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닉5? 모델3? 고민되네!” 테슬라 가격 인하에 미국인들은 ‘갈팡질팡’

2023.01.24 08:05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로이터연합뉴스

“테슬라의 가격 인하와 세액공제 배제에 대해 현대자동차는 어떻게 대응할까?”

지난 13일, 미국 최대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 이런 제목의 글이 올라왔습니다. 테슬라가 미국 시장에서 최대 20%에 이르는 가격 인하를 전격 발표한 바로 그 날입니다. 이 글은 레딧의 ‘아이오닉5’ 게시판에 올라왔는데요, 현대차의 순수 전기차인 아이오닉5의 차주이거나, 출고를 기다리고 있거나, 구입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게시판입니다. 글쓴이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정말로 아이오닉5가 마음에 들어. 하지만 5만3000달러(로 새롭게 책정된) 테슬라 모델Y가 날 부정적인 방향(darkside)으로 기울게 해. 이봐 현대, 내 돈을 얼마나 원하는 거야?”

테슬라가 북미 지역에서 대대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한 지난 13일,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현대차가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레딧 홈페이지 갈무리

테슬라가 북미 지역에서 대대적인 가격 인하를 단행한 지난 13일, 미국 온라인 커뮤니티 레딧에는 “현대차가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레딧 홈페이지 갈무리

전기차 선도업체인 테슬라가 가격을 대폭 낮췄으니 현대차도 추가 할인을 해 주지 않을까 기대하는 취지의 글이었습니다. 곧바로 3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습니다. 아이오닉5를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시행 전에 구입해 세액공제 혜택을 받았던 것으로 보이는 한 누리꾼은 “나는 내 아이오닉5를 사랑하지만 (테슬라의) 모델Y 대신 선택한 유일한 이유는 가격 때문이었어. 세액공제가 가능했을 때 구입해서 다행이야. 지금은 모델Y 사륜구동(AWD)이 내 아이오닉5 리미티드(최상위 트림)보다 저렴해졌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에게 차를 판 딜러에게 아예 재협상을 걸어 보겠다는 사람도 보입니다. “어제 아이오닉5를 ‘딜러 마크업(미국에서 자동차 딜러들이 받는 추가 마진)’ 3000달러를 붙여서 계약했어. 나중에 차가 나오면 테슬라 (가격인하) 뉴스를 협상카드(bargaining chip) 삼아 금액을 낮춰 보려고 해”.

테슬라냐 현대차냐. 여러모로 보아 최근 전기차를 구입하려는 미국 소비자들이 갈팡질팡하면서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는 모양입니다. 테슬라는 지난 13일 모델3 퍼포먼스를 6만2990달러에서 5만3990달러로 14% 인하했고요, 모델Y 롱레인지 가격은 6만5990달러에서 5만2990달러로 무려 20% 낮췄습니다. 모델 S·X도 각각 10~15% 저렴해졌습니다.

지난 1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23 브뤼셀 모터쇼’에 전시된 테슬라 모델S. EPA연합뉴스

지난 13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2023 브뤼셀 모터쇼’에 전시된 테슬라 모델S. EPA연합뉴스

테슬라의 ‘치킨게임’이 북미 전기차 시장에 미칠 여파는 적지 않습니다. 현대차 아이오닉5의 가장 저렴한 등급인 ‘스탠다드’는 미국에서 4만1450달러입니다. 테슬라 엔트리급 차량인 모델3 스탠다드 가격은 4만6990달러에서 이번에 4만3990달러로 3000달러 인하됐는데, 여전히 아이오닉5보다는 2000달러 이상 비싸죠. 하지만 미국에 아직 전기차 공장을 갖고 있지 않은 현대차는 지난해 8월부터 시행된 IRA 규정의 세액공제를 받을 수 없습니다. 테슬라는 그렇지 않죠. 모델3 스탠다드에 세액공제 혜택 7500달러를 적용하면 최종 가격은 3만6490달러로 아이오닉5보다 4960달러 저렴해집니다. 원화로 치면 600만원 돈이죠. 아이오닉5를 장바구니에 담아 놨던 소비자들의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자연스럽습니다.

테슬라가 IRA 혜택을 노리고 세액공제 대상이 되는 5만5000달러 아래로 가격을 확 낮췄다는 분석이 첫손에 꼽히는 이유입니다. 이로써 테슬라 주력 라인업의 가격대는 5만~6만달러에서 4만~5만달러(IRA 혜택을 적용하면 3만달러대까지)로 덜컥 내려왔습니다. 현대차 아이오닉5, 기아 EV6, 폭스바겐 ID.4, 포드 마하-E 등 전기차 후발 주자들이 포진해 있는 그 가격대입니다.

