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의사 “민주화 거꾸로 쓴 건 조롱… 진보가 집권하는 인터넷 답답했다”

2013.06.02 22:36 입력 2013.06.02 23:00 수정

20대 후반인 ㄴ씨는 국내 대학병원 의사다. 업무량이 살인적이라는 레지던트이지만 병원 엘리베이터를 타며 이동할 때, 복도를 걸어다닐 때, 자기 전 틈틈이 짬을 내 일베 사이트에 들어간다. 그는 얼마 전 자신의 이름만 가린 채 의사 가운과 청진기, 명찰을 찍은 사진을 올려 ‘일베 인증대란’에 참가하기도 했다. ㄴ씨는 “내 주변에도 일베 하는 의사가 꽤 많다”고 말했다.

▲ 보수 성향 글 보면 답답함 풀려… 다문화 정책은 국민들 역차별
‘홍어’ ‘로린이’란 용어는 장난… 요즘 정치 글 많아 재미 없어져

[‘일베 현상’에서 한국 사회를 본다]20대 의사 “민주화 거꾸로 쓴 건 조롱… 진보가 집권하는 인터넷 답답했다”

- 일베를 언제부터 시작했나.

“지난해 4월부터다. ‘오늘의 유머(오유)’를 1년 이상 하다가 ‘일베는 쓰레기’라는 댓글을 접하고 호기심에 일베 사이트를 검색해 들어가봤다. 신세계였다. ‘아니 이런 사이트가!’ 싶었다.”

- 어떤 부분이 그렇게 놀라웠나.

“인터넷은 언제나 진보가 집권하는 공간이었다. 보수 성향인 나는 오유에서 매일 이명박 전 대통령을 욕하는 걸 보고 답답했다. 그 답답한 게 풀리더라.”

- 주변에서 일베 많이 하나.

“내 주변에서만도 4~5명이 일베를 한다. 다른 사이트보다 일베가 엘리트 비율은 많을 것 같다. 가진 사람들, 기득권 중에 보수가 많다는 건 통계적인 사실 아닌가. 일베의 성향 자체가 팩트를 추구하는 ‘실사구시’니까.”

- 주변에서 일베 하는 것을 알고 있나.

“의대생이 아닌 친구들은 모른다. 아무래도 내 나이 또래 친구들은 진보가 더 많으니까. 지금 돌이켜보니 여자친구와 헤어지게 된 것도 내가 일베 하는 걸 알게 돼서 그런 것 같다. 당시 여자친구는 ‘나꼼수충’이었는데 내가 아이패드에 일베 사이트 띄워놓은 것을 보고 매우 놀란 듯했다. 일주일 뒤에 헤어졌다.”

- 자신의 정치 성향을 평가하자면.

“대학생 때까지만 해도 열렬한 노빠(노무현 전 대통령 지지자)였지만 2008년 촛불시위를 기점으로 성향이 좀 변했다. 촛불시위에서 민주노총 깃발이 나부끼는 거 보고서 순수성을 잃었다고 느꼈다.”

일베 회원들을 낮춰 부르는 ‘일베충’이란 말을 미화해 만든 캐릭터 ‘베츙이’.

일베 회원들을 낮춰 부르는 ‘일베충’이란 말을 미화해 만든 캐릭터 ‘베츙이’.

- 일베가 보수는 아니지 않나.

“사이트에서 ‘반대’를 의미하는 ‘민주화’ 버튼이 가장 함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자칭 민주화 세력이라 일컫는 자들이 ‘민주화’라는 이름 아래 행했던 것들을 조롱하는 것이다. 촛불시위 때는 경찰차를 부숴도 ‘민주화’로 불렸다. 이게 민주화면 우리도 민주화해보자는 생각에 민주화를 조롱하기 시작한 것이다. 진보나 보수는 세상의 반반이다. 근데 인터넷은 진보가 다 먹었다. 일베는 진보가 만든 괴물이 맞다.”

- 일베에서 외국인 혐오 글이 많이 올라오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다문화는 실패한 정책이다. 얼마 전 조선족이 우리 병원에 심근경색으로 입원했다. 입원비가 1500만원 나왔다. 이 사람은 입원비의 5%만 냈다. 한국 국민들이 낸 세금으로 중국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것이 뭔가 억울했다. 다문화를 지원해 한국 국민들이 역차별받는 게 싫다.”

- 여성을 비하하는 이유는 뭔가.

“여자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하고, 학군단(ROTC)에 들어가는 세상인데, 남자는 이화여대 로스쿨에 못 들어간다. 이건 불공평하다.”

- 5·18 광주민주화운동으로 일베가 한창 시끄러웠는데.

“나도 전라도 출신이다보니 처음엔 5·18을 숭고하게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사실관계를 따져보면 경찰이 먼저 죽었고 시민들이 무기고를 하루 만에 다 털었다. 의문이 남아 있는데 ‘역사적으로 공인된 거니까 재평가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시신들이 있는 사진에 ‘홍어 택배’라고 한 것은 일베가 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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