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블루크랩이 처치 곤란이라니…그것참 군침 도는 뉴스군요

2023.09.22 20:42

한국인의 ‘먹짱 DNA’

이탈리아 블루크랩이 처치 곤란이라니…그것참 군침 도는 뉴스군요

“음식의 역사를 살펴보면 볼수록 우리 조상들은 먹는 것에 대한 모험심이 대단했다.”

박채린 세계김치연구소 연구원의 말이다. 독성이 있는 식물일지라도 삶고 말리고 불려 어떻게든 나물로 만들어내는 민족.

어떤 식재료든 일단 청으로, 장으로, 술로 담그고 보는 민족. 도전정신과 창의성을 겸비한 ‘먹짱 DNA’는 우리 몸에 새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번엔 이탈리아산 블루크랩이 한국인의 눈에 띈 것이다.

미 교민들 사이서 이미 게장용으로 검증된 ‘블루크랩’…이탈리아 폐기 소식에 한국선 “우리 줘” 각종 요리법 온라인 공유
개불·먹장어·골뱅이·해조류 등 대부분 한국만 먹어…“사계절 뚜렷해 기후 따른 재철 식재료 풍부”
고사리·두릅·쑥 등 ‘나물 문화’, 독소 제거 위해 건조하고 데쳐…영양적인 면에서도 훌륭한 식습관

■저 아까운 것을! 버리려면 우리나 줘요

이탈리아 블루크랩이 처치 곤란이라니…그것참 군침 도는 뉴스군요

“알이 가득 들어 있고 엄청 맛있었습니다. 조금도 비리지 않네요. 내장보다는 살이 더 달다는 느낌이 들긴 하더군요.”

영국에 사는 한 한국 여성이 블루크랩으로 간장게장을 담근 후기를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게재했다. 그는 한국에서는 좀처럼 먹기 힘든 일명 ‘알배기’ 게장이라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줬다. 우리나라는 2006년부터 산란기 알배기 꽃게의 포획을 금지하는 꽃게 금어기가 있다(대략 6월 중순부터 8월 중순까지). 이렇다 보니 게 애호가들은 알배기 블루크랩을 간장게장으로 사시사철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커졌다.

발단은 북미 해안에서 서식하던 블루크랩이 지중해로 유입되어 외래종의 존재감을 드러내면서부터다. 블루크랩은 이탈리아 동북부 해안에서 현지 고급 식재료인 조개를 비롯해 홍합, 굴을 닥치는 대로 먹어 치웠다. 이로 인해 조개 양식업자들이 폐업 위기에 처한 상황이다. 지난 8월에는 이탈리아 동북부 베네토 주지사까지 나서 블루크랩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폐기 처분에 나섰다.

이 뉴스를 보고 한국인들은 군침부터 삼켰다. 대표적인 ‘밥도둑’ 간장게장부터 찜, 튀김 등 각종 블루크랩 조리법이 온라인에 공유됐다. “버릴 거면 우리 줘라.” 이런 목소리가 빗발치자 한 국내 꽃게 수입업체가 발 빠르게 이탈리아를 향해 수입 타진에 나섰다. 이강희 꽃게장터 대표는 “블루크랩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이탈리아 상공회의소 측이 수출에 호의적”이라며 “가장 믿고 맡길 수 있는 업체를 선정해 미팅을 주선해주겠다고 해 기다리는 중”이라고 진행 상황을 알렸다.

일명 ‘미국꽃게’라고도 불리는 블루크랩은 미국 교민들 사이에서는 이미 꽃게 대체재로 간장게장을 담글 만큼 맛이 검증된 종이다. 살이 달고 부드러우며 껍데기가 딱딱한 것이 특징. 다만 이탈리아산 블루크랩의 국내 수입이 결정되는 데는 가격 경쟁력이 관건이다. 이 대표는 “블루크랩이 이탈리아 양식업에 피해를 많이 주는 동시에 소비력이 낮은 상황이라면 가격 메리트가 있지만, 인건비 등 현지 제반 비용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여기에 블루크랩을 즐겨 먹는 미국마저 이탈리아산 수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해 가격이 높아질 여지도 생겼다.

미국 메릴랜드주에서는 블루크랩을 찌거나 ‘크랩케이크’를 만들어 먹는다. 크랩케이크는 한·미 정상의 만찬 당시 등장한 메뉴로 잘 알려져 있다. 반면 생게를 장으로 담가 먹는 나라는 한국이 거의 유일하다. 태국에서는 소금에 발효시킨 게를 파파야샐러드인 솜땀에 곁들이기도 한다.

