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고 먼 노인 복지

“기초연금 줬다고 수급비서 20만원 뺏어… 이게 딱 조삼모사”

2014.08.19 21:48 입력 2014.08.19 22:53 수정

‘빈곤의 덫’에 빠진 기초생활수급자 김호태씨의 한숨

연금도 소득으로 간주… 빈곤층 혜택 못 받아

장애수당·양육보조금은 중복수령 기준 모호

“이게 딱 조삼모사지…. 통장에 찍혀봐야 실감이 더 날라나.”

2년째 기초생활수급자로 지내는 김호태씨(68)는 달력 속 ‘20일’을 가리키다 금세 씁쓰레한 표정이 됐다. 20일은 그에게 기초생활급여 48만8000원이 들어오던 날이었다. 그러나 이달에는 28만8000원만 들어온다. 지난달 25일 기초연금 20만원을 받았고, 그만큼 기초생활수급액은 20만원 깎여 나오는 것이다. 지난달부터 만 65세 이상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최대 20만원의 기초연금이 지급됐지만, 정작 가장 가난한 계층인 김씨는 아무런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된다. 현행 기초생활보장법은 기초연금을 소득으로 셈해 기초수급액에선 그만큼 공제되기 때문이다.

19일 서울 용산구 후암동 쪽방촌에서 만난 김씨는 “이럴 거면 아예 기초연금을 준다고 하지나 말지. 왜 줬다가 빼앗아가느냐”며 “대통령이 가난한 사람을 돕겠다고 기초연금을 준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서울 용산구 후암동 쪽방촌에 사는 김호태씨가 19일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서울 용산구 후암동 쪽방촌에 사는 김호태씨가 19일 가파른 계단을 내려오고 있다. | 정지윤 기자 color@kyunghyang.com

김씨에게 20만원은 매우 큰 돈이다. 기초생활급여로 월 48만8000원을 받으면, 20만원은 쪽방 방값, 4만원은 휴대전화 요금으로 나간다. 남은 24만원으로 쌀과 반찬을 사며 한달을 버텨야 한다. 대부분 기부받은 재활용 옷을 입는다. 담배는 안 피우고, 술은 한달에 한두번 입에 댈까 말까 한다. 아주 가끔 동묘 앞 벼룩시장에서 1000~5000원짜리 옷을 사는 게 사치라면 사치다.

충북 옥천군에서 자란 김씨는 막 40대에 접어든 1987년 서울에 올라와 건설현장 일용직으로 일했다. 초등학교 5·6학년, 2년 동안의 배움이 전부인 학력도 가난 때문이었다. 상경한 지 3년 만인 1990년 공사장에서 일하다 뾰족한 공사장비 위에 떨어져 왼쪽다리가 부서졌다. 1년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고 난 뒤엔 예전처럼 일할 수 없었다. 이때부터 서울역·영등포역·강남고속버스터미널의 쪽방과 거리를 전전했다. 김씨는 “노숙생활을 하면 제대로 자거나 먹지 못해 그 다음날 일하러 가기가 힘들었다”고 말했다.

김씨는 2002년 잠시 기회가 생겼다고 했다. 평택항 옆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숙식을 회사가 함께 해결해준다는 조건이었다.

그는 “재워주고 먹여줬던 덕분에 돈을 모을 수 있었다”며 “5개월간 일해 이 후암동 쪽방에 자리 잡았다”고 말했다. 스스로 ‘좋았던 시절’로 기억하는 때이다. 그는 “숙식이 제공되지 않으며 일해도 돈을 모을 수 없어 수급비 받는 것과 차이가 없다”며 “돈을 모을 수 있다면 지금도 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른바 ‘빈곤의 덫’에 빠져있는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 장애수당과 양육보조금 등은 소득으로 인정되지 않듯이 기초연금도 그렇게 됐으면 한다는 게 김씨의 희망이다. 그는 “똑같이 수급비 외에 돈이 생겼는데, 누구는 소득으로 계산하고 누구는 소득으로 계산하지 않는 것이 영 못마땅하다”며 “도대체 그 기준이 뭐냐”고 물었다.

주변에는 받은 기초연금액만큼 기초생활 급여가 깎인다는 사실을 모르는 기초수급자도 많다고 했다. 김씨는 “기초연금 20만원을 받았던 이들이 깎인 기초생활 급여를 받아야 대통령이 거짓말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라며 “욕지거리는 하겠지만, 그렇다고 영문을 모르면 어디에다 항의나 할 줄 알겠느냐”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