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에게 ‘직함’을 불러주세요

2011.03.31 19:58
이유라 |서울특별시 북부노인병원 정신과 과장

65세 이상 노인 환자들 아직 자기가 젊다고 생각

‘어르신’ 호칭 싫어해

고령화 사회가 가속화하면서 노인인구 비율이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따라 노인성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 역시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노인들은 대개 3가지 이상 복합질환으로 병원을 찾는 경우가 많고, 평균 입원기간도 일반환자에 비해 2~3배 정도 길다. 입원기간이 길다보니 병원생활을 하는데 여러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이런 환자들을 위해 병원마다 체조나 노래부르기를 비롯해 음악요법과 미술요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자존감을 높여주고 그들의 존재를 계속 확인시켜주는 일이다.

먼저 환자를 부르는 호칭부터 세심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요즘 병원계에서 소리 높여 외치고 있는 ‘눈높이 서비스’의 기본 중 하나가 환자를 부르는 호칭일 것이다. 호칭을 사용할 때는 가급적 환자의 특징과 사회적 지위 등을 고려해 가장 적합한 용어를 적용해야 하며, 정감 있고 신뢰감 있는 목소리로 불러줘야 한다. 특히, 노인환자의 경우에는 잘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비교적 큰 소리로 눈을 맞춰 가며 불러줘야 한다.

병원 종사자들이 입원 중인 노인 환자를 부를 때 흔히 ‘어르신’이라고 표현하는데 노인환자들은 이 호칭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부르는 사람은 선의에서 이런 호칭을 사용했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선 유쾌한 기분이 들지 않는 것이다.

얼마 전 필자가 몸담고 있는 서울특별시 북부노인병원에서 입원환자 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노인환자들은 사회 활동을 하던 때 직함을 불러주기를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회적으로 인정받거나 전문직에 종사했던 환자들의 경우 이런 경향이 더 짙었다. 교장선생님, 중령님, 사장님, 지점장님, 교수님처럼 직장에서의 직함으로 불리는 것을 좋아한 반면, 일반적으로 병원에서 부르는 ‘환자’라는 호칭을 가장 싫어했다. 직장에서의 직함이 없는 환자들도 ‘어르신’이나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호칭보다는 ‘~님’이라고 불러주는 것을 좋아했다. ‘어르신’이나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호칭은 자신을 늙었다고 생각하게 만들어서 싫어한다고 답했다. 법적인 나이로 65세 이상을 ‘노인’이라 부르지만 실제 65세 이상 환자들은 자기를 노인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아직 젊고 사회·경제적 활동을 할 수 있는 나이로 생각하는 것이다.

병원 종사자 이외에도 노인환자의 자존감을 북돋아주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또 하나의 사람들은 바로 가족이다. 환자의 치료 의지를 북돋아주기 위해 부모님의 젊었을 적 이야기나 부모님 때문에 힘이 됐던 일들에 대해 자주 언급하는 것이 도움이 되며, 사소한 일에도 자주 칭찬해드리는 것도 도움이 된다. 누구나 한번쯤 부모님이 ‘엄마 손은 약손’이라며 아픈 배를 정성껏 쓰다듬어 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이젠 우리가 부모님을 위해 약손을 내밀어야 할 시기다.

[의술 인술]환자에게 ‘직함’을 불러주세요

김춘수 시인의 ‘꽃’이라는 시를 보면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구절이 있다. 입원해서 치료를 받는다고 하지만 환자가 아닌 한 명의 인간으로 대할 때 환자들에게 더욱 치료 의지를 북돋아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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