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재앙’ 끝없는 기름바다 “어디부터 손대나”

2007.12.09 19:01

9일 충남 태안군 만리포 해수욕장은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백사장은 온통 검은색으로 변했고 3~4m 높이의 시커먼 ‘기름 파도’가 계속 몰아닥치고 있었다. 현장에는 군인·공무원·주민·자원봉사자 등 1000여명이 길게 늘어서 흡착포를 들고 제거 작업에 나섰으나 광활한 바다에 점을 찍는 듯했다. 바닷가는 기름냄새가 진동해 숨을 쉬기가 어려울 지경이었다. 기름이 밀려온 백사장은 걷기 어려울 정도로 끈적거렸다.

‘검은 재앙’ 끝없는 기름바다 “어디부터 손대나”

전날 오전 헬기를 타고 상공에서 내려다 본 태안 앞바다는 가도 가도 끝없는 ‘기름 바다’였다. 사고 해역 주변은 남쪽으로 시커먼 기름띠가 20㎞에 걸쳐 퍼져 있었다. 해안선을 따라 모항 방파제에서 학암포에 이르는 해안 17㎞는 해변 전체가 검은색으로 폭 10여m의 띠를 두른 모습이었다. 갯벌과 바위에는 밀려든 기름 찌꺼기가 엉겨붙어 있었다.

태안군 소원면 모항리. 주민들은 양동이·삽을 들고 해안가에 나섰으나 피해 규모가 워낙 커 망연자실한 표정이었다.

주민 송옥대씨(58)는 “30여년 넘게 이곳에 살면서 고기를 잡아왔는데 이런 날벼락은 처음”이라며 “새벽 4시부터 어촌계원들과 50여척의 어선에 나눠 타고 복구작업을 벌이고 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갈피가 잡히지 않는다”고 망연자실해 했다.

해안가를 따라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학암포에서 시작된 기름띠가 폭 30~50m를 유지하면서 신두리·만리포·모항·가위도까지 계속 확산되고 있다. 특히 만조때가 되면서 남동쪽으로 방향을 잡은 기름띠의 폭이 점점 더 커져 사고현장에서 직선거리 33.5㎞ 떨어진 신진도 주변에서는 그 폭이 120~200m로 늘어났다. 해안국립공원으로 지정될 만큼 청정의 바다로 명성이 난 태안 앞바다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사고 해역에는 현재 어류 가두리 양식장 39ha, 전복 가두리 양식장 10ha 등 5647ha의 굴·바지락·전복·해삼 양식어업이 이뤄지고 있다.

주민 대다수가 양식어업에 의존하고 있는 의항리 주민들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된 양식어장을 바라보면서 말을 잃었다. 이충경 어촌계장(47)은 “본격적인 수확철을 앞두고 기대에 부풀어 있던 어민들의 낙담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라며 “기름에 한 번 노출된 양식장은 이미 쓰레기장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어민 김동권씨(63)는 “수확은 그만두더라도 올초 수천만원 이상씩 대출을 받아 종패를 뿌린 어민이 한두명이 아닌데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할 뿐”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겨울장사를 준비하던 횟집 등 인근 상가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5년째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김규진씨(44)는 “당장 장사가 안되는 것도 문제지만 기름바다가 돼버린 태안을 누가 찾아 오겠느냐”며 “횟집 상인들에게는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위기가 찾아온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바다가 오염되자 횟집의 수족관 물을 교체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고 관광객들의 발길도 뚝 끊겼다.

펜션을 운영하는 한원식씨(50·여)는 “손님들이 악취 때문에 못 있겠다고 해 숙박비를 모두 환불해줬다”면서 “연말 대목만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제 겨울 장사는 다 끝났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만리포 해수욕장 등 사고 해안 일대에는 군·관·민 등 5600여명이 동원돼 필사적인 방제작업을 벌였다. 장화나 방제화, 장갑 등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일부 자원봉사자는 심한 두통을 호소해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는 일도 벌어졌다.

이평주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은 “많은 사람들이 방제 작업을 돕겠다고 현장에 나와있지만 방제 요령을 정확히 몰라 일부는 수거한 폐유를 불에 태우기까지 했다”면서 “기름으로 오염된 모래를 기름과 함께 수거해야 하는지, 모래만 수거해야 하는지도 교육이 안 돼있다”고 말했다.

〈태안|정혁수기자 overall@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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