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시대, 마법이 전하는 사려깊은 위로···영화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

2020.06.15 14:02 입력 2020.06.15 21:40 수정

영화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은  디즈니·픽사가 시도해온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실험이 어디까지 진보했는지, 차별과 편견 대신 존중과 인정이 자리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은 디즈니·픽사가 시도해온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실험이 어디까지 진보했는지, 차별과 편견 대신 존중과 인정이 자리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온워드: 단 하루의 기적>은 ‘옛날 옛적에…’로 시작되는 내레이션에서 출발한다. 먼 옛날 엘프·요정·트롤·켄타우로스 등 판타지 종족들은 각자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채 마법을 사용하며 공존했다. 마법으로 가득찬 세상은 경이로웠고, 아름다웠다. 하지만 그만큼 번거로웠다. 마법은 수련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었으며, 때때론 위험을 동반했다.

스위치를 켜는 것이 마법보다 편리하다는 걸 알게 되자 세상은 빠르게 변하기 시작했다. 자동차와 스마트폰이 선사한 현대 문명의 안락함 속에 마법은 보드게임에나 등장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가 됐다. 초원을 시속 100㎞로 달리던 켄타우로스는 자동차를 몰고, 요정들은 날개로 나는 대신 오토바이를 타고 다닌다. 굶주린 유니콘들은 마치 쥐처럼 마을 쓰레기통을 뒤지고, 한때 마법 세계를 주름잡던 전설의 모험가 만티코어는 패밀리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신세가 됐다.

영화에선 용이 반려동물처럼 집에서 길러지고, 유니콘이 쥐처럼 쓰레기통을 뒤진다.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등 현재 인간세상과 큰 차이가 없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에선 용이 반려동물처럼 집에서 길러지고, 유니콘이 쥐처럼 쓰레기통을 뒤진다. 하지만 자동차를 타고 스마트폰을 사용하는 등 현재 인간세상과 큰 차이가 없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속 세상은 그래서 낯설기보단 친숙하다. 주인공인 10대 엘프 이안(톰 홀랜드)은 파란 피부와 뾰족 귀를 제외하면 평범한 청소년과 다르지 않다. 이안은 남편을 잃고 십여년 간 홀로 두 아들을 키운 엄마 로렐(줄리아 루이스 드레이퍼스), 학교도 가지 않고 롤플레잉 판타지 게임에 빠져사는 형 발리(크리스 프랫)와 산다. 이안의 16번째 생일날, 로렐은 두 아들에게 아빠의 선물을 건넨다. 회계사인줄만 알았던 아빠가 남긴 선물은 놀랍게도 마법 지팡이와 세상을 떠난 이를 하루 동안 살려낼 수 있다는 마법 주문이었다. 멋지게 성장한 두 아들을 볼 수 있도록 자신을 소환해달라는 아빠의 요구대로 형제는 마법을 시도한다. 하지만 난생 처음 접한 ‘진짜 마법’에 아빠의 반쪽, 그러니까 하반신만 소환하는 실수를 한다. 남은 시간은 단 하루. 대책없이 용감한 발리와 지나치게 소심한 이안, 달라도 너무 다른 두 형제는 아빠를 온전한 모습으로 되살리기 위해 마법의 돌 ‘피닉스 젬’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난생 처음 접한 ‘진짜 마법’에 이안(왼쪽)과 발리 형제는 아빠의 반쪽, 그러니까 하반신만 소환하는 실수를 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난생 처음 접한 ‘진짜 마법’에 이안(왼쪽)과 발리 형제는 아빠의 반쪽, 그러니까 하반신만 소환하는 실수를 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솔직히 말하면, 이 영화는 <토이 스토리4>, <코코>, <인사이드 아웃> 등 디즈니·픽사의 앞선 작품을 능가하는 ‘최고의 결과물’은 아니다. 댄 스캔론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출발했지만, ‘판타지 세계에서 펼쳐지는 형제의 모험’이란 큰 줄거리는 흥미롭기보단 진부하다. ‘스스로를 믿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기존 디즈니·픽사의 주제의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온워드>를 두고 ‘볼 가치가 있는 영화인가’ 하고 묻는다면 단숨에 ‘그렇다’ 답할 수 있다. 그간 디즈니·픽사가 시도해온 다양성과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실험이 어디까지 진보했는지, 차별과 편견 대신 존중과 인정이 자리한 세상은 어떤 모습일지 상상할 기회를 주는 작품이기 때문이다.

하반신만 돌아온 아빠와 형제가 몸으로 교감하는 장면들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매개로 하는 모든 관계 맺기를 연상시킨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하반신만 돌아온 아빠와 형제가 몸으로 교감하는 장면들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매개로 하는 모든 관계 맺기를 연상시킨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개성 강한 판타지 종족들을 통해 발현되는 인종·성별·외모·성적지향과 같은 다양성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묘사돼 예민한 사람조차 눈을 크게 뜨고 봐야 다름의 차이를 알아챌 정도다. 디즈니·픽사 장편 애니메이션 첫 성소수자 캐릭터인 여성 외눈박이 경찰 스펜서는 애인의 자식 때문에 골머리를 앓는 동료 경찰에게 “나도 내 여자친구의 딸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을 지경이야”라는 보편타당한 공감의 대화를 건넨다. 이 짧은 대사에서 드러난 스펜서의 성정체성을 이유로 일부 중동국가는 영화 상영을 금지했다고 하니, 다음 세대를 위한 더 ‘좋은 세상’이 영화와 현실 중 어디에 더 가까운지 반추하게 되는 대목이다. 하반신만 돌아온 아빠와 형제가 몸으로 교감하는 장면들은 비언어적 의사소통을 매개로 하는 모든 관계 맺기를 연상시킨다.

개성 강한 판타지 종족들을 통해 발현되는 인종·성별·외모·성적지향과 같은 다양성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묘사돼 예민한 사람조차 눈을 크게 뜨고 봐야 다름의 차이를 알아챌 정도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개성 강한 판타지 종족들을 통해 발현되는 인종·성별·외모·성적지향과 같은 다양성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묘사돼 예민한 사람조차 눈을 크게 뜨고 봐야 다름의 차이를 알아챌 정도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초반 등장인물들의 말과 행동은 어딘지 모르게 어수선하고 산만하다. 하지만 ‘진정한 나’(NEW ME)를 찾아가는 과정을 좇다보면 이 역시 의도된 연출임을 깨닫게 된다. 편의주의만을 좇아 발달한 문명에 아등바등 적응해야 하는 현실은 마법을 사용하던 과거보다 나을 게 없다. 주인공은 마법을 통해 성장하는 이안이지만, 남에게 손가락질 받을지언정 억척같이 자기 소신대로 살아가는 형 발리에게 자꾸만 이입하게 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키오스크(무인 단말기)가 사람을, 메신저 기프티콘이 정성어린 손편지를 대체하는 시대에 우리가 얻은 것은 무엇이고, 잃은 것은 무엇인가. “마법은 (형편이) 어려운 친구들의 편이었다.” 영화의 맨 처음 흘러나오던 내레이션 한 구절이 그 힌트가 될 수 있겠다. 17일 개봉. 102분. 전체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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