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며시 고개를 드는 ‘팁 문화’ 우리도 이제 시작인가?

2023.08.05 08:00 입력 2023.08.06 10:22 수정

팁(tip·봉사료) 문화가 우리 사회에도 정착할까? 국내 최대 모빌리티 플랫폼 카카오T가 택시기사에게 팁을 주는 서비스를 도입해 이용객들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시작됐다. 여기서 배달앱 배달의민족이 소비자가 내는 배달료를 ‘배달팁’이라고 명명하며 요금 개념을 희석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짜장면 한 그릇도 눈치 보지 않고 공짜 배달을 받았던 옛날을 그리워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팁 문화가 일상적인 미국은 정작 과도하게 상승하고 있는 팁으로 인해 ‘팁플레이션’ 몸살을 앓고 있다.

카카오T는 지난달 19일부터 ‘감사 팁’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승객이 운행을 마친 뒤 기사에 대한 별점 평가를 하며 5점 만점을 줄 때 1000원, 1500원, 2000원 중 선택해 팁을 추가 결제하는 제도다. 이에 고물가시대에 팁 문화를 조장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카카오T는 지난달 19일부터 ‘감사 팁’ 시범서비스를 시작했다. 승객이 운행을 마친 뒤 기사에 대한 별점 평가를 하며 5점 만점을 줄 때 1000원, 1500원, 2000원 중 선택해 팁을 추가 결제하는 제도다. 이에 고물가시대에 팁 문화를 조장한다는 비난 여론이 일고 있다.

국내 팁 문화 슬슬 도입되나

국내에 팁 문화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값비싼 부위의 고기를 구워주는 식당 직원이나 고급 횟집 ‘실장님’에게 만 원짜리 한 장 ‘찔러주는’ 것은 어른다움의 표상이었다. 그렇게 제공된 팁은 더 좋은 부위의 고기 혹은 각별한 서비스로 돌아왔다. 팁 개념보다는 고객과 종업원 사이 주거니받거니 하는 정의 의미가 더 진했다.

이런 한국식 팁 관행은 소비 세대가 바뀌며 사라지고 있지만, 미국식 팁 개념을 본격 도입하려는 움직임이 보인다. 최근 국내 한 카페가 ‘팁 박스’라고 쓴 유리병을 계산대에 두며 온라인상에서 논란이 됐다. 한 누리꾼은 해당 사진과 함께 “한국에 생기지 않았으면 하는 문화, 팁”이라는 글을 게재했다. 사진이 빠르게 확산하자 다른 누리꾼이 “가게 위치상 외국인이 많다. 외국인들이 자꾸 팁을 어디에 줘야 하느냐 물어서 만든 것으로 안다”며 카페 측을 대변하기도 했다.

최근 모빌리티 플랫폼 카카오T는 본격적으로 ‘감사 팁’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카카오T 측은 “팁 서비스는 카카오모빌리티와 가맹택시협의체 간 상생 논의 테이블에서 처음 논의가 이뤄졌다”며 “서비스 개선을 위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게 선택적으로 팁을 주는 시스템이 있으면 좋겠다는 택시기사들의 요청에 의한 것”이라고 출시 계기를 전했다. 다른 택시 플랫폼 아이엠(i.M)과 타다 등도 팁 정책을 채택하고 있다.

지난달 19일부터 시작한 카카오T ‘감사 팁’은 일반 호출이 아닌 카카오블랙, 모범, 벤티, 블루, 펫 등에만 결제가 적용된다. 별점 5점을 준 경우 최대 2000원의 팁을 줄 수 있다. 카카오T에 따르면 팁은 카드 수수료를 제외한 전액이 즉시 기사에게 전달된다. 승객의 자율적인 선택사항으로, 결제 후 단순 변심에 의한 팁 환불은 불가하다.

최근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된 국내 한 카페의 팁 전용 유리병. 어떤 식으로든 팁 강요는 금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최근 온라인 상에서 논란이 된 국내 한 카페의 팁 전용 유리병. 어떤 식으로든 팁 강요는 금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팁을 받은 기사들이 그 경험을 계기로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것이란 긍정적인 기대도 있지만, 이용객 대부분의 반응은 차갑다. 일부 택시기사의 불친절 사례를 예로 든 한 누리꾼은 “감사 팁이 있으면 마이너스 팁도 있어야 한다. 그간 불친절을 당했던 내 기분도 보상하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택시를 자주 이용하는 30대 회사원 이영재씨는 “팁을 위한 과잉 친절도 부담스럽다. 고객 기본 응대만 받고 기본요금만 내고 싶다”며 “무엇보다 물가가 치솟고 있는데 팁 문화까지 조장하는 것 같아 불편하다”고 말했다.

