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기훈 “내가 승소한다고 이 사회가 달라질 수 있겠나”

2013.12.13 06:00

22년 만에 재심을 통해 누명을 벗을 것으로 보이는 ‘유서대필 사건’의 피고인 강기훈씨(49)는 12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경향신문 기자와 만나 “(억울함을) 오랫동안 품었다”며 “재심이 시작되면 마음이 풀리고 시원해질 줄 알았는데 아니다”라고 말했다.

강씨는 “이 많은 사람이 법정에 나와 있는 건 능력 낭비에 세금 낭비다. ‘아직까지 이런 일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며 재심 재판에 대한 기대보다는 시대에 대한 유감을 내비쳤다.

그는 “내 사건 같은 일들이 계속 반복되고 있어 반면교사도 안된다”고 말했다. 1991년 자신이 김기설씨의 유서를 대필해 자살을 방조했다는 혐의를 뒤집어쓴 것과 유사한 상황이 지금도 반복되고 있다는 얘기다. 강씨는 “현재도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죄악 같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내가 재심에서 승소한다고 하더라도 사회가 달라질 수 있나 싶다”고 말했다.

실제 1991년 강씨를 둘러싼 상황은 지금도 재현되고 있다. 검찰이 강씨를 기소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김기춘 현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 주임 검사는 현 정권의 첫 청와대 민정수석을 지낸 곽상도씨였다. 당시 강씨의 사건을 담당한 서울중앙지검 강력부에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캠프에서 활동했던 남기춘 전 서울서부지검장과 강신욱 전 대법관 등이 있었다. 강씨는 “당시 수사에 관여했던 검사들이 이렇게 될 수 있나 싶게 잘됐다”며 “전례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재심 재판은 지난해 12월 첫 공판이 시작한 이후 1년 넘게 지리한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강씨는 그사이 간암이 재발하는 등 고통을 겪고 있다. 그는 “재심이 이렇게 오래갈 줄은 몰랐다”며 “점점 관심이 없어진다”고도 말했다.

검찰과 강씨의 변호인은 증거 및 증인 채택 여부에서부터 건건이 대립각을 세웠다. 강씨는 검찰에 대해 “재판의 규칙상 검찰과 변호인 양측의 대립으로 시간이 걸릴 수는 있다고 본다”면서도 “(검찰은) 태도 변화가 없다. 전혀 잘못이 없고, 유죄가 확정된 사건을 왜 흔드느냐고만 생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씨는 이날 공판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사실상 유서가 김기설씨 필적이라는 결론을 내렸음에도 “소회를 얘기할 때가 아니다”라며 말을 아꼈다. 그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재판부가 알아서 할 일”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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