게장에 대한 조상들의 진심은 과거 조리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주세영 건국대 식품학 교수의 논문 <근대 이후의 조리서를 활용한 게장 조리법의 변천사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간장게장은 조선 시대부터 전해온다. 근대 요리책 중 <시의전서> <부인필지> 등 13권의 조리서에 총 38개의 게장 관련 조리법이 실려 있다. 이들 조리서를 통해 간장뿐만 아니라 소금물, 술, 초, 술지게미 등 매우 다채로운 재료를 사용해 게장을 담가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용감한 자만이 먹을 수 있는 한국 해산물

그 나라 식문화는 자연환경이 결정한다. 뚜렷한 사계절, 난류와 한류가 흐르는 바다, 다양한 지형의 산과 들 그리고 평야에서 우리 조상들은 모험심으로 다채로운 먹거리를 찾아왔다. (위부터) 먹장어, 각종 해조류, 각종 산나물, 개불, 간장게장. 경향신문 자료사진·식품MD 김진영 제공

그 나라 식문화는 자연환경이 결정한다. 뚜렷한 사계절, 난류와 한류가 흐르는 바다, 다양한 지형의 산과 들 그리고 평야에서 우리 조상들은 모험심으로 다채로운 먹거리를 찾아왔다. (위부터) 먹장어, 각종 해조류, 각종 산나물, 개불, 간장게장. 경향신문 자료사진·식품MD 김진영 제공

“Korean delicacies which only the brave dare try(용감한 자만이 시도할 수 있는 한국의 진미).”

싱가포르 여행전문매체 트립질라는 산낙지회, 추어탕, 간장게장, 홍어, 개불, 먹장어(곰장어), 골뱅이를 두고 용기 있는 자만이 시도할 수 있는 한국의 ‘특별한’ 진미라고 소개했다.

그중 개불은 영어로 ‘의충동물’(Echiura) 혹은 그 모양새에 빗대어 ‘스푼웜’(Spoon Worm)이라 부른다. 숟가락 모양의 입으로 바다 밑바닥의 찌꺼기를 떠먹듯 빨아 먹는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원통형의 부드러운 몸체를 가진 개불은 그대로 잘라 초장에 찍어 먹는다. 쫄깃한 식감에 달달한 바다내음이 별미다. 미국 포털사이트에 ‘Spoon Worm’을 검색하면 ‘Korean’이 연관검색어로 함께 뜬다. 세계에서 개불을 먹는 유일한 나라이기 때문이다. 2016년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이 연기한 주인공 ‘천송이’가 즐겨 먹는 음식으로 소개되면서 한때 노량진수산시장은 ‘전지현 개불’을 찾는 중국 및 동남아 관광객으로 붐비기도 했다. 최근에는 그 기이한 모양새로 인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다소 엽기적인 ‘먹방’ 유튜브 채널의 소재가 되곤 한다.

외국인에게는 먹장어를 구워 먹는 것도 신기한 식문화다. 생김새로 인해 ‘Most disgusting animals in the ocean’(바다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동물)로 언급되는 먹장어(Hagfish)는 300억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유일한 생물이다. 스미스소니언 국립 자연사박물관의 톰 먼로 박사는 먹장어를 두고 “현존하는 유일한 화석”이라고 부른다. 그는 “먹장어는 오랜 기간 진화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신체구조를 가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어떤 환경에서라도 먹을 것을 찾는 한국인에게는 그저 맛난 식재료일 뿐이다. 전 세계 먹장어 어업량의 99%는 한국 수출용이다.

‘먹짱’ 한국인 덕분에 혹독한 겨울철 생계를 이어가는 영국 수산업자들이 있다. 바로 골뱅이잡이 어민들이다. 골뱅이는 양식이 불가능해 주로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수입한다. 프랑스 7%, 일본 3%를 제외한 90% 이상이 우리나라로 수출된다. 영국인들은 먹지 않는 골뱅이 5000t가량을 한국이 소비한다. 영국 어민들에게 골뱅이는 효자가 따로 없다.

해산물뿐인가. 서양인들은 흐물거리는 식감 탓에 먹거리로 여기지 않는 해조류를 우리는 자반, 튀각, 지짐이, 무침, 국, 묵, 쌈, 김치 등으로 먹는다. 해조류는 전 세계 8000여종이 분포하며 이 중 500여종이 우리나라 해안에서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는 이 중 50여종을 식용으로 삼는다.