테슬라 차종별 할인폭 비교

테슬라 차종별 할인폭 비교

전기차뿐만일까요. 내연기관 승용차들도 영향을 받습니다. 현대차 쏘나타, 토요타 캠리, 혼다 어코드…. 북미 중·저가형 승용차 시장에 버젓이 자리잡고 있는 이들 차종의 가격은 대략 2만달러대 중후반~4만달러 선에 걸쳐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적당한 벌이의 중산층이 큰 부담 없이 손에 넣을 수 있는 패밀리카로 여겨져 왔죠. 반면 테슬라는 아직까지 ‘고소득’, ‘얼리 어댑터’ 성향의 사람들이 타는 차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그런데 이번 가격 조정으로 모델3·Y는 중간 소득 소비자에게도 어필할 만한 체급으로 내려온 셈입니다. 심지어 기름값도 들지 않고, 편리한 소프트웨어(자율주행 시스템)까지 달려 있죠. 지금까지 미국 시장에 가성비 차량을 보급해 오던 경쟁사들이 긴장할 수 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가뜩이나 요즘 금리도 높은데 한 푼이라도 저렴한 차를 원하는 마음은 누구나 비슷하겠죠. 잠시 중국 이야기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중국에서도 모델3는 26만5900위안(약 4900만원)에서 22만9900위안(약 4200만원)으로 13% 가량, 모델Y가 28만8900위안(약 5300만원)에서 25만9900위안(약 4800만원)으로 10% 가량 저렴해졌습니다. 덕분에 테슬라의 중국 판매량은 전년 대비 76% 늘었습니다. 가만히 두고 볼 중국 회사들이 아니죠. 중국 전기차 업체 싸이리스가 ‘아이토’의 최저가를 모델Y와 비슷한 수준으로 낮추는 등 곧바로 추격 할인에 나섰습니다. 태평양 너머 미국 소비자들이 기대감을 갖는 것도 당연합니다.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현대차 제공

현대자동차 아이오닉5. 현대차 제공

그러나 현대차를 비롯한 전통 완성차 회사들은 아직 ‘관망’ 분위기입니다. 북미 시장에서의 가격 수정 여부를 묻는 질문에 현대차 관계자는 “딱히 대응할 계획은 없다”라며 “테슬라 홀로 가격이 올라갔다 내려온 것이라서 굳이 반응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가격을 갑자기 낮춰서 뉴스를 타는 것이지, 오히려 테슬라는 ‘카플레이션(차량 가격 인플레이션)’이 극심했던 최근 1~2년 동안에는 가격을 꾸준히 올리기만 했죠. “싯가에 사는 자동차” “회슬라”라는 푸념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이제야 다시 상승폭만큼 끌어내리고 있는 것인데 굳이 이 변덕을 따라갈 필요가 있겠느냐는 겁니다. 기존 차주들의 반발도 고려해야 합니다. 폴 필포트 기아 영국 법인장은 최근 외신에 “테슬라의 조치는 장기적으로 차량의 잔존가치에 위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며, 리스 등 할부금융을 이용해 기아 차량을 샀던 사람들의 자산가치 보호를 위해서라도 가격 인하는 고려하고 있지 않다고 밝혔습니다.

아직 국내 전기차 시장은 잠잠합니다. 물론 테슬라는 한국에서도 모델3를 기존 7034만원에서 6434만원으로 낮추는 등 전반적인 조정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상대적으로 비싼 축에 속하기 때문에 경쟁 브랜드의 추격 할인 같은 소식은 들려오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한국 시장이 테슬라가 촉발한 ‘전기차 대전’의 무풍지대로만 남아 있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올해도 현대차 코나EV·아이오닉7,기아 EV9 등 국산차를 비롯해 아우디 A6 이트론, BMW i7, 볼보 폴스타3 등 쟁쟁한 회사들의 전기차 출시가 예정돼 있습니다. 중국 내수시장을 장악한 비야디(BYD)도 중·저가 모델을 앞세워 올 하반기 한국 시장 진출을 앞두고 있습니다. 세계 전기차 시장의 ‘테스트베드’라 불리는 한국에서 선택의 폭이 점점 늘어나는 만큼, 치열한 가격 경쟁과 비용적인 편익을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요. 앞서 레딧의 글쓴이도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테슬라의 가격 공세가 전기차 시장을 변화시키는 걸 지켜보는 일은 굉장할 거야”. 2023년, 한국 소비자들이 멋진 전기차를 합리적인 가격에 만나볼 수 있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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