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 중의 을’ 50대 이상 비정규직 여성, 직장 내 언어폭력·성폭력에 더 취약

2013.05.29 06:00
특별취재팀

여성노동자들은 대부분 ‘을’이다.

고용주나 관리자인 ‘갑’으로부터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하지만 일자리에서 쫓겨날까봐 제대로 항변조차 하지 못한다.

회사 빌딩 청소일을 하는 ㄱ씨(65)는 건물 관리소장에게 지속적인 성추행을 당했다. 관리소장은 ㄱ씨보다 12살 적다. ㄱ씨가 청소를 하고 있으면 소장은 다가와서 몸을 만지려고 하거나 입을 맞추려 하기도 하고, 입에 담을 수 없는 음담패설을 건네기도 했다. 요양보호사인 ㄴ씨(65)는 돌보는 남자 환자에게 성추행을 당했다. 환자와 단둘이 있는 낮시간마다 환자는 ㄴ씨를 뒤에서 끌어안고 움직이지 못하게 누르고, 야한 이야기를 하는 등 성희롱과 성추행이 반복됐다. 화가 난 ㄴ씨는 결국 일하는 환경이 나빠지는 것을 감수하고 업체를 옮겼다. 한국여성노동자회가 최근 발간한 <2012 평등의 전화 사례집>에 실린 실제 상담사례들이다.

고령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이 직장에서 겪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성폭력 위협이다.

2011년 공익변호사그룹 공감과 민주노총의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여성노동자의 39.4%가 성희롱 피해를 입은 경험이 있다. 지난 한 해 전국 평등의 전화에 접수된 상담 중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상담 비율(13.8%)은 세 번째로 많았다. 임금체불·부당해고 같은 근로조건(41.1%), 육아휴직·임신출산 불이익·산전후휴가 등 모성권(38.5%)을 제외하면 최대치다.

한국여성노동자회 배진경 사무처장은 “특히 50대 이상의 여성들이 성희롱 피해에 취약하다”며 “젊은 사람들은 가해자를 처벌하고 새 직장을 찾아가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쉽게 직장을 옮길 수도 없는 데다 성폭력 피해사실 자체를 부끄러워해 문제를 숨기려고만 한다”고 말했다.

이들이 성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이유는 사업장 내의 ‘을’이기 때문이다. 고령의 비정규직 여성은 청소 등 가장 주변적이고 보조적인 업무를 하거나 환자관리와 같은 돌봄노동을 수행하는 게 보통이다. 직장 내에서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셈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백미순 소장은 “사내에서 가장 하위직급에는 여성이 포진해 있는 경우가 많다. 상대방의 권력에 의해 쉽게 다뤄지는 사람들이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쉽다”며 “약자의 위치에 있다보니 성폭력에 노출돼도 구제받기 어렵기 때문에 성폭력 피해를 당한 여성노동자들은 그냥 참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고령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은 성폭력 외에 언어폭력과 신체적 폭력을 당하는 일도 많다. 언어폭력도 성폭력과 마찬가지로 이들이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겨지기 때문에 발생한다.

용역회사를 통해 파견근무를 하고 있는 ㄷ씨(45)는 지난해 평등의 전화 상담에서 회사 직원이 작업지시를 할 때 막말을 하거나 이름이 아닌 “야”라고 부르는 일이 많아 기분이 상한다고 했다. 용역직원이라는 이유로 자신을 멸시한다는 생각에 퇴사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라고 했다. 호프집 주방에서 일하는 ㄹ씨(57)는 “주방장이 근무 중에 술을 마신 채 욕설을 하고 쓰레기통을 집어던지기도 했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전병역(산업부)·김재중(정책사회부)·남지원(사회부)·이혜인(전국사회부)·이재덕(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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