한 여론조사에서 ‘팁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8425명이 ‘매우 부정적’(37.95%)이라 답했다. 더폴 제공

한 여론조사에서 ‘팁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8425명이 ‘매우 부정적’(37.95%)이라 답했다. 더폴 제공

국내 여론조사 플랫폼 더폴은 2만2203명을 대상으로 카카오택시 팁 제도 도입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팁 문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8425명이 ‘매우 부정적’(37.95%)이라 답했다. 이어 ‘약간 부정적’(23.08%), ‘잘 모르겠다’(16.7%), ‘다소 긍정적’(13.69%), ‘매우 긍정적’(8.58%) 순의 반응이 나왔다.

‘카카오택시의 팁 서비스 도입’에 대한 질문에는 절반 이상인 57.35%(1만2731명)가 ‘시범식으로 도입되다 결국 배달비처럼 사회에 고착될 것이 우려되어 부정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살벌한 미국 팁 문화, 현황은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는 뉴욕 맨해튼의 한 레스토랑은 ‘노팁(non-tipping) 레스토랑’을 표방하며 팁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모았다. 한데 영수증 하단에 팁을 받지 않는다는 공지와 함께 “우리는 직원들과 수익을 공유한다”고 내세웠던 그곳이 은근슬쩍 팁을 징수하기 시작했다. 문의하는 고객에게 그곳이 들려준 답은 “코로나19가 끝나 받는다”가 전부였다.

미국은 고객 서비스의 개념이 가장 발달한 나라 중 하나다. 영수증에 Gratuity 혹은 service charge라 쓰고 하단에 권장 팁의 퍼센티지와 금액을 표기해둔다. 고급 레스토랑은 물론 대중적인 카페테리아에 이르기까지 팁은 기본으로 통한다. 그런데 최근 팁 면제 지대로 통하던 셀프서비스 식당까지 고객에게 팁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식당들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높아진 인건비를 그 이유로 들고 있다. 과도한 팁 요구에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팁 문화가 시작된 미국에서도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과도한 팁에 대한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팁 문화가 시작된 미국에서도 최근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과도한 팁에 대한 불만이 폭증하고 있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에 체류 중인 이지은씨는 3달러짜리 크루아상 한 개를 포장 구매하면서 1달러를 팁으로 내는 황당한 경험을 했다. 태블릿 결제를 하는 과정에서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팁 버튼을 눌러야 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전 10~15% 선이던 팁은 대도시를 중심으로 15~30%까지 상승했다. 미국 소비자들은 인플레이션에 따른 고물가에 ‘팁플레이션’이라는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씨는 “eat in(식당에서 식사) 시에 서빙 담당 직원에게 주던 팁을 서빙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테이크아웃 커피숍이나 ‘셀프 서비스’인 패스트푸드점에서도 받고 있다”며 “최근 스타벅스가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도 팁 시스템 적용을 시작해 논란이 됐다”고 전했다.

비대면 태블릿 결제 시스템으로 인해 오히려 팁이 강제성을 띠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졌다. 이씨는 “코로나19를 겪으며 태블릿에서 주문받는 곳이 늘어났는데, 팁 비율을 선택(보통 15, 20, 25%)해야 계산을 마칠 수 있다. 노팁(No tip)을 선택하기 어려운 구조”라고 호소했다. ‘노팁’ 버튼은 페이지를 넘겨야만 볼 수 있게 만들거나, 기본값을 20%로 설정해 놓는다거나 업장별 꼼수도 가지가지다. 미국 소비자들 사이에서는 팬데믹 기간 동안 급속도로 발달한 각종 비대면 페이 서비스를 거부하고, 현금 사용을 고수하는 이들도 있다. 불필요한 팁 결제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미국 소비자 금융정보 제공 업체 뱅크레이트가 세대 간 팁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결과, 베이비붐 세대의 83%는 레스토랑 서빙 직원에게 항상 팁을 준다고 답했지만,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인 Z세대는 35%만이 팁을 준다고 응답했다. 반드시 팁을 줘야 한다는 소비자의 비율이 2019년 77%에서 올해는 73%로 해를 거듭할수록 줄어들고 있다.

현지에서는 ‘티핑 피로(tipping fatigue)’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팁을 주는 행위로 피로감을 느낀다는 뜻이다. 미국 매체 포천은 “많은 미국인이 팁을 주는 문화에 진저리가 났다”며 “계산 시 직원이 쳐다보는 가운데 팁 비율을 정해야 하는 태블릿 화면을 보며 ‘티핑 피로’를 느끼고 있다”고 설명했다.