그 역사도 유구하다. 해조류 먹거리가 등장한 최초 문헌은 <삼국사기>다. “아달라왕 4년(157년) 연오랑이 바닷가에서 해조를 따고 있는데 홀연히 한 바위가 그를 싣고 일본으로 가버렸다”라는 문구에서 이미 해조류를 따 먹고 있던 조상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그 어떤 나라보다 다채로운 바다 먹거리를 먹는 이유에 대해 한국전통음식연구소는 “한 나라의 음식 문화는 그 지역의 지세와 풍토, 자연환경을 기본 요인으로 형성되어 왔다”며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해 기후 변화에 따른 제철 식재료가 있다”고 말한다. “특히 삼면이 바다라 동해, 서해, 남해의 해류와 수온 차이에 따라 바다생물의 종이 다양하고 먹거리도 풍부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독소 있는 나물은 말리고 찌고

바다 먹거리뿐만 아니다. 우리나라는 산, 들, 평야 등 여러 형태의 지형에서 생산되는 식재료가 다양하다. 외국보다 식재료 범위가 월등하게 넓은 것이 우리의 ‘나물 문화’다. 외국에서도 이 채취 본능을 숨기지 못해 현지인들은 먹지 않거나 잡초 취급하는 고사리나 쑥을 거둬들인 에피소드가 즐비하다.

전쟁이나 보릿고개 등 어려운 시절을 겪다 보니 씹을 수 있는 식물은 모두 먹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빈 요리연구가는 “나물을 먹어야 했기에 고소함을 더한 양념 문화가 발달한 것”이라며 “식물의 잎, 줄기, 뿌리뿐만 아니라 들깨꽃, 방아꽃, 부추꽃 등 씨앗이 있어 씹을 것이 있는 꽃마저도 튀겨 먹었다”고 말했다.

식물의 자기방어 수단인 독소물질이나 낮은 소화흡수율도 ‘먹짱’ 한국인에게는 통하지 않는 자연의 섭리다. 봄나물인 두릅, 다래순, 고사리 등은 소량의 독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반드시 끓는 물에 데치고 말리는 과정을 거쳐 독성분을 제거해야 한다. 원추리나물처럼 성장 후 독성분이 강해지는 식물은 어린순을 따서 먹는다. 버섯도 마찬가지다. 독성 탓에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날 수 있는 능이버섯, 싸리버섯은 말리고 데쳐 2~3일은 물에 우린 뒤 먹는다.

박채린 연구원은 “외국의 채식은 샐러드 문화지만 우리나라는 숙채 문화다. 다양한 식물을 먹다 보니 독소를 제거하기 위해 건조하고 불리고 삶는 과정이 생겼다. 이로 인해 소화흡수율을 높이고 식이섬유를 얻는 등 영양적인 면에서도 훌륭한 식습관이 자리 잡았다”고 설명한다.

박 연구원은 다양한 식재료 활용에는 우리의 ‘반찬 문화’도 영향을 줬다고 덧붙인다. 대부분 서양식은 원플레이트 문화다. 중국과 일본, 한국의 반찬 문화는 유사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결이 다르다고 한다. 중국은 자체 간이 된 요리 중심 문화이고, 일본은 우리나라만큼 다양한 반찬을 상에 올리지 않는다. 이는 요리하는 주방 환경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조리와 난방 기능이 탑재된 아궁이 문화다 보니 높은 온도의 기름으로 빠르게 주요리를 조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습니다. 밥을 지으면서 그 위에 나물을 올려 쪄낸 뒤 무쳤고 여기에 만들어놓은 김치나 젓갈 같은 발효 반찬을 함께 내다 보니 맨밥에 대여섯 가지 반찬이 한 상으로 올라온 겁니다.”

한국인의 창의성은 김치에서도 드러난다. 문헌에 기록된 김치의 종류는 200~300가지. 그러나 실상은 ‘우리 김치의 종류는 어머니 숫자만큼’이라는 말이 있듯 집집마다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가 다르고 요리법이 다르다. 박 연구원은 2013년 한국의 김치와 김장 문화가 제8차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이유에 대해서도 “김치 레시피가 지닌 다양성과 창의성 면에서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의 다채로운 먹거리 문화를 두고 “혹독한 자연환경과 평탄하지 않았던 역사 속에서 창의력 넘치는 식문화가 탄생한 것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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