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딸 김용화씨가 증언하는 ‘비극의 가족사’

2005.01.16 17:06

김철수의 가족사는 분단과 이데올로기 대립의 비극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다시쓰는 독립운동列傳] 막내딸 김용화씨가 증언하는 ‘비극의 가족사’

동생 광수씨와 복수씨도 일제시대 독립운동에 매진했다. 해방 이후 남로당에서 활동하다 한국전쟁 때 월북했지만 민족주의적인 성향 때문에 주류에 들지 못하고 1960년 전후로 해 숙청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철수의 3남2녀의 삶도 기구했다. 큰딸 금남씨는 일본 메이지대를 중퇴한 뒤 광주학생사건 등에 관여하다 60년대 초반 지병으로 사망했다. 큰아들 용선씨는 전북 정읍에서 농사 짓다 얼마전 병으로 사망했다. 둘째 아들 용일씨는 월북한 뒤, 막내아들 용덕씨도 해방 직후 소련으로 유학을 간 뒤 생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막내딸 용화씨(85)는 전북 부안군 계화면 돈지에서 홀로 살고 있다. 이 지역에서 ‘용화 할머니’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도 거물 사회주의자의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오랜 세월 공안당국의 감시 아래 살았다. ‘소유’ 개념과는 거리가 멀었던 아버지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어려운 삶을 살았다.

지난 8일 돈지의 자택에서 만난 용화 할머니는 85세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또렷한 기억력으로 지난 세월을 이야기했다. 이기준 교육부총리 임명 파문 등 국내 정치 상황과 국제 정세에도 해박했다.

용화 할머니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묻자 대뜸 “내가 1919년생이여. 동짓날인가에 태어났는데 아버지가 3월1일 생이라고 출생신고를 하셨어. 그런 분이셨어”라고 말했다.

용화 할머니는 나이 스물이 되어서야 아버지 얼굴을 보았다. 그는 “1938년쯤에 아버지가 10년가량 일본놈한테 붙잡혀 있다 대전형무소에서 출감할 때 처음 뵈었다”고 말했다.

용화 할머니는 61년부터 이곳에서 약방을 운영했다. 항상 감시의 눈길이 쏟아졌다. “가족이 뭔 죄여. 그래도 아버지가 참 대단하셨지. 한번은 맨날 약방 앞을 지키고 있던 경찰관 하나가 약방 안에 들어와서는 ‘선생님을 존경합니다’라며 눈물을 흘리는 거야.”

아버지의 삶에 대한 원망은 없었느냐는 질문에 “14년간 감옥생활을 하다 나와서 조직이 없어 결국 당신 뜻을 못 이루셨다”면서 “그래도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 생각이 옳았으며 낙향 뒤에도 항상 양심에 따라 결백하고 꼿꼿하게 사셨다”고 말했다.

용화 할머니는 “내가 죽기 전에 북에 있는 가족들을 한번 만나보는 게 소원”이라며 “빨리 통일이 돼 아버지의 독립운동이 제대로 평가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종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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