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만원 사기’ 잡아내도 회수액은 고작 3만원…‘산 넘어 산’ 사기 피해 구제

2021.07.12 17:53 입력 2021.07.12 23:13 수정

‘100만원 사기’ 잡아내도 회수액은 고작 3만원…‘산 넘어 산’ 사기 피해 구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분들이 벌써 50명이 넘어요. 친지 돈까지 빌렸다가 가정이 파탄난 경우는 셀 수도 없고요.” 이민석 금융피해자연대 고문 변호사가 IDS홀딩스 투자 사기 사건 피해자들의 실상을 전하며 한 말이다. 사기범죄는 ‘경제적 살인’이라는 것이다.

12일 대검찰청에 따르면 2019년 전국에서 발생한 사기 범죄 피해액은 24조3201억원이 넘었다. 그러나 그 중 회수된 것은 3%인 7495억여원에 불과했다. 사기범죄 피해자들의 경제적 회복은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사법부는 가해자를 형사처벌한다. 그러나 피해회복은 피해자가 직접 민사 절차를 통하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민사재판이 마무리 되는 데 수년이 걸린다는 점이다. 그 사이 가해자가 범죄 수익을 은닉하거나 탕진해버리는 경우가 많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피의자의 재산을 동결하는 추징·보전 명령 제도가 있지만 일반 사기 사건의 경우 검찰이 신청하는 경우도, 법원이 받아주는 경우도 드물다.

민사재판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으려면 사기피해를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수사기관도 아닌 개인이 관련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렵다. 한 형사전문변호사는 “가해자에게 어떤 재산이 있는 지조차 몰라 압류 절차를 진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사기관에 사건기록을 요청할 수는 있지만 필요한 정보는 대부분 지워져 있는 경우가 많고, 법원을 통해 관련기관에 가해자에 재산 정보를 요청하려 해도 개인정보 보호 등을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형사절차상 구제 제도 있지만 ‘제한적’

형사절차 단계에서 피해 복구를 도와주는 제도가 있기는 하다. 대표적인 것이 ‘형사 배상신청 제도’와 부패재산몰수법이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이 제도를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 이달 초 서울중앙지법은 고수익을 거둘 수 있다고 피해자들을 속여 투자금을 받아챙긴 혐의 등으로 A씨에 대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범죄 수익도 적시됐다. 그러나 피해자 12명이 신청한 형사 배상신청은 모두 기각됐다. 부패재산몰수법에 근거해 검찰이 요구한 추징 청구 역시 기각됐다.

1981년 도입된 형사 배상신청은 피해자들이 형사재판부에 직접 가해자에 대한 배상명령을 내려달라고 신청하는 제도다. 상해·절도·사기·횡령죄 등과 일부 성폭력 범죄 등이 대상이다. 하지만 2019년 법원이 부과한 배상명력액은 전체 사기 피해금액의 0.3%인 720억여원에 불과했다. 대부분이 소액 사기사건이다. 복잡하고 가해자가 여러 명인 다단계 사기 등 대형 사건의 경우 재판부가 형사재판 절차를 진행하기에 급급해 피해액 특정 등 피해자 구제를 위한 별도의 심리를 할 여력이 없다고 한다. ‘재판 절차가 지연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유로 배상명령 신청이 기각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부패재산몰수법에 따른 몰수·추징도 실효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당초 몰수·추징은 범죄수익 등을 몰수해 국가에 귀속시키기 위한 것으로, 범죄 피해재산은 몰수·추징 대상이 아니었다. 그러다 2008년 이 법이 만들어지면서 횡령·배임·사기 등의 특정범죄에 한해, 피해자에 돌려주는 조건으로 가해자의 범죄 피해재산을 몰수·추징할 수 있게 했다. ‘피해자들이 자력 구제를 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다단계 사기처럼 가해자가 많아 개인이 피해 금액이나 배상 책임자를 특정하기 어려운 경우’에 한해 제한적으로 적용된다. 2019년 법 개정으로 다단계 사기도 대상에 포함됐지만 지금까지 피해자 구제를 위한 몰수·추징이 확정된 사례는 아직 없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범죄의 실체적 판단에 매진해야 하는 형사재판에서 피해액에 대한 심리가 주를 이루게 되면 재판에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며 “판사들의 업무가 과중한 상황에서 민사 업무까지 맡게 되면 재판 기간이 길어지고 피의자의 구속 시한을 넘기게 되는 등 차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투자는 개인의 욕구에 따른 행위이며 그 책임도 개인의 것인대 국가가 세금을 들여 구제해 주는 것이 타당한가도 생각해볼 문제”라고 했다.

■“피해 회복 없는 처벌은 무의미해”

법조계에서는 사기사건 피해자 구제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희선 중부대 경찰법학과 교수는 논문 ‘범죄피해자 보호를 위한 배상명령제도의 활성화에 관한 연구’에서 “범죄에 대한 가혹한 처벌도 피해 회복 없이는 복수심의 만족 외엔 무의미하다”며 “국가가 사적 복수를 금지하고 형벌권을 독점하고 있는 만큼 피해회복 역시 국가의 의무”라고 지적했다. 한 법조계 인사는 “판사 수를 늘리고 형사재판시 배상신청을 별도로 심리할 민사재판부를 같이 배정하는 등의 개선이 선행된다면 배상신청 확대에 따른 형사재판 과정의 차질을 최소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추징·보전 명령 신청이나 피해자들의 정보공개 청구를 법원이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한 형사 전문 변호사는 “피해 구제는 피해자가 직접 하더라도 그에 필요한 시간은 국가가 벌어줄 필요가 있다”며 “추징·보전 명령을 통해 가해자의 재산을 일정기간 동결하고, 압류·추징분에 대해서는 국가에 귀속되는 벌금보다 피해자에 대한 배상에 분배 우선권을 줄 필요가 있다”고 했다. 또 “유죄판결이 난 사건의 피해당사자들에 한해 일시적으로라도 가해자의 재산 정보를 추적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했다.

‘100만원 사기’ 잡아내도 회수액은 고작 3만원…‘산 넘어 산’ 사기 피해 구제

■늘어나는 사기 피해자들

사기 범죄는 날로 증가하는 추세이다. 경찰에 따르면 2017년 약 23만건이던 사기범죄는 지난해 34만5000건으로 30% 가량 늘었다. 최수형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가상자산 대한 ‘영끌 투자’ 등을 보면 정상적인 방법으론 성공할 수 없다는 ‘사회에 대한 불신’이 한탕주의를 부추기고 있는 듯하다”며 “이것이 사람들을 ‘유혹’에 취약하게 만드는 듯 하다”고 분석했다.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대표는 “사기 피해자들은 피해회복의 어려움 외에도 바보같이 속았다는 자책감과 사회적 무관심에도 시달린다”며 “이들을 극단적인 선택으로부터 구할 대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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