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 일진 강동석군의 24시

2012.01.11 21:29 입력 2012.01.16 14:12 수정

지각등교 후 돈뜯기, 하교 후 당구장, 잠자기 전까지 게임

■ 07:40

동석이는 눈을 뜨고 학교 갈 준비를 한다. 학교는 집에서 10분 정도 걸린다. 오전 8시지만 곧바로 학교로 향하지 않고 학교 아래 주차장으로 갔다. 벌써 일진 10여명이 모여 있다. 담배를 피우면서 어제 놀았던 얘기를 나누는 중이다. 교문에 들어서기 전까지 2~3대의 줄담배를 피운다. 안 피우고 싶어도 미리 피워두지 않으면 학교에 가서 자꾸 담배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

학교는 오전 8시20분까지 등교를 마쳐야 하지만 아예 늦어야 선생님들에게 안 걸린다. 오전 8시40분쯤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선생님들은 동석이가 늦게 들어오는 것을 봐도 “이제 오느냐”고만 말하고 별다른 지적이 없다. 가끔 생활부장이 교문 앞을 지키고 있을 때가 있다. 이때 잘못 걸리면 교문 앞에서 10분씩 서 있다가 5명씩 “지각하지 말자”를 5번 외쳐야 한다. 담임은 “왜 이렇게 늦었느냐”고 하지만 “죄송하다”고 말하고 그냥 자리에 앉으면 그만이다.

반 애들은 자기네들끼리 놀고 있다. 학교에서 0교시에 EBS 강의를 듣는데 공부 잘하는 애들만 앞자리에 앉아서 듣는다. 걔네들은 우리가 떠들어도 별말이 없다. 반 애들이 떠든다고 고자질을 해도 담임은 “조용히 해”라고 말할 뿐 별다른 제지가 없다.

지난 10일 오후 10시쯤 서울 대학로를 찾은 학생들이 골목길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지난 10일 오후 10시쯤 서울 대학로를 찾은 학생들이 골목길에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 09:00

1교시가 시작되면 좀 듣는 척하다가 졸리면 그냥 엎드려 잔다. 전날 못 잔 잠을 보충할 필요가 있다. 밤새 애들과 카톡을 하고 통화를 하기 때문에 잠이 늘 모자란다. 한 번 자면 4교시까지 쭉 자기도 한다. 아예 깨우지 않는 선생님도 많다. 국어 선생님과 수학·과학·영어·미술 선생님은 아예 깨우는 법이 없다.

체육시간에만 잠을 자지 않는다. 체육시간이 1교시에 잡히면 곧바로 매점으로 가서 애들에게 삥을 뜯는다. 삥뜯은 돈으로 빵을 사먹고 교실로 돌아와 잠을 잔다. 쉬는 시간에 잠을 자지 않을 때는 반을 돌아다니며 ‘빵셔틀’을 시킨다.

6교시까지 삥을 뜯으면 대충 3만~4만원 정도가 나온다. 그 돈으로 노래방과 PC방을 간다. 예전에는 모아오라고 한 목표액만큼 모이지 않으면 애들을 팼다. 요즘은 최대한 모아온 것만 받는 걸로 끝내기로 했다. 지난해 5월쯤에 담임한테 걸려서 크게 혼이 난 탓에 이젠 웬만하면 삥뜯는 일로 애들을 때리지는 않는다.

여자선생님은 솔직히 만만하다. 착한 여자선생님은 우리가 욕을 해도 그냥 넘어간다. 얼마 전에 선생님이 “거기, 수업시간이니까 떠들지마”라고 해서 “아 뭔 상관이야…씨발. XX…X 같은 년아”라고 말했다가 학생부로 끌려갔다. 그렇게 욕을 하고 대들면 마음 약한 선생님은 울거나 그 자리에서 학생부 선생님한테 전화를 건다. 수업시간은 50분밖에 안되는데 솔직히 계속 담배생각이 난다.

