대학 근처의 한 상점 앞에서 버스킹을 하는 밴드는 아일랜드 출신 록밴드 U2의 히트곡을 부르고 있었다. 도저히 참고 들어주기 힘든 수준이었지만 관객들은 흥에 겨워 ‘떼창’을 하고 있었다.

센강을 가로지르는 퐁데자르(예술의 다리)는 아예 춤판으로 변해 있었다. 아코디언과 기타로 무장한 노인 밴드가 다리 한가운데를 차지하고는 흥을 돋웠고 손에 두툼한 가사집을 든 채 몸을 흔들며 노래를 따라 부르는 사람들도 많았다. 1982년에 열렸던 첫 회 축제부터 개근했다는 은퇴 공무원 프랑수아즈(65)는 “이 노래 같이 부르면서 춤춰요. 지금 시작하잖아!”라며 손을 내밀었다. 밤 10시가 넘은 시간인데도 섭씨 35도를 웃도는 후끈한 날씨. 퐁데자르의 밤하늘은 에디트 피아프의 노래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요’로 번져가고 있었다.

센강을 가로지르는 퐁데자르(예술의 다리)가 춤판으로 변했다.

센강을 가로지르는 퐁데자르(예술의 다리)가 춤판으로 변했다.

■ 문화향유는 시민의 기본권

루브르 박물관 근처 팔레 루아얄. 축제날 오후 2시 이곳에선 문화부가 주최한 학생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렸다. 무대 옆엔 노르망디에서 온 클로드 모네 중학교 학생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상기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클라리넷을 연주하는 레아(14)는 “평소엔 우리끼리 연습하고 동네에서 공연하는데 이런 축제가 있을 때마다 파리에 오게 된다”며 활짝 웃었다.

축제가 열리는 도시에서는 중·고생들로 구성된 합주단이나 밴드의 공연을 특히 많이 볼 수 있다. 이들에게 축제는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을 가족과 이웃 앞에 펼치고 나누는 자연스러운 장이다. 페테 드 라 뮈지크를 기획했던 자크 랑 전 프랑스 문화부 장관은 문화예술 향유를 시민의 기본권으로 인식하고, 이를 실천할 방법으로 공교육 현장에서 예술교육 확대를 추진했다. 어려서부터 예술 작품을 만들고 감상하며 나누는 개인의 습관이야말로 ‘공공재’로서의 예술을 탄탄하게 받치는 토대가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분위기에선 누구에게나 열린 기회를 제공하고 더 많은 좋은 작품이 나와 예술의 발전을 이끄는 선순환 구조가 형성된다.

퐁피두센터 인근의 한 술집 앞에서 연주하는 밴드.

퐁피두센터 인근의 한 술집 앞에서 연주하는 밴드.

프랑스에선 일년 내내 축제가 열린다. 오리악 거리극 축제, 앙굴렘 만화 축제, 엑상프로방스 뮤직 페스티벌, 샤를르빌 마리오네트 페스티벌 등 각 지역을 대표하는 축제들은 세계에 지역을 알리는 문화관광 자원일 뿐 아니라 큰 경제적 가치도 창출한다.

축제는 양질의 예술을 즐기는 공간이자, 아마추어 예술가들에겐 ‘등용문’이 되기도 한다. 국제적으로 이목이 집중되는 축제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단숨에 ‘전국구 스타’가 될 기회를 잡을 수도 있다. 거리극을 하는 배우들 중 공연 기획자나 지자체 담당자에 의해 발탁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조동희 팀장은 “프랑스 곳곳에서 열리는 양질의 축제는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초연 무대가 된다”면서 “이 같은 생태계가 문화 창작의 힘이 된다”고 분석했다.

산책 나왔다 구청 앞에 놓인 피아노 앞에 앉은 동네 주민 프랑크 반티에(45).

산책 나왔다 구청 앞에 놓인 피아노 앞에 앉은 동네 주민 프랑크 반티에(45).

■ 경제위기 현실 앞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프랑스에선 정부와 지자체들이 문화예술 관련 예산을 삭감했다. 이 때문에 일자리를 잃은 예술가들도 많다. 특히 연극과 영화 등 공적 자본이 많이 투입되는 장르의 타격이 컸다. 지자체가 경제위기와 테러 위협 등을 이유로 축제를 줄이면서 각종 거리공연도 이전에 비해 줄었다. 2014년엔 ‘문화를 위한 행진’ 등 대규모 집회가 잇따라 열렸다. 그 결과 2016년엔 문화 예산이 소폭 늘어나고 일부 후퇴했던 앵테르미탕 혜택이 원상복귀되기도 했다.

지난 5월 당선된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스 예술계에 또 하나의 시련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운동을 하면서 프랑스 사회 전반에 신자유주의 정책을 강화할 것을 천명했다. 예술 분야에선 구체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았지만 기존의 혜택을 축소하는 반노동 정책을 곧 추진할 가능성이 높다. 예술가 단체들도 이를 예상하고 대대적인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미술인 노조인 ‘CGT 스냅’ 위원장 기욤 라노(47)는 “노조를 꺾겠다고 공공연히 말한 마크롱이 당선되면서 프랑스도 신자유주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며 “파업이나 노조 활동에 관대한 프랑스 특유의 시민정신도 점차 줄어들고 있다”고 말했다.

영화 촬영 조감독으로 일하는 카미유 클레멍(34)은 “프랑스에서만 가능한 앵테르미탕은 전 세계를 휩쓰는 신자유주의적 시각으로 봤을 때 받아들이기 힘든 제도라는 걸 안다”면서 “막연히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1년 중 영화 작업이 없는 3~4개월 동안 월평균 1800유로의 실업급여를 받는다. 영화 일을 하는 남자친구도 월평균 1200유로의 실업급여 혜택을 받고 있다. 그는 이 덕분에 독립예술영화 작업을 할 수 있었고 남자친구도 감독 데뷔를 위한 시나리오 집필에 몰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일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쑥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라부이 위원장은 “비관적인 전망도 있고 미래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새 정부 출범으로 당연히 예상된 걱정”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들이 누리고 얻은 것은 지난 100년 이상 지속해 온 싸움의 결과입니다. 후퇴와 진전을 반복해 오긴 했지만 난 그렇게 쉽게 흔들릴거라고 보지는 않아요. 우린 오랫동안 예술의 공적 가치를 공유하며 지금까지 왔고 그 가치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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