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주제작사 “턱없이 낮은 제작비, 양질의 드라마 불가능”

2011.12.02 21:30
유인경 선임기자

“한 가정의 늦둥이는 축복인데 방송 늦둥이는 재앙인 것 같다.”

종합편성채널(이하 종편)에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한 제작사 사장 ㄱ씨의 하소연이다. 프로듀서나 엔지니어 등 방송전문인력이 절대 부족한 종편은 뉴스와 보도 프로그램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프로그램을 외주제작사에 의뢰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외주제작사들은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프로그램 가격과 너무나 빠듯한 제작일정에 시달리고 있다. 이 때문에 ㄱ씨는 개국을 앞두고 직접 현장을 뛰면서 며칠째 밤을 새웠다고 했다.

“일부 스타들에게 거액의 출연료를 지급하고 장비구입 등으로 돈을 써서인지 정작 우리에게 주는 제작비는 너무 적습니다. 작가나 VJ 등이 프로듀서의 일까지 맡아 하는데 보람도 없고 수익도 적으니 참고 일해보자며 마냥 달랠 수만은 없는 상황입니다.”

종편의 무한경쟁으로 외주제작사들이 벌써부터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종편사에 예능 프로그램을 납품하는 ㄴ사의 ㄷ대표는 “사실 현재 받고 있는 제작비로 양질의 프로그램을 만들기엔 애당초 불가능하다”면서 “스타급은 물론 조연급의 출연자들조차 섭외가 힘들어서 제작진이 벌써부터 지친 상태”라고 말했다.

모자란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기업후원이나 간접광고(PPL)를 위해 뛰는 것도 다반사다. ㄷ대표는 “연기자나 MC 섭외를 위해 PD가 연예기획사 간부의 경조사까지 챙기고, 제작비를 충당하기 위해 정부 부처와 기업체에 제작비 지원 요청을 한다”면서 “방송인인지 투자회사 직원인지 잘 모르겠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이 같은 상황은 외주제작 드라마사들도 마찬가지다. 일부 드라마 제작사는 그동안 지상파에 편성을 잡기 위해 노력하다가 퇴짜를 당한 작품을 종편에 편성했지만 그나마 터무니없이 낮은 가격을 받아 제작비를 맞추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6개월 전 드라마 제작사를 설립한 ㅇ씨는 “아직까지 종편과는 계약하지 않았다”면서 “(종편에서) 너무 낮은 가격대를 제시해 도저히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없었다”고 말했다.

종편으로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작가 구하기는 하늘의 별따기다. KBS <연예가중계>의 이현숙 작가는 “일단 PD들의 이동으로 담당 PD의 수도 줄고, 연예프로그램이 급증해 연예인 섭외도 힘들고 역량 있는 구성작가도 찾기 어려워 삼중고에 시달린다”고 전했다. 이로 인해 연예오락만이 아니라 지상파 전체 프로그램의 질 저하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MBC 이종현 PD(사회공헌팀 국장)는 “제대로 된 스튜디오와 장비가 갖춰지지 않는 종편에서 드라마를 제작하려면 지상파보다 2배 가까운 제작비가 드는데 회당 수천만원의 스타들 출연료까지 지급하다보면 지속적인 제작이 어려울 것”이라면서 “자체 제작 프로보다는 일본드라마나 오락프로그램을 수입해 그대로 방영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다.

결국 종편 출범으로 광고시장 잠식, 연예인 출연료 폭등, 프로그램 질 저하, 정치적 편향성 우려, 임금삭감 등이 순차적으로 현실화되면서 외주제작시장의 대혼란도 예상되고 있다.

SBS의 한 간부는 “종편 탄생은 방송인이나 시청자 모두에게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면서 “한 국가의 문화척도인 방송을 이렇게 엉망으로 만든 이 정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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