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해도 집은 공동명의 그대로?"…집값 폭등이 빚어낸 낯선 이혼 풍속도

2022.03.15 16:56 입력 2022.03.15 17:01 수정

A씨는 지난 1월 결혼생활을 끝냈다. 1년 넘는 이혼소송 끝에 배우자와 법적으로 갈라섰으나 둘 사이엔 아파트가 남았다. 최근 2년 새 3억원 가까이 오른 ‘공동명의’ 아파트이다. 법원은 이혼은 하되 아파트는 공동으로 소유하는 형태를 유지하라는 취지로 판결했다.

남이 된 부부가 집을 공동으로 소유하게 될 것이라고 A씨는 예상하지 못했다. 당장 살 곳을 구할 전세금에 생활비가 급한데, 팔 수도 없고 대출 담보로도 잡을 수 없는 아파트 지분 반쪽은 쓸모가 없었다. A씨는 배우자에게 집을 팔아 자신의 지분에 해당하는 금액을 달라고 했으나 배우자는 10년 뒤쯤 팔아 나누자고 버텼다. 수도권 투기과열지구에 위치해 집값이 더 오를테니 공동소유를 유지하자는 것이다. A씨는 재산을 아파트 지분이 아닌 현금으로 분할받기 위해 항소하기로 했다.

최근 한국사회 곳곳을 부글부글 끓게 한 ‘부동산 폭등’은 이혼하는 부부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큰 폭으로 뛴 집값이 이혼소송 중 재산분할 문제를 골치 아프게 만드는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른 것이다.

항공에서 바라본 서울 성동구 지역에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한수빈 기자

항공에서 바라본 서울 성동구 지역에 아파트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한수빈 기자

■갈라섰지만 집으로 엮인 ‘찝찝한’ 이혼

부동산 가격이 상승세를 이어오면서 최근 이혼소송에서 다소 낯선 재산분할 방식이 나타났다. ‘공동명의’ 부동산의 경우 한 쪽에 지분을 몰아주고 지분만큼 현금으로 정산하는 재산분할이 일반적인 방식인데, A씨의 경우와 같이 부동산 지분을 나누는 사례가 늘고 있는 것이다. 법조인들은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말한다. 공동소유 형태의 재산분할은 분쟁의 여지가 남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은 폭등한 집값이 이혼소송의 재산분할 셈법을 바꿔놓은 결과로 풀이된다. 과거라면 부동산을 팔고 나눠갖는 깔끔한 지분 정리를 선호했을 이혼 부부들이 손익을 따져보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이혼한 B씨도 결혼생활 중이던 2017년 분양받은 아파트를 이혼 후에도 공동소유 형태로 유지하기로 했다. 당시 6억원대 분양받은 아파트는 지난해 상반기 10억원 넘는 가격에 거래됐다.

세금과 대출규제도 영향을 준 것으로 풀이된다. 김수진 이혼 전문 변호사(평화합동법률사무소)는 15일 “부동산 가격이 워낙 뛰다보니 재산분할금 역시 집을 처분하지 않고는 마련하기 어려운 수준이 된 반면, 막상 집을 매각하려면 강화된 양도소득세를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면서 “지분을 넘겨받으려는 쪽에서도 대출이 엄격하게 묶여 깔끔하게 재산관계를 정리하기 어려운 경우가 늘었다”고 말했다.

법원도 이런 현실을 고려해 판결을 내리고 있다. 이미주 서울중앙지법 판사는 ‘이혼으로 인한 재산분할에서 혼인관계 파탄 후 부동산의 취득 또는 가액상승과 관련된 실무상 쟁점에 대한 고찰(2021)’ 논문에서 “부동산 가격 상승에 따른 여러 현실적 문제점들로 최근 이혼에도 불구하고 쌍방이 부동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방식으로 분할하는 판결이 선고되기도 한다”고 했다. 이 판사는 이혼 후에도 부동산을 공동소유하는 게 경제적으로 더 이익이라고 보는 당사자 의사, 부동산 시세 상승에 따른 이익을 어느 일방에게만 누리도록 하는 것은 형평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고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현장에선 혼란이 빚어지기도 한다. A씨 사례처럼 한 쪽이 공동소유 형태의 재산분할에 동의하지 않으면 문제가 생긴다. 김 변호사는 “(이례적인 부동산 상승기에) 법원도 당사자에게 어떤 방식이 더 좋을지 고민하는 과도기로 보인다”며 “오직 공동소유 부동산 지분을 정리하기 위해 또 다시 소송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판사는 논문에서 “부동산 가격이 급격히 상승하고 있는 최근 경제적 상황을 고려하면 (공동소유 형태의 분할방식이) 오히려 합리적인 재산분할 방법이 될 수도 있다”면서도 “추후 당사자 간 공유하는 부동산을 두고 분쟁이 재발될 여지가 있으므로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재산분할 방법을 구체적으로 정할 수 있는 ‘조정’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와 빌라촌. /강윤중 기자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 서울스카이에서 내려다본 아파트 단지와 빌라촌. /강윤중 기자

■멈출 줄 모르고 오르는 집값에…“항소심 판단 받아보자”

이혼으로 재산분할을 할 때 아파트값을 산정하는 시점을 두고도 공방이 이어진다. 재판 중 분할대상인 집값이 계속 오르는 경우 집값을 평가하는 시점을 언제로 할지에 따라 재산분할금도 큰 폭으로 달라지기 때문이다. 재산분할을 청구하는 측에선 재판 기간을 끌기 위해 항소하는 사례도 종종 있다.

C씨는 2018년 배우자와 별거하면서 사실상 혼인관계가 끝났다. 둘은 2년 뒤 이혼소송을 했는데 C씨 명의로 된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 값은 별거 당시 7억5000만원에서 2020년 1심이 끝날 때쯤 9억원으로 올랐다. 이후 항소심을 진행하는 동안 집값은 더 올라 항소심이 종결된 2021년에는 실거래가가 11억원을 넘어섰다. C씨는 별거한 2018년의 7억5000만원을 기준으로, C씨 배우자는 항소심이 끝난 시점의 11억원을 기준으로 재산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인철 이혼전문 변호사(법무법인리)는 “보통 1심은 1심 마지막 재판일, 항소할 경우 항소심 마지막 재판변론일을 기준으로 분할대상 재산의 가격을 정하게 된다”며 “재산분할금을 받으려는 입장에선 집값 상승기에 판결이 늦어질수록 유리하다고 보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법원 판례는 분할대상이 되는 재산과 액수는 이혼소송의 사실심(1·2심) 변론종결일을 기준으로 한다. 가급적 재산분할이 실제 이뤄지는 시점의 시세대로 재산을 나누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취지인데, 그렇다 보니 집값 상승기에는 변론종결일을 미루려는 목적으로 항소하는 경우도 나타난다. 엄경천 변호사(법무법인 가족)는 “보통 분할비율을 다투는 김에 항소를 하곤 하는데, 집값이 큰 폭으로 오르는 국면에선 분할비율이나 재산가액 산정 등에 대한 1심 판결에 불만이 없는데도 항소하는 사례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말부터 집값 상승세가 주춤하자 정반대 양상도 나타난다. 김수진 변호사는 “집값 상승 전망이 우세할 땐 쌍방이 아파트를 가져가겠다고 주장하곤 했지만 최근 거래가 얼어붙으면서 입장을 철회하거나, 지분을 넘겨주고 현금으로 정산받겠다는 주장들도 나오고 있다”며 “부동산 시장 상황에 따라 이혼으로 재산분할을 할 때 법정에서 주장하는 내용도 바뀌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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