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 바뀐 금호타이어 ´10년의 방황´ 질곡의 역사

2018.04.02 15:44

법정관리 문턱까지 내몰렸던 금호타이어가 지난 1일 극적으로 회생했습니다. 금호타이어 조합원 2741명(투표율 91.8%)이 참석한 찬반 투표에서 찬성 1660명(반대 1052명)으로 중국 타이어업체 더블스타에 금호타이어를 매각하는 방안을 최종 가결했지요. 채권단이 긴급자금을 수혈하기로 하면서 유동성에는 숨통이 트였지만, 2004년 중국 상하이차의 쌍용차 인수처럼 ‘먹튀’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는 여전합니다.

투표소 현장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예상대로 된 것 같다”면서도 표정이 어두웠습니다. “회사는 남았지만 마음이 무겁다”, “먹튀를 막을 장치가 필요하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네요.

<관련기사▶금호타이어 노조, 찬성 60%로 ‘해외매각’ 가결>

<관련기사▶ >광주공장 투표소 “예상대로 된 것 같다”…한쪽선 ‘아이고~’ 한숨>

지난 1일 한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원이 해외매각 찬반투표가 실시된 광주 광산구 소촌동 광주공장에서 바닥에 흩어진 노조회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1일 한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원이 해외매각 찬반투표가 실시된 광주 광산구 소촌동 광주공장에서 바닥에 흩어진 노조회보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국내 타이어업계 1위였던 금호타이어는 처음 워크아웃을 신청한 2009년 이후 지금껏 굴곡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위기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창립 60주년이던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6조4255억원에 인수할 때 당시 그룹사에 속해있던 금호타이어는 이 중 5200억원을 부채로 조달하면서 힘을 쏟았습니다. 또 중국·베트남 등 해외 공장을 확대하며 차입금을 늘리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결국 금호타이어는 2009년 워크아웃에 들어갑니다.

2009년 12월 <관련기사▶금호산업·타이어, 워크아웃 신청한다 >

2009년 12월 <관련기사▶ 워크아웃 결정 왜…계열사 매각 등 잇단 무산 ‘자력회생 실패’>

2009년 12월 <관련기사▶대우건설 인수가 결국 ‘화근’ >

2009년 12월29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앞둔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본사 건물에 불이 환하게 켜진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9년 12월29일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앞둔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본사 건물에 불이 환하게 켜진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워크아웃을 앞두고는 형제끼리 경영권 분쟁도 벌어집니다.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형제의 난’ 이후 금호타이어는 박삼구 회장이 경영을 맡게 되죠.

2009년 7월 <관련기사▶[뉴스분석]금호, ‘형제경영’에서 ‘부자경영’ 전환하나 >

2009년 8월 <관련기사▶금호家 ‘형제의 난’ 1개월 >

이후 고강도 구조조정에 들어간 금호타이어는 2014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하는 데 성공하지만 이후에도 꾸준히 실적 악화에 시달려왔습니다. 워크아웃에 들어갔을 때도 오너 일가가 약속했던 사재 출연을 하지 않거나, 되려 오너 일가가 보유한 주식을 시장에 하는 등 ‘도덕적 해이’를 보여 도마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구조조정이 한창일 때 오너 일가의 폭행 사건도 있었죠.

2010년 2월 <관련기사▶ [재계엿보기]박삼구 회장은 ‘대마불사’ 믿는 건가>

2010년 2월 <관련기사▶‘구조조정 마찰’ 벼랑 끝 몰린 금호타이어 >

2010년 4월 <관련기사▶ 금호타이어 완전 자본잠식>

2010년 12월 <관련기사▶이번엔 금호家 ‘직원 폭행’ >

2010년 1월 금호타이어에 대한 제1차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렸다. 채권단 관계자들이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0년 1월 금호타이어에 대한 제1차 채권금융기관협의회가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에서 열렸다. 채권단 관계자들이 회의를 지켜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금호타이어는 2014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한 뒤에도 줄곧 실적 악화에 시달렸습니다. 결국 2016년 9월 채권단은 금호타이어 지분 매각을 개시합니다. 여기서 처음 중국 더블스타가 등장했구요, 박삼구 회장은 채권단과 대립각을 세우며 인수 협상을 무산시키려 했고, 지지부진 이어져온 협상은 결국 지난해 8월 매각 무산으로 끝이 납니다. 뒤이어 지난해 9월 채권단 주도의 자율협약이 시작되고, 채권단이 올해 1월 외부 자본유치로 금호타이어를 정상화하기로 결정하면서 더블스타가 다시 등장한 겁니다.

2017년 3월<관련기사▶금호타이어 ‘친정’ 못 가나 >

2017년 6월<관련기사▶금호타이어 채권단 - 박삼구 회장 ‘벼랑 끝 대치’ >

2017년 9월<관련기사▶금호타이어 채권단, 더블스타와 매각 협상 일단 결렬 >

2017년 9월<관련기사▶ 금호타이어 다시 ‘구조조정’…박삼구 퇴진>

이후 더블스타 매각 추진 방침에 노조는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더블스타 회장이 직접 한국을 찾았지만 노조의 마음을 돌릴 수 없었던 데다, 금호타이어를 인수하려는 국내 기업이 있다는 소문도 돌면서 금호타이어 사태는 미궁에 빠지는 듯 했습니다. 최근에는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금호아시아나가 서울 신문로 본사를 매각한다는 소식도 있었습니다.

2018년 3월<관련기사▶“해외매각 반대” 금호타이어 노조는 고공농성 돌입>

2018년 3월<관련기사▶‘항공’ 살리려 본사 사옥 판 금호아시아나 >

2018년 3월<관련기사▶개구리가 뱀 삼킬까? 타이어뱅크, 금호타이어 인수의사 밝혀 >

지난달 2일 광주 광산구 영광통사거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인근 송신탑에 올라 고공농성 중인 금호타이어 노조 간부가 물품을 끌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2일 광주 광산구 영광통사거리 금호타이어 광주공장 인근 송신탑에 올라 고공농성 중인 금호타이어 노조 간부가 물품을 끌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노조가 채권단이 노사 합의 마지막 시한으로 정한 30일 자정 직전 더블스타 자본유치에 합의하면서 상반기 내에 금호타이어 주인은 지분 45%를 확보한 더블스타로 바뀌게 됐습니다. 더블스타의 ‘안면몰수’는 언제든 가능합니다. 더블스타가 약속한 ‘3년 고용보장’, ‘채권단 5년 지분매각 제한’ 등은 기한이 지나면 언제든 공장을 닫고 떠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향후 채권단과 더블스타는 정식 매각 계약을 체결하고, 긴급 자금 수혈에 들어갑니다. 30일이 만기였던 1조3000억원의 채권단 채무는 자동으로 연장되고 채권단은 추가 자금을 투입하기로 했습니다. 새 주인을 찾는 데 10년이 걸린 금호타이어, 앞으로는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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