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 ‘낙태죄’ 폐지?···헌재 첫 판단은 어땠을까

2018.05.29 16:29 입력 2018.05.29 17:27 수정

·2012년 헌법재판소 ‘낙태죄’ 첫 결정문 보니…

·“태아의 성장 상태를 막론하고 생명권 주체로 봐야” VS “태아의 성장 단계에 따라 달리 볼 수 있어”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지난 24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 낙태죄를 규정한 형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가리는 공개변론이 열리고 있다. /이상훈 선임기자 doolee@kyunghyang.com

‘낙태(임신 중단)’를 처벌하는 법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가. 이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두 번째 판단’이 빠르면 올해 안에 나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헌재는 2012년 ‘4(합헌) 대 4(위헌)’로 낙태죄가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첫 번째 판단을 내린 바 있습니다. ▶관련기사: 낙태 시술자 처벌 ‘합헌’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이진성 헌재소장은 지난해 11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이 했듯이 (임신 후) 일정 기간 내에는 낙태를 허용하는 방향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김이수·유남석 재판관도 “임신 초기 단계에서 원치 않은 임신을 한 경우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이 같은 재판관들의 의견은 2012년 일부 재판관이 낸 ‘낙태죄 위헌’ 논리와 비슷합니다. 2012년 헌재의 첫 번째 판단을 되짚어봅니다. 헌재의 두 번째 판단을 점쳐볼 수 있는 기회가 될지도 모르니까요.

낙태죄와 관련된 법 조항부터 살펴봅니다. 낙태를 한 여성과 이를 도운 의료인은 처벌 받습니다. 다만, 예외는 있습니다. 모자보건법은 임산부나 배우자가 유전적·전염성 질환이 있거나 강간에 의해 임신된 경우, 혈족·인척 간에 임신된 경우 등은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형법 제269조(낙태)① 부녀가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한 때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형법 제270조(의사 등의 낙태, 부동의 낙태)①의사, 한의사, 조산사, 약제사 또는 약종상이 부녀의 촉탁 또는 승낙을 받어 낙태하게 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2012년 헌재의 ‘합헌’ 논리는 이렇습니다. 태아는 자궁에 착상한 이후부터 생명권이 있다고 보고, 임신 기간과 상관없이 낙태는 태아의 생명권을 해친다는 것입니다. 결정문을 일부 발췌합니다.

·“태아는 모(母)와 별개의 생명체이고,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인간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크므로 태아에게도 생명권이 인정되어야 한다.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췄는지 여부를 그에 대한 낙태 허용의 판단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

·“태아도 헌법상 생명권의 주체이고, 따라서 그 성장 상태가 보호 여부의 기준이 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태아는 그 성장 상태를 막론하고 생명권의 주체로서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라는 점에서, 수정란이 자궁에 착상한 이후부터 출산하기 이전가지의 태아를 성장 단계에 따라 구분하여 보호의 정도를 달리하는 것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유전학적 정신장애나 신체질환이 있는 경우와 같은 예외적인 경우에는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모자보건법 제 14조)하여 불가피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 태아의 생명권을 제한할 수 있다. 나아가 자기낙태죄 조항으로 제한되는 사익인 임부의 자기결정권이 태아의 생명권 보호라는 공익에 비해 결코 중하다고 볼 수 없다.”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로까지 그 허용의 사유를 넓힌다면, 자칫 자기낙태죄 조항은 거의 사문화 되고 낙태가 공공연하게 이뤄져 인간생명에 대한 경시풍조가 확산될 우려마저 없지 않다.”



2016년 10월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성&재생산포럼 소속 활동가들이 형법상의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2016년 10월 17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성&재생산포럼 소속 활동가들이 형법상의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반면, 2012년 이강국·이동흡·목영준·송두환 재판관은 태아의 성장 정도에 따라 ‘생명권’을 달리 봐야 한다고 봤습니다. 적어도 임신 초기에는 임산부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해 낙태를 허용해줄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죠. 역시 결정문 일부를 발췌합니다.

·“생명의 연속적 발전과정에 대해 생명이라는 공통 요소만을 이유로 하여 언제나 동일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동일한 생명이라 할지라도 법질서가 생명의 발전 과정을 일정한 단계들로 구분하고 그 각 단계에 상이한 법적 효과를 부여하는 것이 불가능하지 않다”

·“(임신 초기, 즉 임신 1주에서 12주까지의 시기에 대해) 의학계는 일반적으로 태아는 사고나 자아인식, 정신적 능력과 같은 의식적 경험에 필요한 신경생리학적 구조나 기능들은 갖추지 못한 것으로 식별할 수 없고, 더 나아가 여러가지 감각을 통합하여 지각을 형성할 수도 없어 고통을 느끼지 못한다고 본다. 한편 임신 초기의 낙태는 시술방법이 간단하여 비교적 임부에게 안전하다고 할 수 있고, 실제로 낙태로 인한 합병증 및 모성사망률이 현저히 낮다. 따라서 임신 초기에는 임부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여 낙태를 허용해 줄 여지가 크다.”

·“현대의학의 수준에서는 태아가 임신 24주에 이르기까지 폐포가 될 종말낭(terminal sacs)이 아직 형성되지 않아 자궁배출 이후 호흡에 이를 가능성이 전무하며 자존적 생존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보고 있으므로, 태아의 독자적 생존능력은 임신 24주 이후에 인정된다고 봄이 상당하다. 그렇다면 태아가 독자적 생존능력을 갖추었다고 볼 수 있는 임신 24주 이후에는 태아의 생명도 인간의 생명과 어느 정도 동일시할 수 있으므로 임부의 낙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되, 임부의 생명이나 건강에 현저한 위해가 생길 우려가 있는 등 특단의 사정이 있는 경우에만 낙태를 허용함이 바람직하다.”

·“임신중기(임신 13주~24주)의 낙태는 임신 초기(임신 1주~12주)의 낙태에 비해 자궁천공, 출혈패혈증, 양수전색증 등의 합병증 우려가 크고 모성사망률의 위험도 급격히 커져 임부의 생명이나 건강에 위해가 생길 우려가 증가하므로, 국가는 모성의 건강을 증진하기 위해 낙태의 절차를 규제하는 등으로 임신중기의 낙태에 관여할 수 있다고 할 것이다.”


또 이들 재판관은 낙태죄가 사문화 되어 낙태에 근절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습니다. 형사처벌보다는 임부에 대한 사회복지 차원에서의 접근이 생명권 보호에 더 실효성 있는 수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 재판관 출입구 앞으로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심판정 재판관 출입구 앞으로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헌법재판관 9명 중 이 소장을 비롯해 김이수·강일원·안창호·김창종 재판관 등 5명의 임기가 오는 9월19일 끝납니다. 법조계에서는 그 전에 헌재가 두 번째 결정을 내놓지 않겠느냐고 예상합니다. 과연 헌재의 선택은 어떻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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