천정부지 팁, 어떻게 대응할까

팁에 대한 Z세대의 불만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승용차에서 제품을 받는 드라이브스루 매장에서 팁을 지불하고 “왜 우리가 주지 않아도 되는 팁 요구에 압박을 느껴야 하냐”며 황당해하는 틱톡 영상들이 활발히 공유됐다. 신용카드 결제 후 받은 매장용 영수증에 직접 팁 금액을 써넣어야 하는 레스토랑에서 ‘마이너스 팁’을 적어놓은 영수증 사진도 온라인상에서 회자됐다. ‘비매너적’인 행동임에도 많은 이들이 공감한다는 댓글로 응수했다. 보통 팁은 결제 시 ‘오픈’된 신용카드 정보를 통해 며칠 뒤 빠져나간다.

미국의 경우 음식업 서빙 담당자의 수입 상당 부분이 고객의 팁에서 나온다. 고정 급여보다 팁이 많은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팁으로 임금을 충당해야 하는 종업원의 입장은 어떨까? 미국 50개 주 중 8개를 제외한 42개 주에서는 고용주가 팁을 받는 노동자에게는 법정 최저임금 미만의 기본급을 줘도 된다. 팁과 기본급을 합한 금액이 법정 최저임금 이상이면 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팁플레이션은 쉽게 해소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미국의 에티켓 경전이라고 불리는 ‘에밀리 포스트의 에티켓’은 최신호에서 “우버(승차 공유 서비스), 바텐더, 테이크아웃 계산원, 바리스타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서비스 근로자들에게 팁을 얼마나 줘야 할지를 결정할 자유는 고객에게 있다. 아이패드(태블릿)에서 가장 낮은 팁 옵션을 선택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며 과열된 팁 논쟁에 타협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도입되고 있는 팁 문화에 대해 “고객의 자발적 의지로 제공되어야 할 팁 문화가 시스템 자동 도입으로 강제성 있는 팁 제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도입되고 있는 팁 문화에 대해 “고객의 자발적 의지로 제공되어야 할 팁 문화가 시스템 자동 도입으로 강제성 있는 팁 제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미국 외 지역은 어떨까? 세계미식가협회 한국지부의 김순철 홍보이사는 “미국은 팁의 퍼센티지를 정해두지만 유럽은 그 정도까지는 아니다. 대부분 계산하고 남은 잔돈을 주는 정도다. 프랑스도 식당마다 다르지만 팁이 강제적이지 않고, 10%가량의 팁이 포함된 가격을 메뉴에 표기한 곳도 있다”고 전했다.

김 이사는 팁 문화에 대해 “훌륭한 접객을 받았거나 서비스가 기대 이상이라 감동을 받은 고객이 자발적으로 감사의 표시로 팁을 주는 것은 100% 찬성이지만, 반강제적으로 팁을 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는 것에는 절대 반대”라고 했다.

우리에게도 이제 팁은 현실이 됐다. 지난 7월31일 소비자상담센터에 한 택시 이용 승객의 불만이 신고됐다. 결제를 유도하는 택시 팁과 오결제 환불 불가 시스템에 대한 것이다.

“카카오택시를 앱을 통해 이용한 후, 다음날 다시 카카오택시 이용을 위해 해당 앱을 켰더니 기사에 대한 평점을 기재하라는 내용과 동시에 감사팁 지불에 대한 팝업창이 떴음. 그러나 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이 없었기에 무의식중에 동의한다는 버튼을 눌렀고, 즉시 2000원에 대한 감사팁 결제가 완료되었음. 이에 즉시 고객센터에 연락하여 결제취소를 요청하였으나, 결제 취소가 어렵다는 답변만을 받음.”

해당 불만 사항에 카카오모빌리티 측은 “택시팁 기능의 화면은 별점 참여 등 총 5단계의 버튼을 선택한 이후, 실제 금액 결제하기 버튼은 금액 및 지불수단 선택까지 추가 2단계를 더 눌러야 활성화된다. 총 7단계에 걸쳐 이용자의 선택을 요해 한 두 번의 무의식적인 클릭으로 지불하기는 어려운 구조”라고 입장을 밝혔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는 택시 팁 제도 도입에 대해 “본격적인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은 만큼 협회의 공식적 입장은 아직 없다”면서도 “접수된 민원처럼 고객의 자발적 의지로 제공되어야 할 팁 문화가 시스템 자동 도입으로 강제성 있는 팁 제도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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