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29일 후시녹음과 동시녹음을 아시나요?

2020.02.29 00:05 입력 2020.02.29 00:14 수정

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1980년 2월21일 후시녹음과 동시녹음을 아시나요?

영화 동시녹음과 후시녹음을 아시나요?

한국콘텐츠아카데미 공식 블로그를 보면, 후시녹음은 편집 이후 편집된 영상을 보면서 대사와 내레이션, 음향 효과 등을 녹음하는 것을 말합니다. 후시녹음에서는 배우들의 대사 등을 다시 녹음하거나, 촬영 현장에서 녹음되지 않거나 과장되게 표현해야 하는 현장음(문소리, 발자국 소리 등), 영화 프레임 밖에서 발생하는 보이스 오버나 내레이션, 영화 음악 등을 녹음하게 됩니다. 후시녹음의 장점은 동시녹음과 반대로 비용이 비교적 적게 든다는 점입니다. 다만 그림을 보고 입을 맞추는 과정에서 부자연스러운 상황이 연출될 수 있고, 현장에서 얻을 수 있는 현장음을 모두 만들 수 없다는 한계가 있습니다.

동시녹음은 촬영과 동시에 녹음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촬영 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소리들, 주로 배우들의 대사나 각종 현장음, 공간음 등을 녹음하게 됩니다. 동시녹음의 장점은 현장감이 높다는 것입니다. 현장에서 바로 녹음을 하기 때문에 연기자들의 작은 호흡까지 담아 낸다거나, 현장의 자연스러운 소음들도 담을 수 있습니다. 다만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어갑니다. 현장에서 바로 녹음을 하려면 영상의 흐름을 깰 수 있는 소리를 차단하는 준비를 미리 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 만만치 않은 인력과 시간이 들어갑니다.

한국콘텐츠아카데미 공식 블로그 갈무리.

한국콘텐츠아카데미 공식 블로그 갈무리.

40년 전 오늘 경향신문엔 ‘활기 띠는 동시녹음’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영화계에 동시녹음 영화 제작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하는 기사였습니다.

“우진필름이 1977년 동시녹음 기재를 도입, 동시녹음 영화를 잇달아 제작한 데 이어 최근에는 태창, 우성 등의 영화사가 최신 기재들을 들여와 제작준비를 서두르고 있는 것. 이들뿐만 아니라 4~5개 영화사에서도 동시녹음 기재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거나 영화사 간부들이 외국에 나가 상담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한국의 동시 녹음영화 선두주자는 우진필름이었다고 합니다. 우진필름은 1977년 독일제 촬영기인 아리 플렉스 2대를 도입한 이래 마이크로폰 등 각종 부속 기재들을 계속 사들였습니다. “이들 기재보다 구형인 미첼 등 모두 3대의 촬영기를 갖춘 우진은 1978년 <율곡과 신사임당>을 제작,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본격 동시녹음 영화를 선보였으며 지난해에는 <심봤다> <가시를 삼킨 장미> 등을 계속해서 만들었다.”

1979년 동시녹음 영화인 <심봤다>로 대종상 감독상을 받기도 했던 우진필름의 대표 겸 감독인 정진우씨는 1980년에도 <바다로 간 목마>의 촬영을 진행했습니다. 우진에 이어 태창에서도 1979년 미국의 최신 기재인 미첼 BNCR을 도입, 기술진에 대한 훈련까지 마쳤습니다. 1억원대의 자금을 들였다는 이 촬영기로 제작될 첫 작품은 이어령씨의 원작을 각색한 <흙 속에 저 바람 속에>였다고 합니다.

[오래 전 ‘이날’]2월29일 후시녹음과 동시녹음을 아시나요?

각 영화사들이 후시녹음보다 동시녹음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무엇보다도 시설 현대화를 통한 국산 영화의 수준 향상에 있었다고 합니다. “대부분의 촬영 기재가 2차 대전 때 홍보 뉴스 영화를 촬영하던 것이거나 일본에서 중고품을 들여와 부속품들만 그때 그때 바꿔서 사용하고 있다. 영화는 적당히 만들고 흥행에만 신경을 써온 영화계의 고질적인 사고 방식 때문이었다. 1대에 1억원대를 호가하는 동시녹음 기재뿐만 아니라 제작비도 후시녹음 영화보다 크게 더 들어 아예 동시녹음 영화를 생각지도 않았던 것.”

특히 한국영화가 국제무대에 진출하려면 세계적 추세인 동시녹음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 국산영화가 칸, 베를린 등 세계적인 영화제에 자주 출품됐으나 대부분 예선에서 탈락되곤 했다. 작품의 전체적인 수준이 뒤떨어진 것이 가장 큰 이유겠으나 1950년대에나 볼 수 있던 후시녹음 영화로는 발도 붙일 수 없다는 것이 영화 전문가들의 견해다. 미국에서는 이미 1972년에 제작된 <재즈싱어>를 처음으로 동시녹음 영화 시대가 계속되고 있다.”

MBC 예능 라디오스타 화면 갈무리.

MBC 예능 라디오스타 화면 갈무리.

35년차 배우 박중훈은 동시녹음과 후시녹음을 모두 경험한 영화인입니다. 그는 지난해 8월 MBC 예능 ‘라디오스타’에 출연해 후시녹음에서 동시녹음으로 넘어가던 영화계 상황을 생생히 전했습니다.

“제가 첫 촬영을 1985년 11월11일 했다. 영화 3개 정도까지를 후시녹음 시대에 찍었다. 동시녹음 첫 작품은 <칠수와 만수>다. 그 전에는 신인 배우들은 후시녹음을 안 시켰다. 왜냐하면 아날로그 시절이니까 필름을 틀어놓고 10여분동안 한번에 오케이가 돼야 한다. 신인 배우는 감정이 좋으면 입이 틀리고 입이 맞으면 감정이 안 돼 성우별로 대신 녹음을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처음 동시녹음할 때는 기기나 기술에 문제가 있어서 속삭이면 안 들렸다. 약간 과장해야 했다. 1990년대 때 제 영화를 보면 과장된 느낌이 있는 게 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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