■ 12:00

4교시 수업이 끝나기 전에 반 아이들이 알아서 동석이를 깨운다. 안 깨워줬다가는 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선생님이 수업 3분 전쯤에 끝내주면 교실 앞문에 서 있다가 종이 치자마자 식당으로 뛰어간다. 일진애들 20명 정도가 함께 모여서 밥을 먹는다. 지정좌석이 있다. 여름에는 에어컨이 빵빵하게 나오는 곳, 겨울에는 히터가 나오는 곳이 지정석이다. 우리가 만날 그 자리에 앉다보니 다른 애들은 그 자리에 오지도 않는다.

밥이 모자랄 때는 밥을 삥뜯기도 한다. 맛있는 반찬만 따로 모아 담아온다. 밥을 10분 만에 먹고 운동장 구석 스탠드에 모인다. 운동장에 나와 축구하고 있는 애들 공을 빼앗아 갖고 놀았다. 골대가 운동장 양쪽에 하나씩 있어도 우리가 하나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운동장이 절반으로 갈린다. 운동장 절반은 일진의 차지다. 가끔 1학년들이 축구공으로 일진들의 몸을 맞힐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띠껍기 때문이다.

■ 16:30

7교시 수업이 끝나면 아침에 모였던 주차장에서 담배를 피운다. 일진이 거의 다 모였다 싶으면 노래방을 갈지, PC방을 갈지, 아니면 당구장을 갈지를 결정한다.

가끔 오토바이를 훔쳐서 달리기도 한다. 시속 90㎞까지 밟는다. 오토바이로 서오릉에 가거나 구파발까지 가서 ‘안녕하세요. 경기도입니다’라는 글이 보이는 데까지 계속 달리다 돌아온다. 오토바이는 꼭 둘이 같이 탄다. 잘 타는 애들이 앞에 타고 못 타는 애들은 뒤에 탄다.

동석이는 최근에서야 앞에 타기 시작했다. 친구 명식이가 ‘4치기’(한대의 오토바이에 네 명이 타는 것)를 했다. 명식이가 운전을 하고, 동석이는 발판 쪽에 쪼그려 앉아 탔다. 4명이나 타다보니 핸들 꺾는 게 불편해 운전 도중 다 넘어졌다. 다른 애들은 별로 안 다쳤는데 동석이는 왼쪽 무릎을 다쳤다. 그래서 요즘 절뚝거리며 걷고 있다. 당구는 4구 당구를 주로 친다.

■ 22:00

노래방에서도 술을 마시는데 평소 생일잔치를 하거나 그냥 필(Feel)이 꽂히는 날 마신다. 친구들이랑 여자친구집에 가서 놀기도 한다.

집에 도착하니 10시쯤이다. 컴퓨터를 켜서 ‘서든어택’이나 ‘피파’를 한다. 한 번 시작하면 4시간은 기본이다.

한때는 인터넷 게임중독에 걸려 안 하면 손이 떨리기도 했다. 게임을 하다 배가 고프면 라면을 끓여먹는다. 학교를 늦게 가면 상관이 없지만 8시까지는 주차장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요즘은 일찍 자려고 한다. 자기 전에 TV를 틀어 드라마 재방송을 보다 잠이 든다.

할머니는 새벽에 일하러 나가시기 때문에 일찍 주무신다. 큰아버지는 자기 방에서 문을 닫고 안 나온다. TV 소리는 들린다. 부모님은 이혼하신 뒤로 몇 달에 한 번 정도 본다. 큰집에 맡겨진 지도 2년이 다 돼 간다. 엄마는 외가에 사신다. 아버지는 지방에서 일을 하고 계신다. “아빠 나 아빠 보러 가도 돼?”라고 하면 별 말씀이 없다. 그냥 대충 차비가 생기는 대로 지방에 내려가기도 한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한 달 전이다. 새벽 2시쯤 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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