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설씨 91년 정권 규탄 분신 후 숨지자 유서, 강기훈씨가 대신 써줬다며 구속해

2013.12.13 06:00
장은교 기자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강기훈 유서대필사건’은 1991년 4월26일 명지대생 강경대씨의 죽음에서 비롯됐다. 강씨가 시위 중 경찰들로부터 집단구타를 당해 사망하자 전국적으로 정권을 규탄하는 움직임이 일었다. 그해 5월8일 오전 6시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씨도 “노태우 정권 퇴진”을 요구하며 서강대 옥상에서 분신했다.

검찰은 “전민련 총무부장이던 강기훈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썼다”며 강씨를 구속기소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유서의 필체와 강씨의 필체가 일치한다”는 감정 결과를 내놨다.

강씨는 혐의를 완강히 부인했지만 법원은 1992년 7월 강씨에게 유서대필과 자살방조 혐의로 징역 3년과 자격정지 1년6월을 선고했다. 강씨는 1994년 8월 만기 출소했다.

강씨가 재심의 실마리를 찾은 것은 그로부터 13년이 지나서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는 김씨의 필적이 담긴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 등을 입수해 유서 필적과의 감정을 실시했다. 진실·화해위는 국과수 등의 감정 결과를 바탕으로 2007년 11월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쓰지 않았다”며 재심권고 결정을 내렸다.

서울고법은 2009년 9월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지만 검찰은 재항고했다. 대법원은 3년 넘게 결정을 미루다 지난해 10월에야 재심개시 결정을 내렸다.

지난해 12월 시작된 재심에서 검찰과 변호인단은 공방을 벌였고, 재판부는 전대협 노트와 낙서장을 국과수에 보내 필적 감정을 의뢰했다.

강씨에게 유죄를 씌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국과수가 22년 뒤에는 강씨의 억울함을 풀어주는 역할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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